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 수 있을까?

1. 지금 오사카에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싱가포르, 지지난주에는 방콕… 어쩌다보니 계속 밖에만 나와 있습니다. 노는 것은 아닙니다. 스윙 댄스 파티에 참가하려고 오긴 왔지만, 계속 일은 하고 있습니다. 제 목표는 매달 적자=버는 것보다 많이 쓰지 않는 것. 최소한 적자를 내지 않는 선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많이 버는 것은 아니구요.

2. 몇달전 도유진님의 디지털 노마드와 관련한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깜짝 놀랐어요. 디지털 노마드, 언젯적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단어이던가요. 21세기초, 한참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떠들썩하던 무렵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단어가 다시 보이다니, 요즘 세상에 죽은 단어가 생명을 얻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근데 읽다가 괜히 웃었습니다. 뭔가 제가 사는 삶이랑 비슷했거든요. ‘4시간’이란 책을 읽고 영향을 받은 것도 비슷하고… 아, 전 밖에 나가 자주 일하는 편입니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생활을 못견디는 타입이기 때문입니다. 음… 좀 지독하게 못견딥니다. 그래서 출근하시는 모든 분들을 존경합니다. 진심으로. 그래서 밖으로 자주 나가는데, 친구들에겐 ‘그냥 평소처럼 일하고, 저녁만 오사카에서 먹을 뿐이야’라고 말하긴 합니다.

…보통 그 말을 하자마자 아주 싸늘한 -_-+ 시선을 받게 되긴 합니다만… 돈이나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3. 사실 인터넷이 대중화된 요즘 세상에서,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면서 사는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주로 영상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이라, 인터넷만 되면 세계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오래는 못나갔다 옵니다. 방송일…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에 나가 있으면 가끔 들어오는 인터뷰나 방송 출연, 행사 참석등을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요즘처럼 조금만 더 오래 나가있으면, 굉장히 많은 인간 관계가 끊깁니다.

…오랫동안 유학하다 한국에 돌아온 친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거라니까요…

도유진님이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프리랜서, 비상근 고용자,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할 곳을 골라서 일할 수도 있지요. 몇몇 도시에서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싸게 사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떠나는 것을 별로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단, 일이 있다면 말입니다.

4. 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일은 어딜가도 있습니다. 아니면 만들면 되요. 넉넉하게 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냥 어찌저찌 생활할 정도로 버는 것은 가능합니다. 능력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다면 말이죠. 사람 마음은 틀리지 않아서, 그 사람이 일만 제대로 해준다면, 같은 값이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씁니다.

대신 잃어버리는 것이 있어요. 첫째는 관계 네트워크. 친구를 굉장히 잘 만드는, 외향적인 타입이라면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그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거든요. 일 조차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일을 주고 받는 것도 어떤 관계의 네트워크 망에 속해 있는 것이라,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가 알아서 찾아와서 일을 주진 않아요. 그런데 그 관계의 네트워크를, 계속 밖에 나가 살면서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찾았는데 없다면, 다음 번에 그 사람은 찾는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다반사.

다른 하나는 소속감.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실제로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디 소속이거나 어느 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은, 굉장히 큰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아무리 좋은 회사에 가도 거기서 왕따 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살아가기 힘들어지고요. 그런데 계속 이동하며 사는 디지털 노마드는, 그런 소속감을 포기해야 합니다. 가족이 있다면 더욱 더 그렇죠.

…최소한 자기 삶의 줏대가 뚜렷한 사람들, 강한 멘탈을 지닌 사람들, 이미 지나가 버린 20세기의 외로운 늑대형 인간…에게나 완전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가능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프리랜서, 원격근무 비정규직…이죠. 근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는 저 같은 사람들. 이렇게 따지면 디지털 노마드는, 아주 가까이 다량 분포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네요.

5. 당신도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하나의 일에서 인정을 받으면요. 하지만 분명해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것을 잘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런 마인드가 없다면 디지털 노마드는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닙니다. 그냥 불안한 비정규직이거나 프리랜서에 불과하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만드는 수단으로,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의 양식을 선택한다면, OK. 좋습니다.

전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고, 밤에 아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건강하지 못한 편이라- 이런 삶=적당히 벌어 잘살고 싶은 삶을 택했습니다. 적게 일하지만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삶을. 다만, 너무 멀리 나가지는 않고 조금씩 나갔다가 들어오는 삶을. 다행히 한번 관계를 맺으면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 편이라, 적자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있었습니다. 때때로 엄청나게 외롭고, 아프고, 실망스럽고, 불안할 때도 많지만…. 그건 떠나지 않은 삶을 사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라, 후회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을 좋은 삶이라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분명, 자기를 오랫동안 알아온, 자기를 아끼고 사랑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일테니까요. 그래도 어떤 사람은 떠납니다. 솔직히 자기 능력만 확실하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굳이 고생하며(?) 일하라고는 말 못하겠어요. 어쩔 때 보면 이 나라는 상호 감시 사회 같아서, 이래라 저래라 왜 이거 안하냐 저거 안하냐 너무 타인의 삶에 간섭하려고 드는 일이 많거든요.

… 간단히 말해 돈 없으면 연애도 못하는 세상(응?)

그런 분들에게는, 자기 삶의 한 방식으로 디지털 노마드를 권합니다. 굳이 해외에 나가 있지 않아도 좋아요.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보면, 뭔가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거기서 행복한 순간들도 찾을 수 있구요. 물론 만약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없는 분들이라면, 절대로 디지털 노마드를 권하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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