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바이 구글, 구글의 시즌3가 시작됐다

지난 10월 4일 열린 구글 행사는, 이제껏 보아오던 구글 이벤트와는 달랐다. 다른 이벤트가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소개하는 종합선물셋트 같은 모양새였다면, 이번 이벤트는 오직 하드웨어만 집중했다. 메이드 바이 구글- 제품들을 소개하는 내용에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행사에서 여러가지 것들이 소개되지만, 우리는 항상 하드웨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반 소비자들이 직접 만져보게 될 것들은 그것 뿐이니까. 그래서 구글이 이벤트 전에 알로 및 듀오를 출시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개편하고, 구글 맵 및 구글 번역 등의 기능 등을 조금씩 계속 공개할 때도 그러려니 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벤트에서 한꺼번에 공개했을 것들이긴 하지만.

하지만 솔직히, 정말 ‘하드웨어’만 집중해서 소개할 줄은 몰랐다.

 

made by google 2016

구글, 시즌 3를 시작하다

 

이번 행사가 말해주는 것은 다소 명확하다. 지난 시즌1이 인터넷 플랫폼으로서 구글이 성립되는 과정이었고, 시즌2가 모바일 플랫폼으로 구글이 확장하는 과정이었다면, 시즌3에서는 유비쿼터스, 일종의 생활 플랫폼이 되려고 한다.

인터넷 플랫폼, 모바일 플랫폼과는 달리 생활 플랫폼에서는 사용자 경험이 중요하다. 스마트폰처럼 하드웨어가 이리저리 파편화되어 있다면, 깔끔하게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가 없다. 불쾌한 경험을 안겼다간 사용자들은 아마존 에코 같은 이미 익숙해진 시스템에 남거나, 그쪽으로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구글이 선언했다. 그동안 고마웠지만, 모바일 연합군을 여기까지 끌고오지 않겠다고. 생활 플랫폼 세계에서는 이제 각자 알아서 도생하라고. 그리고 집중한다. 서비스 제공자, 소프트웨어 제공자를 벗어나, 새로운 생활 경험 제공자로 다시 태어나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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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애플을 닮아가는 것일까?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통합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맞다. 애플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구글이 애플을 따라하는 거냐고, 볼멘 소리를 내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그런 사용자 경험을 통해 구글이 얻으려는 것은, 애플과는 조금 다르다.

애플이 제품을 사용하는 경험을 제대로 제공하길 원한다면, 구글은 세계의 정보를 정리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자신들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세계의 정보를 정리한다는 것은 결국 ‘자동화’와 맞닿아 있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것은 결국 ‘개인화’와 맞닿아 있다.

이를 위해 개발하고 있는 것이 인공지능이고,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와 앱, 하드웨어 들이다. 자동차까지 포함해서. 우리가 구글 서비스를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구글은 우리에 대해 잘 알게되고, 우리를 잘 아는 구글은 우리에게 알맞은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가 있다.

인터넷, 모바일을 뛰어넘어, 생활 세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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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인터넷 허브를 둘러싼 전쟁은 현재 진행중

 

이러다 구글이 빅브라더가 되는 것은 아니냐고?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글이 무엇을 원하는 지와 상관없이, 어차피 우리는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많은 인공 지능 서비스가 그렇다. 처음엔 낯설어도,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현재 구글이 가는 방향에 놓여 있는 핵심이 구글 어시스턴트고, 구글은 이 서비스를 생활 플랫폼의 중심에 놓게 될 것이다. 구글 픽셀이나 구글홈 같은 하드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핵심은 구글 어시스턴트고, ‘메이드 바이 구글’ 하드웨어는 모두 구글 어시스턴트를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일 뿐이다.

최근 이런 인공 지능 도우미, 또는 허브는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하드웨어 로봇 형태로 시도하는 경우가 많고, 냉장고 같은 가전 제품을 허브로 만들기도 한다. 아마존 에코는 음성 인식 하드웨어를 통해 상당히 성공했다. 구글이 발빠르게 하드웨어 라인업을 정리한 것도 아마존에 밀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있었으리라(아마존 에코는 다른 회사들과 제휴를 통해 발빠르게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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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바이 구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쪽은 구글이 가진 인공 지능 기술을 높이 평가한다. 사실 구글 어시스턴트는 초기에는 불성실(?) 한 면도 있었지만, 이젠 어떤 인공 지능 도우미 서비스와 비교해도 더 나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한국어 사용 환경은 예외로 치자). 아마 애플 시리보다 나을 것이다.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라고 생각하는 쪽은 구글의 태세 전환이 미칠 불확실성에 불안해 한다. 과연 연합군을 등에 업지 않은 구글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애시당초 IT 생태계에서 확장되지 않은 생태계가 살아남은 적이 있었던가?

….물론 구글이 언제까지 혼자갈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오스텔로 체재에서는 통합되지 않은 사용자 경험을 원하지 않을 것이란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둘러싼 전쟁은 시작됐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돕는 서비스를 ‘유쾌하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붙는, IT 거인들의 싸움이. 아마존 에코의 성공이 불을 붙였고, 거기에 구글이 전심전력으로 응답했다.

전쟁의 향방이 금방 결정나진 않겠지만, 당분간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손가락을 빨면서 기다려 봐야만 할 것 같다. 온갖 카피캣 플랫폼들이 ‘내가 바로 한국의 아마존이다!’, ‘내가 바로 한국의 구글 어시스턴트다!’를 외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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