얼마 전 윈도우8 태블릿 제품을 사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생각보다 재밌네-라고 여겼다가, 계속 만지다보니, 하루키의 이 문장이 생각나더라구요. “위대한 왕국이 퇴색해 가는 것은, 허름한 공화국이 무너지는 것보다 훨씬 더 서글프다“라는, 단편 ‘잊혀진 왕국’의 마지막 문장이.
아직 강력한 MS 제국
물론 MS는 여전히 굳건합니다. PC 운영체재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윈도우이고, 3년전에 나온 윈도우7은 불티나듯 팔려나갔습니다. LG, 에이수스, 삼성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하드웨어 회사들을 파트너로 삼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개발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MS오피스를 쓰지 않고 업무를 보는 사람이 드물 정도며, 윈도우 서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위, 그리고 실패했다 여겨졌던 콘솔 게임기 사업조차 끝내 성공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누구도 MS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습니다. 구글과 애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즐겨도, MS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고 말합니다. 곧 출시될 서피스 태블릿PC와 윈도우폰8, 윈도우8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윈도우95와 XP에 대해 쏟아졌던 관심을 기억하는 저로써는, 이 제품들에 대해 이렇게 썰렁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 난감하게 여겨질 정도로.
이런 썰렁한 반응의 밑에는 그동안 MS가 벌여왔던 어설픈 사업 확장에 대한 실망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혹시 bing이라는 검색 엔진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 MSN 이라는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시는 분? 아마 대부분 모르거나 들어는 봤다 수준일 겁니다. 야심차게 내놨다가 순식간에 후속 지원을 중단시킨 윈도우7폰은 이용자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듣고 있으며, MS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웹브라우저마저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리고 이런 사업들의 반대편엔, 이런 MS의 몰락을 보며 웃고 있는 구글이 있습니다.
구글은 MS를 좀 먹었다
응? 구글? 예, 구글입니다. 애플이 아니라.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보급되면서부터 검색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게된 구글은, MS가 급히 여러가지 사업에 손대게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컴퓨터로 어떤 것을 가장 많이 하는 지를 생각해 보세요. 웹서핑입니다. 요즘 시대엔 뭘해도 인터넷이에요. 예전에는 컴퓨터로 문서 작업이나 게임을 했다면, 요즘 컴퓨터는 고성능 인터넷 단말기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만큼 사용자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패턴이 싹 바뀌었고, 그 바뀐 라이프 스타일에 구글(한국에서는 네이버와 다음 등)이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윈도우가 없어도 우리는,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왠만한 것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글이 사라진다면? 내 이메일은? 해외 검색 데이타는? 구글 문서도구에 저장한 문서는? 피카사는? 유튜브는?
갑자기, 대혼란에 빠질 겁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솔직히 고백할까요? 저는 MS가 없어도 잘 살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글이 사라진다면, 정말 큰 일납니다. -_-; 메일은 지메일, 폰은 옵뷰2, 태블릿은 넥서스7, 브라우저는 크롬, RSS는 구글 리더로 읽고 사진 편집은 피카사로, 일정관리는 구글 캘린더로 합니다. 저만 아니라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MS는 SW를 공급하지만 구글은 우리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글의 꿈은, 모든 것을 웹으로 할 수 있는, 그래서 점점 더 데이터를 구글에 맡기고, 거기에 사용자들이 종속되는 세상. 그 때문에 MS가 지배했던 거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 들어갔던 거지요. 웹으로 하라고, 기기가 뭐든 상관없이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있으니, 여기로 오라고. 거기에 불을 붙여준 것이 바로 아이폰.
윈도우 8은 MS를 구원할 수 있을까
MS는 모든 것이 넷으로 연결되는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스마트 기기가 출시되면서 PC시장이 위축되자, MS의 힘조차 약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MS에서 느껴지는 위기의 정체는 여기에 있습니다. 가지고 있던 왕국은 점점 줄어드는데, 새로운 땅은 치고 들어갈 구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왕국을 지키고 있으면 되지 않냐고요? 어찌보면 가장 쉬운 전략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MS가 차지하고 있는 땅덩어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모바일이란 물결에 밀려 점점 수몰되고 있으니까요. 사실 MS가 가지고 있던 사업 모델은 이 땅장사였거든요.
