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손에 급소를 내준 인생은 인생이라 할 수 없다.
–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中
오랜만에 사고 싶은 스마트폰이 생겼다. 갤럭시 노트7이다. 디지털 플라자에 가서 이것저것 만져보는데, 잘 나왔다. 지문이 잘 묻는다던가, 너무 반짝인다던가, 그립감이 좀 불편하다던가 하는 불만은 있지만, 이런저런 고민 없이 몇 년은 쓸 수 있을 폰이라 생각됐다. 특히 펜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능에 반했다.
하나 사야겠다 생각하고 일하는 분에게 물어봤다.
“이 폰, 알뜰폰에서도 사용할 수 있죠?”
“아닙니다. SK나 KT, LGU+ 에 가입하셔야 합니다.”
응? 디지털 플라자에서 파는 폰은 자급제용 폰이 아니었나? 진열된 폰을 살펴봤을 때도 별다른 선탑재앱들은 안 보였던 것 같은데 … 싶어서 다시 보니, 자급제 폰이 아니라 ‘무약정’폰이다. 다시 말해 통신사 약정 없이 살 수는 있지만, 이통 3사용으로 나온 폰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사야만 한다.
실망스럽게도, 갤럭시 노트7 무약정 폰은 내가 원하던 ‘이통사 선탑재앱 없고 약정 없는’ 그런 폰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갤럭시노트7 구입을 포기했다. 나는 약정으로 얽매이는 것도, 누군가가 설계한 요금제에 맞춰가는 것도, 쓰지도 않을 앱이 좀비처럼 폰에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겐 나에게 맞는 폰과 요금제가 필요하다
나는 중고 스마트폰을 구입해 알뜰폰 USIM 요금제로 쓰고 있다. 5천 원을 내면 통화 50분과 500M 데이터를 주는 요금제다. 여기에 LTE 라우터를 하나 더 가입했다. 1만 5천 원에 데이터 11G. 합쳐서 세금 포함 22,000원을 내면 통화 50분과 데이터 11.5G를 사용한다. 월평균 통화 시간이 50분 이하면서 데이터 사용량은 6G가 넘어가는 내 라이프 스타일에 딱 맞게 세팅됐다.
이통 3사 요금제를 쓰다가 알뜰폰으로 넘어간 이유는 단순하다. 어느 날 새 폰을 구입하고 싶어서 가격을 조사해 보는데, 5만 원대 요금제 기준으로, 폰을 따로 산 다음 알뜰폰 요금제를 쓰나, 이통사에서 보조금을 받고 폰을 구입하나 2년간 내는 총액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통사 요금제 자체가 보조금을 더 줄 것을 상정해서 설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2년 약정 없이 폰만 따로 사서 알뜰폰에 가입하면 좋을 텐데, 그러자니 신형 스마트폰(애플 제외)을 이통 3사가 아니면 팔지 않는다. 살짝 화가 났다. 스마트폰 제조사의 고객은 우리가 아니라 이통사다. 뻔히 알고는 있었지만, 최신 폰을 산다는 것 = 이통사가 뿌린 미끼를 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좀 그랬다.
아쉽지만 안녕, 갤럭시노트7
이런 식의 설계는 이동 통신 요금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만 원 요금제 기준으로, 2년간 약정 할인 20%를 통해 할인되는 금액과 이통사가 지급하는 보조금 상한선 금액은 33만 원 안팎 정도로 비슷하다. 알뜰폰도 최근 여러 가지 요금제가 나오면서 상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초기에는 이름만 다른 여러 회사들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요금제를 제시했다.
그 밖에도 지금 제도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휴대폰과 이동 통신망 이용료를 완전히 분리/판매하는 것을 찬성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을 당장 바꿀 수는 없으니까, 어찌어찌 찾아낸 우회로가 지금 세팅한 요금제다. 나는 지금이 좋고 편하다. 아무리 좋은 스마트폰이 나와도, 나는 다시 약정에 묶여 살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쉽지만, 안녕, 갤럭시 노트7. 너는 좋은 스마트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무약정 폰을 사서 어찌어찌 알뜰폰에 쓸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약정 없이 번호 이동한 다음, 세 달 쓰고 다시 알뜰폰으로 돌아가면 되긴 하니까. 그런데 왜 그래야 하지? 란 생각이 들어 관뒀다. 소비자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소비자가 더 귀찮은 일을 감수해야만 할까.
그런 귀찮음을 감수해야 할 만큼 좋은 스마트폰은 없다. 스마트폰은 결국 도구이고, 좋은 도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아쉽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갤럭시 노트7 구입을 포기했다. 내게 있어선 스마트폰 보다 내 자유로움이 더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