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재미있는 일을 겪었습니다. 아니,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은 아니구요. 별 생각 없이 이런저런 영화들을 보다가, ‘응? 근데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 일이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사건은 이렇습니다. 일주일쯤전에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진격의 거인’이 뜬 적이 있었습니다. 뭐지? 하고 클릭해보니 애니메이션 제목입니다. 애니메이션이 실시간 검색 1위까지 하다니?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내용이 조금 충격적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나 봅니다.
개인적으로 ‘별 일이 다있네’하고 생각했는데… 다시 살펴보니 이 애니, 한국과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방영됩니다(하루 차이). 그제서야 사람들이 왜 그리 검색을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예전 같으면 일본에서 방영되고, 그걸 본 개인이 자막 작업을 하고, 파일이 웹하드에 올라와서 뿌려지는 형태였을텐데, 일본과 거의 동시 방영하니 그 작업이 안이뤄지고, 그러니 볼 곳을 찾았던 거죠.
보다가 혹시나 하고 티빙에서 검색하니 티빙에도 떡-하니 정식으로 ‘진격의 거인(무삭제판)’이 올라와 있습니다. 600원입니다. 게다가 첫 회라고 100% 캐시백을 준다고 합니다. 당장 구입해서 봤는데, 재미있습니다. 보고나니 뒤는 또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집니다. 다시 검색해 보니 원래 만화였다고 합니다.
응? 그런데 이 만화, 전자책이 있습니다?! 평소에 자주가던 오도독이란 전자책 서점에서 만화를 구입합니다. 그냥 구입하면 2500원, 빌리면 500원입니다. 빌릴까~하다가, 읽다가 중간에 멈출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7권까지 다 샀습니다. 재밌어서 밤새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
콘텐츠 판매, 변화가 시작됐다
스스로 낯설어 했던 이유는 별 것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애니메이션이 한국과 일본에서 큰 시차 없이 방송되는 경우가 이제까진 별로 없었습니다. 최소한 저 같은 사람이 알 정도는 아니었죠. 정보는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흐르는데, 해외 콘텐츠 배포에는 언제나 시차가 존재했습니다. 콘텐츠가 인기 있을지 없을지 두고 보다, 인기를 끌면 계약해 나중에 공급하는 것이 관행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빨리 보고 싶은 사람들이 웹하드를 찾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불법. 그러니 음성적으로 퍼지고, 아는 사람들만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아예 모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오이 소라’라는 이름, 알고 계신가요?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이름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대체 무슨 말인가, 새로 나온 갑각류 이름인가-‘ 하실 거구요. 그런 겁니다. 음, 여기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모르시면 한번 검색해 보세요.
아무튼 그래서 늦게 들어온 콘텐츠는 인기를 끌기 어렵습니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봐버렸으니 새로운 소비자를 찾아야 하는데, 볼만한 사람들은 다 봐버린 마당에 많이 팔릴 리가 만무하고, 그러니 광고도 제대로 안하게 되고, 입소문은 이미 한참 전에 나서 사라져버린 다음이고…. 광고도 안하고 입소문도 제대로 안나니, 콘텐츠에 대해 알면 볼 사람마저도 안 보게 되는 것이 현실.
불법적인 콘텐츠 보급에는 이런 ‘시장 분리’라는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정보는 시장을 (어느 정도) 결정합니다. 견물생심이라고 알면 욕심이 생기지만, 모르면 신경도 안쓰는 것이 사람 마음. 수없이 많은 광고들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위해 존재합니다. 안그래도 이렇게 서로 알려지고 싶어서 안달인데, 시장에 알려질 기회가 공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면 시장이 제대로 생길리 만무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조금씩, 그런 관행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언어에 상관없이, 한국이든 일본이든 상관없이 동시 방영. VOD 동시 판매. 그로 인해 어둠에서 조금씩 시장이 ‘꺼내지고’, ‘지켜지기’ 시작합니다. … 예전 관행에 익숙해 있던 분들은 굉장히 당황해 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클릭 앤 와치(Click and Watch)의 시대, 콘텐츠가 걸어야할 길은?
하나의 콘텐츠를 전 세계에 동시 배포하고, 다국어를 지원하는 전략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앱스토어에 배포되는 게임 등에선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인터넷 보급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바뀌고 있는 하나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저장 시대에서 스트리밍 시대로, 지역 제한에서 글로벌로, 소유에서 경험으로 바뀌는 흐름이죠. 싸이가 해외 진출하게 된 것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난 23일 발표된 세계 최대 규모의 N스크린 서비스 넷플릭스의 실적은, 이 흐름을 뚜렷하게 증명해 줍니다. 티빙과 마찬가지로 동영상 N스크린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는, 지난 1분기에 무려 3,000만달러가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신규 가입한 이용자 숫자만 해도 305만명. 1년전까지만 해도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감개무량한 수치입니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이 사람들의 클릭 한 번에 VOD를 보고 싶은 욕구와 맞물려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넷플릭스가 한 것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훌루, 아마존과 같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들여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독점 드라마를 방영했고, ‘햄록 그로브’같은 신규 드라마들 역시 계속 출시하고 있습니다. 또, 스마트TV, 셋톱박스, 게임콘솔 등 다양한 기기에서 넷플릭스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제휴를 맺어왔습니다. … 엄청난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말이죠.
콘텐츠, 이제 속도와 검색을 잡아라
이렇게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은 이용자들 사이에서 ‘넷플릭스’가 하나의 ‘좋은 브랜드’로 각인되는데 기여했고, 이 때문에 신규 가입자들이 계속 늘어나게 됐습니다. 결국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노력 + 좋은 콘텐츠 + 다양한 기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편의성의 3박자가 넷플릭스의 극적인 수익 변화를 이끌어온 셈입니다.
자- 여기서 다시 우리 문제로 돌아와 볼까요? 정확하게는 좋은 콘텐츠의 유통에 대한 문제로.
‘진격의 거인’은 비록 잔인하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콘텐츠였습니다. 미리 파일이 유통되는 문제는 한일 동시 상영을 통해 어느 정도 잡았습니다. 그리고 티빙은 최근 모바일 앱의 화질을 업그레이드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도 깨끗한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저같이 애니에 관심없던 사람을, 애니를 보고 만화책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성공인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이 상당히 적다는 문제도 있고, 내용이 19금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불법 유통을 완전히 잡은 것도 아니구요. 셋 다 히트 콘텐츠를 낳기에 불리한 조건이죠. 게다가 검색에 제대로 걸리질 않아요. -_-; 티빙 영상도 ‘진격의 거인’ 만화책도 모두 일일이 조사해서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변하고는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들을 사람들이 조금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일단 검색에 걸리지 않는 문제만 해결해도(거기에 불량 게시물로 인한 데이터 스모그 문제, 원클릭에 영상까지 접근할 수 없는 문제 등등 -_-), 어느 정도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누가 끈질기게 새로운 전략을 실험해 보며,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긴 하지만요.
* CJ E&M 블로그(링크)에 보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