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애플이 엿을 먹인 것은 맞습니다. 저가형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이폰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애플이 본격적으로 저가형 시장을 공략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던 분석가들의 뒷통수를 쳤지요. 그리곤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폰5c는 저가형이 아니라,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컬러 경험을 안겨주기위해 기획한 제품이다! 라고요-
…물론 결과는 참패. 참패라고 말하긴 어정쩡하긴 합니다. 발매 첫주에 200만대나 팔았는 걸요. 하지만 애플 입장에선 뭔가 잘못된 것이 맞긴 맞습니다. 출시할 쯤에 준비했던 물량은 아이폰5s와 아이폰5c가 반반이었다고 하니까요. 결국 아이폰5s는 다팔렸는데 5c는 남아버렸습니다. 판매량은 5s의 1/4 수준. 결국 11월 들어와 생산물량을 1/4로 줄이게 됩니다.
아이폰5c가 만들어졌던 이유
그럼 애플은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던 것일까요? 아이폰5c를 만든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애플 말대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주기 위해서. 사실 아이폰5c는 함께 발표된 iOS7의 컨셉과는 잘 어울립니다. 그 경우 아이폰5c는 조금 저렴하면서, 애플이 주는대로 먹는 기기-_-;가 되버립니다. 배경화면 하나 안바꾸고 말이죠. 다만 사람들이 iOS7의 디자인 컨셉을 좋아하나요? 제가 보기엔 제품 디자이너-의 과욕에 가까운 기대입니다. 가전제품도 아니고 말이죠.
다른 하나는 기존에 아이폰4s가 잠식하고 있던 저가형 아이폰 시장을 대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2년 약정을 기준으로 아이폰은 0, 99, 199, 299, 399달러란 다섯 가지 가격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잡스 이후 팀 쿡이 애플의 수장이 되면서 만들어진 라인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올해 중반까지, 아이폰4s 이하(99달러)의 저가형 라인이 아이폰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스마트폰은 어느 정도 기능 평준화 단계에 들어섰고, 간단한 기능만 쓰면 되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제품이 나와도 큰 매력을 못느낀다는 겁니다. 아이폰5의 늘어난 크기도 구매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엔 모자랐다는 거죠. 이 상황에서 애플은 자신의 수익률을 지킴과 동시에, 사람들이 새로운 폰을 사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IHS의 분석에 따르면 아이폰5s와 5c의 제조원가는 각각 191달러, 173달러로 아이폰5의 200달러보다 낮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젊은 층을 공략할 필요입니다. 아이폰5c를 보면서 연상되는 제품이 없었나요? 예, 바로 아이팟 터치입니다. 애플은 이번에 아이팟 터치를 고사…시키면서, 아이팟 터치를 이용하던 청소년/대학생 세대를 아이폰5c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지금까지 스마트폰 시장은 구매능력이 있는 기성 세대가 좌우했다면, 향후 미래 시장은 청년 세대들이 자라면서 어떤 스마트폰을 구입하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3가지에 들어가진 못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저가형, 그러니까 중국/남미를 공략할 생각도 염두에 두긴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폰5c는 성공할 수 있을까?
덕분에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아이폰이 6가지 제품(4s, 5c 16/32, 5s 16/32/64)으로 팔리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애플 생각과는 반대로, 엔트리 모델인 5c가 반도 팔리지 않고 5s의 인기가 더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버렸습니다. 이것은 애플에게 있어선 분명히 위기입니다. 아이폰5c의 디자인 경험을 소비자들은 인정하지 않았고, 엔트리 모델 시장이 줄어들 가능성이 생겼으며, 젊은 세대에게 그리 쿨-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 생각이야 어쨌든, 아이폰5c는 시장의 기대를 져버렸습니다. 뭐 이건 내년 중반까지 시장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추이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폰 전체(4s+5c+5s) 판매량이 어떻게 변하는 지, 중국 시장 공략에 성공했는 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문제는 내년, 새로운 아이폰이 발표될 때-입니다.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이때가 되면 다시 한번 라인업이 정비됩니다. 5c가 0달러, 99달러 라인으로 내려앉고, 새로운(아이폰6?) 제품이 199, 299, 399 달러 라인업을 차지하게 됩니다. 아이폰5s에 장착된 모션 센서와 (아마도) 연동될 아이와치도 발표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아이 클라우드(+아이웍스)를 기반으로 정돈된 애플의 새로운 폐쇄(?) 생태계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게 될 겁니다. 이때가 팀 쿡+아이브 체재(4기 애플)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때가 되면, 아이폰5c는 진정한 저가폰이 될거구요. 지금보다 조금 나아진 성능(=아이폰5s)에 0달러, 99달러라면, 충분히 저가형 시장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까지, 아이폰5c는 과연 제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요? 과도기를 견디게하는 버팀목 역할을.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