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땐, 넷플릭스를 보고 배우자

넷플릭스

 

‘만만한 요리 쌀전(쌀戰)’이란 요리 프로그램이 있다. 페이스북 라이브로 요리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연배가 있는 분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신기해서 보고 있는데, 뭔가 너무 무난하다. 자연스러운 진행이나 목소리로 봐선 뭔가 방송을 하신 분들 같은데, 보다 보면 ‘그런데 왜 이런 사람들이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하는 거지?’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찾아보니 이분들, KBS 아나운서다. K 본부 분들이 플랜 B를 가동하셨나- 싶었는데, 아니다. 이거 KBS 프로그램 맞다. KBS 프로그램이긴 한데, KBS 방송에는 안 나간다. 방송 소재도 그렇고 진행도 그렇고 주부 대상 프로그램으로 나가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인터넷 라이브만 고집한다.

… 이거 진짜 뭐지? 살다 살다 평범해서 낯설어 보이는 방송을 보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KBS는 왜 인터넷 방송에 도전하는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 곳은 ‘예띠 스튜디오’다. 양띵의 팬이 아니라면 기억할 사람도 없겠지만, 아무튼 KBS의 흑역사로 기록되는 ‘예띠TV’를 만든, 그 예띠 스튜디오가 맞다. KBS가 뉴미디어 사업(인터넷 방송)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팀이다.

그렇다면 무난한 방송을 만든 것도 이해는 간다. 초기에 KBS 입장에서 보면 여러 파격적인 기획을 내걸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방송’이라는 형식은 취하면서도, 내용은 조금 곱게 곱게 가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 만들어진 콘텐츠를 지상파로 재수급하는 것도 아니다. 따로 간다.

MBC는 ‘마리텔’을 어찌어찌 성공 시켰고, SBS도 유명 연예인들을 캐스팅하며 전략적으로 접근하는데 비해 KBS의 투 트랙 전략은 그래서 어딘가 엉성하다. 그렇다고 뉴미디어 사업을 접을 수도 없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만 해도, 전체 광고 시장이 성장하는 와중에도 지상파 광고비는 14%나 감소했다.

무게 중심의 이동은 확실하고, 이를 방관하면 KBS는 주 시청자층의 고령화와 더불어 점점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다. 공영 방송이 사라질리야 없겠지만, 시청료 인상에도 도움 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래도 KBS는 KBS라는 것. 뉴미디어와 공영 방송은 톤 앤 매너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넷플릭스는 자기 자신을 고집하지 않았다

KBS의 반대편엔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나 CJ E&M이 아니라, 넷플릭스가 있다. 한국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못 올리면서 조금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넷플릭스는 여전히 전 세계 온라인 비디오 시장의 최강자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 했던 여러 가지 형식을 실험하고 성공시킴으로써 시장 지배력을 더욱 다져갔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원래 DVD 대여업을 하던 업체였고, 온라인 비디오 사업은 넷플릭스 사업의 위험 요소였다. 2005년 넷플릭스 CEO 헤이스팅스는 앞으로 20~30년은 DVD 대여업이 더 건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플랜 B를 놓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넷플릭스는 디지털 비디오 레코더 회사인 티보(TiVo, 미국인들의 TV 시청 습관을 한때 바꿔놓았던 그 제품!)와 인터넷 영화 배급 계약을 맺었고,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영화도 보고 DVD도 빌릴 수 있는 종합 웹사이트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그때 변화된 상황에 맞춰 기민하게 대응했던 것은 물론이다. 결국 2007년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도입했고, 그걸 정액제 서비스로 만들었으며, 자체 제작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16년 이제 넷플릭스는 전혀 다른 회사다. 이 회사가 DVD 렌탈로 시작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은 아예 모를 정도로.

…미래를 알지 못하면서도 준비했던 플랜 B가 결국 넷플릭스 그 자체가 돼버린 것이다.

 

KBS는 넷플릭스에게서 배워라

지상파 3사가 MCN 시대에 대처하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모두 ‘결국은’ 지상파 기반 MCN이 되려고 하고 있다. KBS는 일단 완전히 지상파/온라인을 분리했고, MBC는 지상파 + 알파의 형식으로 엮어가고 있으며, SBS는 나름 고퀄리티 콘텐츠를 추구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KBS는 겁을 먹었고, MBC는 자신감을 얻었으며, SBS는 야심만만하다.

바로 그럴 때, 플랜 B를 가동해야 한다. 설령 지상파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것을 잘 알면서도, 온라인 공간으로 완전히 넘어갈 시대를 준비하는 자세를. 앞날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이것저것 모두 시험해 보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이런 면에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지상파들의 새 시대 적응에 긍정/부정적 효과를 모두 가져왔다.). 살아남기 위해선, 미래를 알지 못하면서도 꾸준히 준비해야만 한다.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는, 결국 ‘누군가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매스미디어 시대와는 다르게 ‘정보’라는 성격보다는 ‘스토리’라는 성격을 더 강하게 지닌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출연진을 배치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냥 껍데기만 따와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걸 앞으로 해낼 수 있을까? 뭐,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떠나, 선택에 따른 결과가 너무 뻔히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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