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정현종 시집 ‘광휘의 속삭임’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2008.
도시에 산다는 것은, 매일 매일 낯선 얼굴들을 마주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생각없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기억할 수도 없고, 기억할 일도 없는 낯선 사람들. 내 근처에 있지만,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세상에 산다는 것은, 항상 낯선 타인들 속에 둘러쌓여 있다는 말입니다. 내 이름을 불러줄 일이 없는, 그런 사람들 속에.
괜찮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우리는 이제 느슨한 관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밥 먹고 나와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던 시절, 동네 어른들이면 누구나 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던 시절을 지나, 옆 집에 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더 익숙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걸로 좋은 걸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도시를 여행하다가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어요. 여기에선 정말, 내가 이 자리에서 쓰러져도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겠구나-하는 그런 생각이. 낯선 이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상당히 두려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전 그래서 항상 어딜가도, 아는 사람들을 먼저 찾습니다.
예, 저는 아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 어딜가든 씩씩하게 잘 살아갑니다. 어딜가나 친구를 만드는 버릇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버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도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도 저 사람만의 이야기가 있을텐데, 저 사람이 나를 모르더라도, 내가 저 사람을 안다면, 좀 더 친절해 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저만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익명으로 가득찬 세상에, 색을 불어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시선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깨워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희생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을 아이들이 가진,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기록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르는, 앞으로도 알 일이 없는 그런 사람들을, 어디선가 한번 본 적이 있던 사람들로 만들어나가는 프로젝트들. 그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살짝, 낯선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
1. 휴먼스 오브 서울 프로젝트
휴먼스 오브 서울(링크)은 그런 프로젝트중 하나입니다. 서울 사람들의 삶과 삶을 담아내는 프로젝트로, 뉴욕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정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곤 조곤조곤 그들이 가진 짧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휴먼스 오브 서울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정성균 편집장과 박기훈 아트 디렉터의 이야기는 플래텀과 가진 인터뷰(링크)에서 좀 더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마지막에 있는 이 글이 인상적이네요.
2. 리씽크 홈리스의 카드보드 프로젝트
리씽크 홈리스 프로젝트에 대해선 프로젝트 홈페이지(링크)에서 더 많은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 한겨레 신문의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배가 왜 침몰했는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벌써 세상엔 그 아이들과 유족들을 기만하는 사람들과, 그만 잊자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한겨레 신문에선 지난 6월 16일부터,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부모님들이 하늘로 보낸 편지를 싣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얼굴은 박재동 선생님이 그려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읽다보면 알게됩니다. 어떤 꿈을 가진 아이들이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생긴 아이들이었는지…
지금까지 올라온 편지는 모두 29통.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편지가 이 곳에 등록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에서 보게되는 부모님들의 편지에,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며 아프게 시작해야 하는 서글픔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원피스의 명언처럼, 사람은 사람들에게 잊혀질 때가 진정 삶이 끝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맘편히 하늘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희생된 모든 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