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지능에 알파를 더하면, 차세대 IT 산업

이세돌 9단이 졌다. 인공 지능에게 완패를 당했다. 이 소식으로 지난 한 주 IT 업계는 뜨겁게 달궈졌다. 아니 이 대국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무서움을 느꼈으리라. 나중에 한 판이라도 이겨서 다행이었지,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은 싸우지도 않고 의문의 1패를 당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내심, 이세돌 9단이 정말 질 것이라고는 다들 생각하지 않았기에.

덕분에 인공 지능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경계심도 부쩍 늘어났다. 어떤 이들은 어두운 미래를 떠올린다. 인공 지능이 지배하면서 우리의 직업을 빼앗을, 인간을 노예로 만들 그런 미래를. 음 …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낙관 주의자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확실히 이번 대국은 생각할 것들을 많이 던져줬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번 대결이 보여준 것은 인간과 인공 지능의 실력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삶에 인공 지능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것임을, 바로 그때가 되었음을 선언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때가 왔다. 그런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때는 아니다
출처_플리커

 

인공지능 시대로 가는 첫걸음

대부분의 테크 산업, 또는 컴퓨터 산업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2가지 흐름을 따라간다. 개발 단계와 상품화 단계가 그것이다. 개발 단계는 사실 천차만별이다. 모든 기술이 상용화되는 것도 아니고, 쓸만한 제품으로 만들어지거나 환경이나 기술이 무르익을 때까지, 어떤 ‘시기’를 기다리는 일이 필요하다. 자고로 물이 들어와야 노도 젓는 법이다.

물이 들어온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핵심은 ‘좋은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기, 또는 서비스, 소프트웨어, 아무튼 그런 것들이 등장했는가, 아닌가이다. 기술 산업은 플랫폼과 소프트웨어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한다. 좋은 플랫폼을 만들면 좋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게 되고, 덕분에 그 플랫폼의 값어치가 더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개인용 컴퓨터는 70년대 후반부터 보급되었지만, 시장이 크게 성장한 것은 1981년 IBM PC의 탄생 이후였다. 인터넷은 8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성장한 것은 1993년 모자이크라는 웹브라우저의 등장 이후였고, 스마트폰은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했지만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고 나서야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테크 산업에선 이런 사이클이 (경험상) 10년에서 15년 정도의 주기로 반복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인공 지능과 결합한 제품이 도입되는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그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고.

 

 

차세대 IT가 인공 지능이라 생각하는 이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인공 지능 시대로 들어간다고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로 들어갈 조건들은 이미 갖춰지고 있다.

먼저 하드웨어를 살펴보자. 최근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변화, 또는 혁신은 스마트폰 확산으로 인해 만들어진 컴퓨터 부품의 발전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프로세서와 센서 산업이 크게 성장했는데, 덕분에 한편으론 아주 강력한 프로세서들이 등장하면서, 다른 한 편으론 예전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작고 값싼 부품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5달러 PC, 라즈베리파이 제로

 

