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샤오미는 전기 밥솥을 출시했다. 밥솥? 스마트폰으로 조작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밥솥이라니? 그런데 별로 이상하게 여겨지지도 않는다. 샤오미는 그동안 스마트폰을 만들어 파는 기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을 내놨다.
캐리어, 정수기, 공기 청정기- 여기까지는 그래도 스마트폰으로 제어를 할 수 있다,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매트리스와 베개 … 라면 어떨까? 이쯤되면 이 회사의 정체성이 궁금해질 정도다. 스마트폰 회사에서 출시하는 매트리스라고?
그런데 지난 3월 31일, 샤오미의 주요 제품 및 신제품을 소개하는 간담회 자리에서, 샤오미와 국내 총판 계약을 맺은 코마트레이드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샤오미에서 직접 만드는 제품은 TV와 스마트 기기(폰+태블릿), 공유기, 블루투스 스피커 3세대 밖에 없다.
그럼 지금까지, 아니 그 간담회 자리에서 발표된 샤오미의 제품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해답은 바로 ‘샤오미 에코 시스템’이라 불리는 것에 있었다. 그동안 샤오미는 수많은 회사에 투자를 해왔으며, 샤오미가 투자한 회사가 만든 제품 가운데 괜찮은 제품을 골라 샤오미 이름을 달고 내보낸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샤오미 제품이라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샤오미 보조 배터리’는 샤오미에서 직접 제조한 것이 아니라, 샤오미 자회사가 제조한 것을 샤오미 브랜드로 출시한 것이란 이야기. 이런 회사 연합군을 샤오미는 샤오미 생태계라고 부른다.
이상한 것은 아니다.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며, 사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회사 연합군이다. 본사와 투자한 회사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는 가의 문제는 남아 있겠지만.
아쉬운 것은, 덕분에 이날 발표회에서 사람들은 속시원한 해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히 ‘스마트폰’과 ‘TV’일텐데, 본사의 ‘생태계 담당자’만 참가했기에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것은 역시 TV. 이날 65인치 커브드 TV를 150만원 정도에 팔 수 있다고 발표까지 했는데, 막상 진짜 나오는 건지, 언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협의중이란 대답밖엔 들을 수 없었다. 스마트폰은 아직 공식 진출할 생각이 분명히 없어 보이고.
이날 발표회에선 정말 다양한 샤오미 제품들을 볼 수 있었다. 전시회에서 보여준 대로, 조만간 샤오미 제품들로만 집 한 채를 꽉 채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이런 것이 예전에 꿈꿨던 홈오토메이션 시스템인 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1~2인 가구가 살아가기에는 적당해 보였다.
하지만 공식 총판을 맺고 AS와 물류도 강화하면서 한국에 어쨌든 진출했다고 한다면,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꼭 나와야 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리된 입장이다.
한국 사용자와 좀 더 친해지고 싶다면, 그런 불확실성을 먼저 분명하게 제거해야 한다. 당장 미핏 같은 제품만 봐도, 앱스토어에 가면 갑자기 앱이 작동 안해서(스마트폰 언어를 한글로 설정시 앱이 충돌함) 제품을 쓸 수 없게 됐다는 원성이 가득 올라와 있다.
예전에는 직구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넘겼지만, 정식 진출이란 타이틀을 단 이상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한다/못한다는 대답을 내놓고,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부분을 빨리 고쳐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총판과 계약을 통한 정식 진출을 선언한 이상, 이제 샤오미를 보는 눈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한국 소비자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 가운데 하나다. 샤오미가 더 많은 한국 친구를 원한다면, 먼저 친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도 않고 무조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 신자가 필요하다는 말일 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