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최대의 번화가, 혼마치
먼저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래의 지도는 시대에 따라 서울의 범위를 표시해 놓은 지도입니다. 지금의 서울은 옛 서울과 많이 다르지만, 무엇보다 서울이라고 불린 도시의 규모가 시대에 따라 많이 변해왔다는 사실입니다.
빠스껫볼의 배경은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까지입니다. 따라서 저 중간쯤의 지도가 당시 서울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겠습니다. 그럼 빠스껫볼의 이야기는 주로 어디에서 펼쳐질까요? 당시 일본인들이 몰려 살았던 남촌(을지로 중심)과 조선인들이 모여 있었던 북촌(안국동 중심), 그 중에서도 숭례문 옆에 자리 잡았던 움막촌과 남대문 시장, 그리고 그 시장과 연결된 미쓰코시 백화점(현재 신세계 백화점)부터 시작되는 혼마치(현재 신세계 백화점에서 충무로역까지 이어지는 길)이 주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충무로 1~3가의 진고개를 ‘거주지의 으뜸’을 뜻하는 본정(本町), 즉 혼마치로 부른 이유는 근처에 주요 관공서가 모두 모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충무로 1~2가에는 당시 일본인이 경영하던, 귀금속·잡화류·화장품·서적·문구류·식료품·화장품 등을 취급하는 고급 점포들이 즐비했습니다. 심지어 사창과와 기생집도 모두 이쪽에 있었지요. 말 그대로 향락가로, 1930년대 한국의 모던 보이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를 당시 지도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후 일본인들의 상권은 인근의 명동까지 퍼져, 1912년엔 명동 2가에 경성어시장이, 1919년엔 25번지에 공설시장이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럼 또다른 주요 배경인 남대문 시장은 언제 어떻게 세워졌을까요?
삶의 증언자, 남대문과 청계천
사실 남대문 시장의 역사는 조선의 역사와 비슷하니, 몇백년이 넘는다고 할 수 있지만- 식민지 시기 남대문 시장은 남대문밖 서북쪽에 위치했던 칠패시장이 남대문안으로 옮겨와, 오늘날의 남대문 시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1930년대 후반에는 일본인이 관할하는 ‘중앙물산시장’으로 불렸다고 하지만… 우리의 배경이 되는 곳은 어디까지나 야시장이죠. 당시 야시장은 남대문로와 종로가 만나는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인들의 상권 중심지는 종로였거든요.
그리고 움막촌은 남대문 바깥, 토막이라고 부르는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도시빈민층의 구역이었습니다. 주로 서울역(당시 경성역) 뒷편의 산자락에 많이들 모여 살았는데, 이는 주로 조선은행(현재 한국 은행 화폐박물관, 위 지도 1번) 근처에서 인력 시장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인력시장의 선발은 대부분 선착순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선 근처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움막촌에 대한 철거는, 1930년대 당시 서울을 확장하기 위해 실제로 이뤄지던 일이었습니다. … 지금과 별로 다를 것 없이요.
그리고 실제로 청계천 근처에는 빈민촌이 조선시대부터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민치호의 안티, 홍벼리가 바로 청계천 수표교 근처에서 거주하고 있었지요.
지금도 청계천에 가시면 복원된 모습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도 옛적 그대로(?) 만나실 수 있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민치호가 일왕에게 예를 갖추지 않아 체포되어가는, 바로 그 수형소. 실제로 서대문 형무소는 대한제국을 점령한 한국 통감부가 서울에 세운 형무소로, 현재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만큼은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사실 서울 중심가와 이렇게 가까운 곳에 형무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1987년까지 교도소로 사용), 일제 시제때 지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땐 저기가 성 밖이었거든요. 지어질 당시만해도, 조선 전국에 있던 교도소를 다 합친 면적의 2배였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역사의 흔적, 서울역, 부민관, 그리고 경희루
옛적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서대문 형무소만은 아닙니다. 극중에 나오는 부민관 역시 아직 존재합니다.
여기가 바로…
지금 서울 시청 위치가 원래 경성부청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 자리에 부민관이 있었고, 저기서 전쟁 독려를 위한 정치 집회가 열렸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서울역 구 역사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경성역이라고 불렸죠. 초기에는 제대로 된 역사도 없었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신영과 강산이 데이트하던 그 스케이트장, 기억나십니까?
바로 이곳… 왠지 많이 낯익으셨죠? 예, 맞습니다.
실제로 1910년대부터 경회루 등지에서 스케이트를 탔다고 합니다. 뭐, 당시엔 창경궁도… 동물원으로 개조되어, 창경원으로 부르던 시절이었는 걸요. 경복궁 앞엔 조선 총독부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고, 위의 부민관은 원래 덕안궁이 있었던 자리였어요…
자- 지금까지 빠스껫볼과 함께 옛날 옛적, 1930~40년대의 서울로 돌아가 봤습니다. 다시 살펴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어떤 면에서 이 드라마는 정말 대단합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누가 주인공인줄 잘 모르겠더라…라는 것이었죠. -_-; 라이벌인 민치호가 진짜 주인공 같고, 강산이 왠지 주인공 라이벌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하지만 여주 최신영의 마음이 민치호에게로 기울고, 치호의 매니저가 갑자기 잡혀가고, 강산의 정체가 탄로나버린 지금, 이제 드라마는 새로운 전개로 급물살을 탈 예정입니다. 그때 우리가 어떤 울분을 겪을 수 밖에 없었는 지를 들려주는 드라마, 빠스껫볼. 다음주부터는 진짜 기대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