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1955)가 태어났다.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애플 컴퓨터를 만들고, 애플2가 대박난다. 그러다 밀려난다. 그리고 복귀해 복수한다.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을만큼 많이 알려진 스티브 잡스의 인생입니다. 그걸 조슈아 감독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를 세웠다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일종의 오딧세이로 그려냈습니다.
개인적으로 놓칠 수 없는 영화였기에 CGV를 찾았고, 정말 열심히 봤습니다. 잡스를 좋아하던 분들은 이것저것 이야기만 듣던 장면을 찾아내는 재미가 꽤 쏠쏠할 것 같습니다. 홈브류 컴퓨터 클럽, 첫번째 컴퓨터 박람회 같은 글로만 읽었던 행사와, 빌 앳킨스 같은 프로그래머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특히 아타리 컴퓨터의 퐁- 게임을 만들었을때, 책만 읽었던 저는 머릿속으로 당연히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짜는 모습’으로 기억해뒀다가, 직접 회로 기판을 이용해 납땜질을 하는 것을 보고 깜놀. 맞아. 저때는 저랬었지-하면서… 그냥 옛 추억에 빠지는 재미도 있었구요. 뭐 어쨌든 저도 세운상가 키드의 한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 이건 저 같은 사람들은 신나서 볼 영화지만, 다른 분들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감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영상에 담기 위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부분(애플 복귀 이후의 삶)은 쳐내고, 그 전의 이야기만을 다루면서, 조금 어설픈 이야기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애쉬튼 커처의 잡스 연기가 아니었다면 어떤 면에선 정말 재미없었을 작품.
제가 실망한 것은 이야기 구조가 너무 밋밋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것저것 다 다루는 것 같지만 잡스를 일방적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도 분명히 눈에 보입니다. 과장도 좀 있구요. 하지만 제가 실망한 다른 이유는, 그 시대를 다루면서 그 시대의 맛-이랄까요- 그런 것을 잘 느끼게 해주지 못했다고나 할까요. 복장은 80년대인데 뭔가 화면 느낌은 21세기. 일부러 그런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떠올릴 어떤 추억들. 그것들이 자아내는 느낌이 영화 잡스-에는 없었습니다. 분명 애플2와 잡스는 그 시대의 상징적인 존재중 하나였음에도, 영화 자체가 너무 말쑥해서… 제가 원하는 느낌을 영 받을 수가 없더라구요. 거기에 저때 잡스는 틀림없이 20대 치기어린 존재인데-
거기에 별다른 클라이막스도 없습니다. 저쯤에서 잘랐다면 그에 해당하는 사건이 존재해야 하는데, 얼핏보면 잡스와 마큘라의 애증 관계를 그린 영화로 봐도 될 정도로. 이 영화보다가,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의외로 잘만든 영화였구나-하고 깨달았다니까요. 역시 감독의 역량 차이일까요?
잡스를 좋아하신다면 한번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잡스에 대해 어느 정도 알지만 그를 별로 좋아하진 않으신다면, 약간 인상을 찡그리게 되실지도 모르겠어요. 잡스를 아예 모르는 분들은 그냥 2시간짜리 잡스 전기 상편…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되고- 또는 잡스가 아이맥을 발매하기 전까지를 그린, ‘스티브 잡스 0’라고 보셔도 좋겠네요.
…하지만 잡스를 모르시는 분들은, 대체 왜 저러나- 싶은 부분들이 참 많을 겁니다. 그 만큼 영화는 불친절하고, 어떤 의미에선 편견이 흘러넘칩니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1985~2000년 기간동안, 애플이 그냥 망해가고만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현실에 찌든 어른들이 잡스를 몰아내니 애플이 망하고, 중간 생략후 망한 애플에 다시 잡스가 돌아왔다-가 되어버리니…
그 복잡한 인간이 이리 쉽게 정리가 되어버리다니,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