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부터 단통법, 그러니까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법입니다. 사실 이 법의 취지는 좋습니다. 소비자들이 공평하게 스마트폰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니까요. 예, 예전 갤럭시3 17만원 대란 때문에 만들어진 법입니다.
지금까진 판매하는 곳마다 스마트폰 값이 달랐습니다. 통신사나 제조사에서 지급하는 보조금 때문입니다. 이제까진 누가 어디에 얼마나 보조금을 지급하는지 쉽게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주 싸게 스마트폰을 사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제 값을 다주고 사서 속된 말로 호갱이란 소리를 듣는 경우까지 있었는데요. 이 때문에 불만을 가지신 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런 불공평한 상황을 막고자 만들어진 것이 이번 단통법입니다.
단통법, 대체 어떤 것일까?
그럼 이젠 모두 똑같은 값에 스마트폰을 살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보조금을 얼마를 지급하는 지를 홈페이지와 대리점에 적어놓고, 딱 그만큼만 지급하게 되니까요. 다만 얼마나 비싼 요금제를 쓰는 가에 따라 보조금이 달라지는데요. 그것도 홈페이지나 대리점에 물어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다만 대리점에서 사시면 최대 15%까지 추가로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얼마냐구요? 일단 내년 3월까지는 30만원입니다. 방통위가 그렇게 정했습니다. 여기에 15% 추가 보조금이 적용되기 때문에, 최대 34만5천원까지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기존에 받으셨던 약정 할인이 추가로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2년 쓰겠다고 약속하면 매달 얼마씩 요금을 깍아줍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저렴한 요금제를 쓰는 사람들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조금을 가장 많이 주는 요금제를 기준으로, 금액이 깍이는 만큼 보조금도 줄어든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7만원 요금제에 3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3만 5천원 요금제에는 15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게 됩니다. 통신비를 반만 내는 만큼 보조금도 반으로 깍이는 거죠.
그러니까, 스마트폰 구입할 때 ‘스마트폰마다 정해진 보조금’과 ‘약정에 따른 요금 할인’을 받는 것이 이번 단통법입니다. 보조금 상한선은 6개월에 한번씩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요금에 따른 보조금은 통신사가 결정해서 공지하는데, 한번 공지하면 일주일동안 못바꾸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약정이 끝난 분들이나 중고폰으로 개통하시려는 분들은, 보조금 대신 분리 요금제-라는 것을 적용해 추가 할인을 받으실 수 있는데요. 보조금이 없는 대신 추가로 12% 정도 요금 할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왠지 좋은 요금제처럼 보이십니까?
단통법에 숨어있는 함정
듣기에는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 없이 팔리던 물건을 백화점에서 정찰제로 파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발이 심상치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정부가 이 법을 만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같은 값에 사게 만드는 것과, 일단 스마트폰을 사면 산 기기를 오랫동안 쓰게 만들려는 목적입니다.
이 때문에 부작용이 좀 많이 생겼습니다. 일단 같은 값에 사는 것은 좋은데, 보조금 상한선이 낮다보니 전체적으로 스마트폰값이 비싸져 버렸습니다. 예전엔 싸게 사는 사람, 비싸게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젠 모두 비싸게 사게 된 거죠. 실제로 27만원 정도에 나왔던 저가폰들의 출고가가 이번에 30만원 정도로 올랐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위약금인데요. 이번 단통법 시행을 계기로, 약정기간 안에 기기가 고장났거나 잃어버리신 분들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많은 위약금을 내셔야만 합니다.
출처_빈꿈
그러니까, 약정 기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보조금 받은 것에 요금 할인받은 것, 기기 나머지 값까지 모두 위약금으로 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8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구입했다고 칩시다. 30만원 보조금을 받고, 6만 5천원 요금제에 2년 약정으로 들 경우 요금 할인을 매달 18000원 정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1년 정도 있다가 기기를 도둑맞거나 고장이 났다-이러면 보조금 30만원에 그동안 할인받은 금액의 일부인 13만원 정도, 남은 기기값인 25만원까지 모두 위약금으로 물어내야 합니다.
예전에는 38만원 물 것을 이제는 68만원을 물어야 하는 셈입니다. 물론 약정을 다 지키면 문제없습니다만, 중간에 일이 생길 경우엔 상당히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셈입니다. 중고폰으로 가입했다고 해도 역시 12% 할인 받은 것에 대한 위약금이 또 생겼구요. 또 가입한 것보다 낮은 요금제로 변경할 경우에도 기존에 받은 보조금 차액을 다시 지불해야 합니다.