자기가 가진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게하고, 그 사람들이 이용할 것을 만들어 팔 사람들에게 자릿세를 받습니다. 그게 바로 라이센스 모델입니다. 땅 장사의 핵심은 몫좋은 곳을 차지하는 것. 하나의 OS 이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면, 개발자들은 그 OS를 위한 프로그램만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자신이 써야할 프로그램이 대부분 윈도우PC에서 돌아가기에 윈도우PC만 사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MS는 윈도우OS와 오피스 프로그램등을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한 겁니다.
언제까지나 여기에 살 줄 알았던 사람들이 이 곳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PC는 이제 잊혀져가는 구 시가지에 불과합니다. 신도시에는 애플과 구글이라는 강자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사이좋게(?) 영토를 넓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MS는 재개발 계획을 세웁니다. 이 낡은 구 시가지에, 윈도우8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히겠다고 나섭니다.
윈도우 8은 MS를 구원할 수 있을까
까맣게 잊혀진 것 같지만, 이제까지 MS에서 재개발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구글과 비슷한 서비스도 해보고 애플과 비슷한 하드웨어도 만들어 팔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실패. 그런 MS에게 윈도우8은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발판입니다. 이번엔 진짜라고 합니다. 뭔가 다르긴 한 것 같습니다.
윈도우8 계열 OS가 적용될 하드웨어는 모두 3가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PC와 노트북이 하나. 서피스라 부르는 태블릿 PC가 하나. 윈도우8폰이라 부르는 스마트폰이 하나. 이들은 모두 달라보이지만, OS의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서로 통합됩니다. 그래서 윈도우8용 앱을 만들면 윈도우8폰 앱을 만들기도 쉬워집니다. 이를 위해 MS는 처음 만들었던 윈도우폰7도 버려버렸습니다.
이를 통해 노리는 것은 뻔합니다. 모바일에서도 쓰기 쉬운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윈도우OS에 통합하고, 그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다시 MS의 모바일 하드웨어를 구입하게 만드는, 지금 애플이 쓰는 전략의 뒤집기.
…그런데 문제가 있네요?
그 통합이 그리 원활하지가 않습니다. 윈도우8의 모던(예전에는 메트로라 불린) 인터페이스는 모바일이나 태블릿PC등의 터치 환경에는 적합하지만 데스크탑 OS로서는 아직 적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윈도우8을 사용하다보면, 실질적으론 2개의 OS를 번갈아 사용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더 큰 문제는 개발자입니다. 모던 UI에서 돌아가는 앱은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ARM이란 다른 CPU를 쓰는 서피스에서도 호환이 되거든요. 문제는 이 OS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아직 출시도 안되었으니) 개발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거기에 윈도우폰7이 끔찍할 정도로 실패해 버리는 바람에 개발자들이 붙지를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윈도우8이 처음 출시됐을 때, 가장 인기를 끄는 팁이 ‘(모던UI가 아니라) 처음부터 데스크탑 모드를 띄우는 방법’등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윈도우8, 모든 전망이 틀렸기를 바라며
그럼 윈도우8은 실패할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확실히 사람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태블릿PC 정도의 가격과 무게, 배터리 성능을 가진 그냥 노트북입니다. 그만큼 기존 윈도우PC에 사람들은 익숙해져 있습니다. 아무리 편해졌다고 해도, 아직까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일반적인 PC에 비하면 그 성능이나 활용도가 부족하기도 하구요.
윈도우8은 그런 욕망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지도 모릅니다. 오피스 프로그램만 제대로 돌아가도 윈도우8 PC, 윈도우8 태블릿PC 서피스, 윈도우폰8을 선택할 사람들은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가장 돈이 되는, 다른 회사들이 절대적으로 뛰어들고 싶은 기업 시장은 아직까지 MS가 꽉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윈도우8은 MS가 현재 가지고 있는 시장을 지키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니, 이대로 출시가 된다면 서피스나 스마트폰을 제외한, PC용 OS로 제대로 보급될 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왕국을 지키고 시장에 새로 진입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 잘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방법이 서투르다라고 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네요.
사람들은 불편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불편함은 익숙하지 않다는 말이고, 내가 쓰던 방식으로 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모던 UI는 불편합니다. 지금 정도 수준이라면 사람들은 윈도우7을 그냥 쓰기를 원할 겁니다. MS가 정말 이 정도 수준에서 윈도우8을 출시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부디 윈도우8의 첫 화면이, 지금처럼 그냥 데스크탑 모드이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최소한 선택할 수 있게 해주거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욕망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용자에게 불편을 주는 OS라면 어찌되었건 환영받지 못할 겁니다. 26일 출시될 윈도우8이, 우리에게 보다 나은 경험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제품이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