예를 들어 라즈베리 파이 제로-라는 초소형 PC가 있다. 신용카드만 한 보드 하나에 모든 컴퓨터 부품이 붙어 있어서, 다른 입출력 장치를 연결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용 컴퓨터다. 이 제품의 가격이 겨우 5달러. 예전엔 백만 원이 넘었던 PC를 이젠 커피 한두 잔 가격에 살 수 있게 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여기가 끝일까? 아니다. 앞으로 더 싸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멀쩡한 성능을 가진 프로세서, 센서, 기타 등등 부품들이 스마트폰 산업의 영향으로 작고 싸지니, 모든 곳에 이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비싼 제품도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해진 성능의 그래픽 프로세서들은, 그 강력한 연산 성능을 가지고 인공 지능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인공 지능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강력한 하드웨어 성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알파고에 연결된 프로세서도 천여 개 이상. 덕분에 그래픽 칩 제조업체가 차세대 IT 산업의 핵심 업체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하드웨어 발전에 발맞춰 소프트웨어도 크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수도 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량의 데이터 = 빅데이터들을 처리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 또는 가상 신경망 소프트웨어의 진화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를 처음 보여준 것이 바로, 2012년 구글의 고양이 식별 연구이다. 이 연구는 유튜브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1천만 개의 이미지를, 1만 6천여 개의 CPU와 연결된 인공 신경망을 통해 분석하게 했더니 인간이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고양이’를 따로 분류해 정의해냈던 사건이었다. 이렇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발달에 기반을 둔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오늘날의 알파고가 있게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점점 인공지능을 개인이나 작은 조직에서 사용하는 것도 쉬워지고 있다. 많은 내용들이 오픈 소스로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 쉽지, 아직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활용해 만들어진 앱이나 작은 스타트업 회사, 연구 결과들이 벌써부터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 등장할지 궁금하다면, 구글 포토를 보면 된다. 구글 포토의 검색에서는 자동으로 같은 사람이 등장한 사진을 찾는다거나, 특정 지역이나 음식물 이름,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이나 애플파이- 같은 단어를 넣으면 내가 올린 사진 가운데 그에 맞는 사진을 자동으로 검색해서 찾아주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지금, 인공 지능이 하는 일이다.

앞으로 음성 인식이나 검색 엔진, 채팅 봇, 3D 스캐너, 언어 번역, 무인 자동차, 드론, 의료 이미지 시스템에서도 꽤 발전된 결과물을 곧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올해나 내년쯤에. 빠르다? 아니다. 우리가 느리다. 이미 세계 이곳저곳에선, 비유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지진 경고가 여기저기 울려대고 있는 상황이다. 지진이 오고, 쓰나미가 몰려든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대피하기 어렵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은 이번에는 안 먹힐 것이다.

 

 

인공지능 + 알파 = 차세대 IT

스마트폰 이후의 IT 산업은 간단히 인공 지능 +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가상 현실이나 무인 자동차를 비롯해서, 사물 인터넷, 드론, 웨어러블 기기 등이 모두 인공지능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 음,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공 지능하면 떠올리는 ‘기계에 의한 인간 지배’ 같은 SF 영화 같은 상황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 아마존에서 공개한 가정용 사물 인터넷 기기 에코의 후속작 에코 닷-을 한번 보자. 음성 비서 기능인 알렉사를 좀 더 편하게 쓰도록 만들어진 이 장치는, 음성으로 아마존 물건을 쇼핑하거나 정보 검색, 가정 내 사물 인터넷 기기 등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종의 보이스 인터넷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인데, 처음엔 조금 꺼려지지만, 한번 사용해 보면 상당히 편리하다는 것이 사용해 본 사람들의 의견이다.

드론 역시 인공 지능과 결합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드론 조정도 어렵고, 값싼 드론으론 원하는 사진도 찍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인공 지능과 결합되면 보다 조정하기 쉬우면서도 다양한 기능을 가진 드론을 만들 수가 있다. 특히 산업용- 위험하게 고층 빌딩 등의 높은 곳을 올라가서 조사해야만 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해결해야 할 일은 아직 많다. 인공 지능 시스템은 지금보다 더 좋아지고, 사용하기 쉬워져야 한다. 지금도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웨어러블 제품 같은 경우엔 하드웨어 부품들이 조금 더 발전할 필요가 있다. 가장 많은 기회가 숨겨진 곳은 역시 인공 지능을 활용한 앱이나 서비스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앱들은 허풍을 좀 많이 치고 있는 편이다. 그 밖에도 생각해 보면 많다. 정말 많다.

최근 무인 자동차 사고 뉴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공 지능과 결합된 제품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동시에, 이 기술을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활용할 것이며,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자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물론 아이폰 같은, 와우! 하고 사람들을 감탄시킬 포인트가 되는 제품이 나타나야 새로운 시대가 열리긴 열리겠지만… 그전에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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