단통법 속에 숨어있는 치사한 허들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원래 이런 형태의 무거운 위약금은 해외에는 많이 있는 요금제 형태입니다. 다만 해외는 우리나라와 다른 것이, 보조금 상한제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비싼 폰에 많은 보조금을 줘서 싸게 살 수 있는 대신, 약정기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무거운 위약금을 물립니다. 그런데 이번 단통법은 보조금은 적은데 약정기간만 엄격히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기존에 있던 위약금 제도를 손질하지도 않아서, 폰을 자주 바꾸는 것을 막자고 한 일 때문에 잘못하면 소비자 부담이 크게 늘게 생긴 겁니다.
거기에 더해, 이번 단통법 정책에는 소비자에게 말하지 않는, 이통사들의 욕심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치사한, 제가 3가지 허들(장애물)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하나, 통신사를 못빠져나가게 막는 허들
2년 약정을 어길 경우 보조금 전액 반환. 이로 인해 위약금이 확 늘었습니다. 소비자들이 빠져나가기 힘들게 된 거죠. 덕분에 비싼 고가폰을 살 경우 갖게 될 리스크까지 늘어났습니다. 이러면 마케팅 비용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2년 1분기부터 2014년 2분기까지 이통사들이 집행한 마케팅 비용은 21조 2152억원(매출은 111조 9862억원). … 이건 통신사 입장에선 제일 맘에 드는 허들일 겁니다.
둘, 비싼 요금제를 선호하게 만드는 허들
고액 요금제에만 높은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고액 요금제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통신사들이 항상 고민하는 것은 가입 고객 한명이 돈을 많이 쓰게 만드는 것(ARPU). 그런데 막상, 보조금 상한 제한이 걸려서 실질적인 이득은 적은 편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책정된 보조금을 보면, 낮아도 한참 낮지요.
셋, 낮은 요금제로 못바꾸는 허들
개인적으론 젤 황당한… 허들입니다. 이제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낮은 요금제로 바꾼다고 스마트폰 할부 원금이 높아지는 것, 생각도 못해보셨죠? 그런데 이젠 됩니다. 쓰던 요금제보다 낮은 요금제로 바꿀 경우, 보조금 차액을 토해내야 한다. 예를 들어 9만원 요금제로 가입해서 30만원 보조금을 받다가, 4만 5천원 요금제로 바꿨을 경우,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차액의 보조금을 변상…해야 합니다.
이쯤에서 이 만화를 다시 보시면 됩니다. 이 만화는, 진짜 진짜입니다.
스마트폰 대호갱 시대에 살아남는 법
그야말로 스마트폰 대호갱 시대의 개막. 나중에 다른 글로 다시 다루겠지만… 상황, 조금 심각합니다. 사이드 이펙트가 장난 아닐 것 같습니다. 일단 고객 수요가 확 감소할 거구요. 중고폰 가격이 올라갈거구요. 대리점들이 줄줄이 망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다 같이 안팔리면, 이통사는 상관 없습니다. 마케팅 비용은 줄고, 고객들은 갈 곳이 없어서 계속 요금을 납부할 테니까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일단 6개월 정도는 기다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꼭 비관적인 전망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제도가 이제 막 적용되었기에, 당분간은 꽤 혼란스러운 상황이 많이 발생할 것입니다. 당장 바꾸셔야 한다면, 현실적으론 구형 스마트폰이나 40~50만원대 정도의 보급형 스마트폰을, 3~4만원 정도의 요금제로 가입하시는 것이 가장 부담이 적습니다. 간단히 말해 위약금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쪽으로 택하세요.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또다른 대안으로는 소니 엑스페리아Z3 같은 자급제폰이나, 헬로 모바일 같은 알뜰폰 사업자가 있습니다. 일단 지금이 사업 적기라고 생각했는지, 알뜰폰쪽에서 꽤 많은 프로모션을 하고 있습니다. 헬로 모바일은 15개월 지난 폰엔 최대 40만원, 다른 폰에도 30만원의 방통위가 정한 최대 보조금을 책정해 버렸습니다. 아니 아예 자급제 폰을 구입해서 알뜰폰으로 가입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체국 알뜰폰은 그런 분들을 위해 0원 요금제를 출시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KT에서는, 하이브리드 에그-_-를 출시했습니다. 와이브로가 안잡히는 곳에선 LTE망을 쓰는 제품입니다. 기계값 + 10G 이용료 포함해 월 2만원. 데이터를 많이 쓰시는 분들은 알뜰폰 0원 요금제를 택하신 다음 이쪽을 고려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비싼 폰을 구입해서 얻는 이익에 비해, 중간에 사고가 생겼을 경우 입을 리스크가 너무 커졌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가급적 저렴한 가격대의 스마트폰을, 자급제폰을 구입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지금 당장, 대호갱 시대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아, 꼭 새 폰이 필요한 상황에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