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묘든 백묘든 고양이를 잘 잡는 쥐가 좋은 쥐다
‘
태양의 후예’는 정말 뜨거운 인기를 모은 드라마였다. 완전 사전 제작된 드라마 중에서 처음 히트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전 제작된 이유가 중국과 동시 방영을 하기 위해, 중국의 사전 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제작사 NEW의 2대 주주가 중국 회사인 화처 미디어라는 사실도.
요 몇 년간 중국 자본이 한국 시장으로 거세게 들어오고 있다. 서비스업에 투자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분야는 바로 ‘게임 산업’이다. 어느 정도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 이제 중국 자본이 없으면 한국 게임 산업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 중국 게임 회사 텐센트가 작년까지 한국 기업에 투자한 액수만 약 1조 원으로 추정된다. 작년 한국 게임 시장 규모가 10조 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뿐인가? 현재(2016년 4월 3주)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구글 앱스토어 게임 10개 가운데 6개의 게임이 중국 투자를 받은 회사(넷마블, 웹젠, 4:33, 넥슨)의 게임이다.
다른 2개는 중국(이펀 코리아)/핀란드(슈퍼셀) 회사의 게임이고, 나머지 두 회사(게임빌, NHN) 역시 중국 진출을 위해 텐센트 등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이미 한국과 중국 게임 산업은 쉽게 떼기 힘든 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는 세계 게임 시장, 특히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을 선도하는 게임 강국이란 자부심이 강했던 한국에서,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일까?
한국이 망해가는 동안, 중국은 날아올랐다
사실 이런 변화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생긴 변화다. 물론 안다. 중국 자본을 그리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는 것을. 다른 해외 투기 자본처럼, 단물만 쏙 빼먹고 단물 빠지면 한국 회사들을 버릴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21세기 초반만 해도 한국 온라인 게임들은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의 9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었다. 사실 텐센트도 한국 게임을 중국에 퍼블리싱 하면서 큰 회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 게임 산업은 자국 경제 성장과 함께 정부의 육성 정책과 맞물려,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다.
14억 인구에 게임 인구 숫자만 5억 이상. 전년 대비 46.5%나 성장한 세계 최대의 모바일 게임 강국. 그것이 중국의 현 주소다. 2015년 텐센트는 혼자서 10조 가까운 매출을 거뒀다. 단순히 많은 것이 아니다. 중국 모바일 게임 마켓은 세계 게임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셧다운제 도입, 게임중독법 논란 등으로 인해 나빠진 인식은 집요하게 게임 종사자들을 괴롭혔고, 많은 돈을 투자했던 게임들이 실패하면서 투자 환경도 안 좋아졌다. 그나마 나오는 게임들도 다양성은 사라지고 과금 유도에 혈안이 된 게임들만 많아졌다. 실력 있는 많은 개발자들이 해외로 떠났고, 이젠 디자이너들도 해외로 간다. 간단히 말해 총체적으로 망가져가고 있었다.
한국 게임, 중국 자본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준비가 안돼 놓친 기회도 있었다. ‘2015 대한민국 게임산업 백서’에 따르면 지난 2013~2014년, 중국 게임사들이 대거 몰려와 한국 게임사들과 계약을 맺었다. 이때 수출 계약을 한 모바일 게임만 100여 종. 하지만 절반은 개발비 부족 등으로 완성되지도 못했고, 30%는 중국 게임사들의 제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폐기되었으며, 20%는 로컬라이징 실패로 제대로 서비스되지 못 했다.
…결국 중국에선 내부의 게임 제작사들을 육성하기로 방침을 바꾸고, 자본을 대거 투자해 모바일 게임 시장을 자가발전시키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결과가 현재 중국의 모바일 게임 시장이다.
물론 아직도 한국 게임 회사들은 열심히 중국 론칭을 시도한다. 놓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중국 회사들도 한국 게임 회사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 컴투스 등의 게임들이 중국에서 크게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은 중국 모바일 마켓의 좋은 콘텐츠 공급원이다. 그래서 한국 회사들에 직접 투자를 한다. 게다가 우회 상장 등도 가능하고, 한국의 기술 인력과 지적 재산권을 확보할 수도 있다.
최근엔 중국 게임이 한국 시장에 진출 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 회사들의 개발력도 일취월장했고, 시장이 워낙 가파르게 성장하다 보니 잘 만든 게임들도 꽤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중국에서 만든 게임도 한국 시장에서 먹히기 시작했다. 작년에 나온 ‘백발백중’, 올해 나와 인기를 끌고 있는 ‘천명’, 조만간 나올 ‘검과 마법’등이 그런 작품이다.
슬프냐고? 그렇진 않다. 무엇보다 … 이건 중국 자본 투자를 받는 회사들의 공통된 의견에 가깝기도 하지만, 이젠 중국 자본 없이 버티기가 어렵다. 중국 진출도 중국 진출이지만, 게임 하나 만드는데 수백억씩 들어가는 상황에서, 이만큼의 돈을 투자해 주는 곳이 중국 회사들 밖엔 없다. 악덕 투자자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눈이 필요한 상황이지, 투자하겠다는 돈을 애국심(?)으로 거절할 상황이 못된다.
…결국 남은 것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앞에도 얘기했지만 한국 게임 시장은 크게 3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정부는 규제와 진흥 사이에서 자꾸 엇갈리는 행보를 하고 있고, 회사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게임들을 내놓지 못하고, 투자는 투자대로 쪼그라든 상황. 무엇보다 게임이 ‘문화’가 아니라 ‘질병’ 취급 당하는 상황. 그래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도 배급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마음 편히 게임 하나 즐기기가 어려운 상황.
하지만 게임은 문화다. 영화나 음악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정성과 시간을 들여 소비하는 어떤 것이고, 그것 때문에 삶이 즐겁고 때론 위로가 되는, 그런 것이다. 경제성을 따져도 결코 작지 않다.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480조 정도 되는 것을 생각하면, 게임 시장은 적어도 1/5 규모는 되는 시장이다.
그러니까, 페이스북에 밀려 저물어 버린 싸이월드를 기억하자. 지금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히트 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이미 다 먼저 만들고 경험하고 키워봤다.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 이스포츠, 지적 재산권 게임… 문제는 게임 산업이 싸이월드의 전철을 밟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게임을 문화로 받아들이고, 규제를 철폐하고, 새롭고 신선한 게임을 만들기 위한 시도와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중국 자본이어도 좋다. 쥐를 잘 잡는다면 흑묘든 백묘든 무슨 상관이랴. 게다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시장/ 모바일 게임 분야는 원래 우리가 잘했던 판이다.
아쉬운 것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것. 앞으로 1-2년 안에 변화를 꾀하지 못하면, 당분간 긴 침체기를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