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콤 모바일 스튜디오 프로 리뷰(2017)

와콤 모바일 스튜디오 프로 리뷰(2017)

당연한 말이지만, 도구는 작업에 영향을 끼친다. 19세기에 만들어진 박스 이젤(Box Easel)이 그렇다. 화가들이 작업실에서 뛰쳐나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였던 박스 이젤은, 휴대가 간편한 튜브 물감의 보급과 함께 많은 화가들이 작품 소재를 야외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와콤 모바일 스튜디오 프로는 21세기의 박스 이젤이다. 기존 대형 액정 태블릿에 비해 가볍고, 카페에서 작업하기 위해 노트북과 태블릿 입력 도구를 따로따로 챙겨야 할 필요도 없다. 노트북으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13.3인치와 15.6인치 두 가지 크기로 출시되었고, 이 중 이번에 사용해 본 모델은 13.3인치 화면에 i5 CPU, 8GB 램을 가진, 그림 그리기에 적당하다고 소개되고 있는 제품이었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13인치대 화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태블릿 전체 크기는 374 x 248 x 15 mm로 초박형 15인치 노트북과 비슷하다. 무게도 약 1.4kg으로 아주 가볍지는 않다. 거기에 꽤 큰 어댑터와 와콤 프로펜2도 함께 가지고 다녀야 한다. 태블릿과 노트북 컴퓨터를 따로 가지고 다녀야 했던 것에 비하면 간편하지만, 좀 더 개선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디자인은 이전에 출시된 인튜어스 프로 태블릿을 닮았다. 왼쪽 상/하단에 각각 3개의 익스프레스 버튼이 있고(돌려서 사용할 수도 있다), 버튼들 사이에 조그 다이얼로 쓸 수 있는 터치 링이 존재한다. 옆에는 3개의 USB-C 포트가 있고 충전도 이 포트를 통해 이뤄진다. 아쉽지만 스마트폰 보조 배터리를 이용해 충전할 수는 없다. SD카드 포트가 있는 것은 생각보다 편리하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런 디자인에서 오는 장점은 분명하게 있다. 우아함과 편리함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크기 때문에 그리는 작업을 할 때 편하다. 손을 둘 곳이 있고, 펜이 화면 바깥으로 나가도 불안하지 않다. 게다가 존재감이 분명하다. 이 제품을 가지고 잠시 여행을 다녀왔는데, 바깥 어딘가에 앉아 그림을 끄적거리고 있다 보면, 신기해하며 말을 거는 사람을 꼭 만날 수 있었다. 밝은 낮에도 화면이 꽤 잘 보이는 편이라, 그리던 그림이 부끄러워서 화면을 꺼야 했던 것은 덤이다.

 

그림은 신기할 정도로 잘 그려졌다. 처음에 한번 조정을 거치고 나면, 마치 연필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듯 펜과 화면이 잘 달라붙는다. 느낌은 다르다. 유리 위에 펜을 대고 긋는, 살짝 미끄러지는 느낌이 난다. 다행히 새로운 와콤 프로 펜2는 일반 펜촉과 펠트 펜촉을 제공하고 있어서, 펠트 펜촉을 끼우고 사용하면 사용감이 많이 좋아진다. 덕분에 그리기 초보자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어서 이런저런 그림들을 그려볼 수 있었다.

 

배터리는 실사용 시간 4~5시간 정도로 오래가지 않는다. 성능은 뛰어나다. 이번 여행에선 글보다 동영상 편집을 더 많이 해야 했는데, 부하량이 많이 걸리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많이 줄여준 고마운 존재였다. 더불어 펜으로 작업하는 즐거움도 알게 해줬다. 세밀한 작업을 할 때는 마우스보다 펜이 월등히 좋았으니까.

 

솔직히 말해 일반인들에게 권하기는 어렵다. 성능이 뛰어난 만큼 무겁고 크다. 화가라면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박스 이젤을 들고 다녀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가끔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꺼진다거나, 이유 모르게 몇 초 정도 시스템이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드라이버가 업데이트되면 펜 입력도 다시 조정해 줘야 한다. 조금 어렵다.

반대로 전문가들에겐 이만한 작업 도구도 분명 드물다. 어디서나 원한다면 당신의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작업 도구가 바뀌면 작업 방법이 바뀌고, 당신의 작품도 바뀌게 된다. 21세기의 박스 이젤을 원한다면, 이 제품을 눈여겨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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