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4월에도 눈이 내릴까

1. 지난 2월 연극 “3월의 눈”을 봤다. 삶의 막바지, 못난 손주를 위해 남은 집 하나까지 모두 팔고 떠나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쉬운 삶은 아니었다. 숱한 잔인한 시간이 당신을 지나갔다. 그냥 묵묵히 받아들이며 사라지길 택했을 뿐. 기꺼이 그리 했을까. 그럴리가. 집에 머물수 있는 마지막날 밤, 할아버지가 화나 말한다. 세상에 좋은 끝은 없다고. 끝은 그냥 끝이라고.

당신만 그리 알고 있는 삶일까. 실은 모두 알고 있을지 모른다. 늘상 희망을 품고 살지만, 그 품음이 덧없단 것을. 대학만 들어간다면, 취직만 된다면, 결혼만 한다면, 아이만 건강하게 커준다면, 부모님만 아프시지 않는다면, 이 고비만 넘긴다면··· 세상 사람만큼이나 많은 희망과, 그 희망만큼 많은 덧없음. 어쩌다 이뤄진다해도 생각했던 것과 다른.

… 희망과 현실의 간격은 2D와 3D 사이만큼이나 멀다.

 

2. 지난 3월에는 정말 봄 눈이 내렸다. 비도 아닌 것이 곱게 내리더니, 비처럼 땅을 적시고 사라진다. 그 즈음 들풀님의 글을 읽다 봄 눈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

 

안성 사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가 그러시네요.
봄눈은 괜찮다, 원래 그런다. 그래서 봄눈 녹듯이란 말이 있는 거란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린 줄 알았더니 사라져 없다. 덧없고 덧없으니 덧없다. 아득바득 힘들게 살았더니, 이제 내게 사라지라고 한다. 살아있는 목숨이라 아프고, 슬프고, 괴롭다. 이 덧 없는 삶을, 부러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다.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는데 여전히 살고 싶다. 벽에 똥칠을 해도 살고 싶다. 서로 다른 마음이 내 안에서 싸운다. 서로를 상처 내며 함께 간다.

3. 4월 16일이다.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고, 수학 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의 기일이기도 하다. 가고시마에 있다는 성당을 찾아 기도를 드린다. 나 같은 날라리 신자는 꼭 이럴 때만 기도한다. 떠난 이들이 평온하기를. 나 아직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니, 행여 잊혀졌을까 무서워하지 않기를.

내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 문득 시인 임태주의 어머님이 남기셨다는 글이 떠오른다.

 

세상 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4. 사는 일이 별 일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내가 나의 존엄을 세운다는 건 어떤 뜻일까. 아니 얼마나 힘든 말일까. 태어나고 싶다 택하지 않았던 것처럼, 죽기도 택하기 어렵다. 정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살아갈까-정도지만, 그걸 찾기도 쉽지 않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떠다니는 마음이라, 어디 정착하지도 못한다. 택하고 지키기를 못하니 매일 매일 선택을 끝없이 반복하며 살아간다.

다만, 흔들려도 돌아오기를. 매일 반복하는 작은 일들이 모여 내 삶의 무게 중심이 되기를. 내가 정하지 않았다 푸념하지 않고 할 수 있는만큼 정성껏 살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을 잊지 않고, 당신들을 기억하며.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삶을 이끌어 간다. 맞아. 좋은 끝은 없다. 그냥 ‘살아가는 일’만 있는거지. 

 
… 그 끝에 황량한 벌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5. 그냥 고마웠다, 그 말 한마디하고 떠날 수 있는 삶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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