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올해 처음 적고 싶었던 이야기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실 4·16참사 이후에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정부의 부양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모두들 슬프고 분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것이니까. 슬픔과 분노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동어반복이다. 어찌 헌 옷을 벗듯이, 헌신짝을 벗어버리듯이 마음의 일을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자들이 큰 죄를 저질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형량을 줄여서 선고하고, 형기 중에도 특별사면, 일반사면, 집행정지, 가석방, 병보석으로 풀어주는 무법천지를 나는 자유당 때부터 보아왔고 자유당은 지금도 특별사면 중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무너졌고 경제는 합리적이고 규범적인 토대를 상실했다.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 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그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가 없어서 끔찍한 재앙을 당한 소수자의 불운으로 자리 매겨졌다. 그 소수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다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고 다수가 먹고사는 일이 해로운 결과가 된다고 힘센 목청을 가진 언설의 기관들이 힘을 합쳐서 소리 질렀다. 소리 질러서 낙인찍었고,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그렇게 해서 4·16의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 없어서 재난을 당한 소수자의 것, 우는 자들만의 것, 루저들만의 것으로 밀려났다.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과 그 모든 배후의 문제를 다 합쳐서 세월호 제1사태라고 한다면, 제1사태 직후부터 이 나라의 통치구조 전체가 보여준 붕괴와 파행은 세월호 제2사태다. 이것은 또 다른 난파선이다. 제1사태와 제2사태는 양태는 다르지만 뿌리가 같아서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구분할 수 없는데, 과거의 제2사태가 오늘의 제1사태로 터져 나오고, 오늘의 제2사태가 미래의 제1사태를 예비하고 있다.

우리는 세월호를 도려내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 우리는 새로 생기는 위원회를 앞세워서, 세월호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위원회가 동어반복으로 사태를 설명하지 말고 그 배후의 일상화된 모든 악과 비리, 무능과 무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공생관계를 밝히는 거대한 사실적 벽화를 그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유민이의 젖은 6만원의 꿈에 보답해주기 바란다.

나는 사실 안에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사실의 힘에 의해 슬픔과 분노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동력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바르고 착한 마음을 가진 많은 유능한 인사들이 이 위원회에 참여해주기를 나는 바란다. 삶을 쇄신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출처: 중앙일보] [새해 특별 기고] 소설가 김훈

 

이번 촛불 집회에 나가면서 참 재미있는 것을 봤다. 분노가 아닌 공감을 통해 집회를 대하려는 시도를 이제껏 여럿 봤지만, 듣도 보도 못한 깃발이 나오는 것도 많이 봤지만, 그 깃발이 일반 단체 깃발과 함께 하는 것은 처음 봐서다. 혼자 집회온 사람들 깃발과 고려 청자 애호가 모임 깃발이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 노조 깃발과 함께 행진할 때는, 진짜로 재밌어서 웃었다.

아아, 세상 참, 여기까지 왔구나.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 걸렸구나… 하고.

 

위에 옮긴 김훈 선생님의 글은 2015년 1월 1일의 글이다. 결국 세월호 진상조사 위원회는 사실적 벽화를 그리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방해와 공격이 있었는 지는 모두 아는 바다. 진실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작은 싸움이 터져 큰 불이 되고, 불이 산불이 되어 퍼졌다. 김훈 선생님의 말마따나, 제 1 사태는 제 2 사태가 어떤 모습이었는 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던 셈이다.

… 하지만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채현국 선생님의 말처럼, “돈에 환장한 놈들은 잠도” 안잔다. “가만히 앉아있지도 않”는다. “선의만 믿고 게을러지면 선의도 부서”진다. 결국 우리는, 악마처럼, 아니 악마보다 더 부지런해져야만 한다.

그렇다고 한들, 죽은 아이들이 돌아올까. 그럴리는 없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품고 살아가야만 할거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아이들이 가끔 생각날 때면 또 울고, 울게 될거다. 하지만,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다른 미래를 맞게 됐다. 세월호를 품은 사람들이 울며 버텨서, 우리가 쓰러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다.

물론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더 큰 혼란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고, 탄핵 가결 이후에도 별 빌어먹을 사람들이 다 설치고 다닐거다. 저들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기득권은 부지런하다. 세상이 ‘리셋’ 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각자 자기 이익을 끼워넣기 위해 가열차게 쑤시고 다닐 것을 어차피 다 알고 있다.

그런 세상이란 것을 알고 있으니, 두 번 당하지 않도록 노력할 뿐. 그동안 고민하던 많은 것들은 접기로 했다. 일단 무작정이라도 앞으로 가기로 했다. 누군가의 프로파간다로 만들어진 말이라지만, 뛰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하기 보다, 이렇게 된 이상 이런 시절에서 나를 보다 단단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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