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 아디다스 스마트 팩토리가 진짜로 의미하는

2017년, ‘아디다스가 중국 공장을 폐쇄하고 독일로 돌아간 이유’라는 글이 올라왔다. 2016년에 아디다스가 독일에 ‘스피드 팩토리’란 이름의 새로운 신발 공장을 만든 이후, 인터넷에 많이 퍼졌던 글을 편집해 다시 옮긴 것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1993년 고임금으로 인해 독일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으로 옮겼던 아디다스가, 이번엔 중국 인건비가 치솟자 중국 공장을 폐쇄하고 독일에 완전 자동화에 가까운 공장을 지었다. 공장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말일까? 유감스럽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디다스가 중국 공장을 없앤 것은 맞다. 없앤 이유가 중국 인건비 상승 때문인 것도 맞다. 거기에 더해 당시 중국 스포츠 의류 시장은 상당한 침체기에 처해있었다. 중국이 가진 제도적 문제도 있었다. 나이키는 이미 2009년에 중국 내 신발 공장을 폐쇄했다. 아디다스는 그동안 낮은 생산비가 드는 곳을 찾아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하지만 중국 철수가 이뤄진 것은 2012년이고, 스피드 팩토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은 2015년이다. 두 사건이 인과 관계는커녕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이 있다. 애플이나 나이키와 마찬가지로 아디다스도 이젠 직영(?) 공장이 별로 없다. 제품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실제 생산은 외부 업체에 맡긴다. 때론 디자인조차 ODM 회사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화승 인더스트리가 대표적이다. 게다가 2014년 이후 중국 스포츠용품 시장은 크게 성장하고 있다(아디다스 중국의 2015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27% 증가했다.).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 눈 앞에 있는데 다른 곳에 새롭게 공장을 짓는다? 오히려 이쪽이 이해하기 힘들다.

▲ 아디다스 홈페이지

 

공포를 확산시키려는 거짓말

물론 알고 나면 궁금증은 간단하게 풀린다. 기존 공장에서 생산하는 운동화와 스피드 팩토리에서 운동화는 다르다. 아디다스 CEO 캐스퍼 로스테드의 말처럼 스피드 팩토리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맞춤형 제품을 시장에 도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그저 싼 인건비를 찾아서 만들어진 공장이 아니다. 여전히 아디다스 제품을 만드는 공장(협력업체)은 중국에만 300개가 넘게 있다. 스피드 팩토리 한 군데에서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할 수 있다지만, 1년에 아디다스가 만들어 파는 운동화는 대략 3억 6천만 켤레에 달한다. 스피드 팩토리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맞춤형이기 때문에 가격도 비싸다.

요약하자면 몇몇 기사와 칼럼, 블로그에서 말하는 것처럼 “2015년에 만들어진 아디다스 자동화 공장 스피드 팩토리에서 연간 100만 켤레의 운동화를 단 10명이 제조하고 있다. 미국에선 1600명이 1800만 켤레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동남아 공장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거짓이다. 독일 안스하브에 세워진 첫 번째 스피드 팩토리는 2016년에 처음 시범 생산을 시작해, 2017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애틀랜타에 세워질 두 번째 스피드 팩토리는 2018년 4월에야 문을 열었다.

자동화 공장이 인건비 절감에 강점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리쇼어링(동남아 등의 저임금 국가로 공장을 옮긴 회사들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어떤 자동화 공장도 그런 관점에서 만들어졌다가는 실패한다. 애당초 공장을 정리하고 옮기는 일 자체가 큰 비용이 든다. 그럼 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일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공포 마케팅’이다. 이런 무서운 일이 생길 테니, 이 책을 사거나 저걸 사거나 요런 것을 하거나 하라고.

… 하지만 기술 혁신은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다.

 

▲ 아디다스가 스피드팩토리에서 생산한 첫 번째 신발

 

스피드 팩토리가 가진 진짜 의미

지난 2017년 7월, 모건 스탠리는 “The Need for Speed Hits Athletic Wear”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기술 혁신기에 스포츠 웨어 산업이 어떻게 바뀌고 있지를 담은 보고서로,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에 대한 내용도 자세하게 담겨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기술 혁신이 스포츠 의류 업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분은 제품 디자인과 생산 과정이다. 지금까지 18개월(디자인 11개월+생산 7개월)이 걸리던 신제품 출시 일정을 단 4개월(디자인 2개월+생산 2개월)로 줄어들게 만들 수 있다.

기술 기반 디자인 혁신에서 핵심은 ‘가상 시제품’이다.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 스케치가 이뤄진 다음,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바로 시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최근 이 부분을 진짜처럼 보이는 3D 모델링 작업으로 일부 대체할 수 있게 됐다. 소재에 따른 느낌도 가상으로 재현할 수 있고, 신발 밑창 역시 3D 프린팅을 통해 시제품을 출력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 생산 단계까지 프로토타입 제품을 만들 필요가 확 줄어들었다고 한다.

생산 단계 자동화도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 말한 스피드 팩토리도 이 부분을 중점에 놓고 만들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자동화를 통해 얻어지는 가장 큰 장점은 속도다. 2023년에는 생산량의 20%를 로봇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다고 보고서에는 적혀 있다. 로봇 공장의 장점은 더 있다. 우선 사람보다 섬세하게 페인트를 칠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디자인의 신발을 만들 수 있다. 다른 장점은 소비자가 사는 곳 근처에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생산 공장이 주요 시장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맞춤형 신발 제작에 몇 개월씩 걸렸다. 스피드 팩토리 같은 것을 여러 곳에 건설한다면,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맞춤형 신발을 제작해 공급할 수 있다. 이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하다.

▲ Morgan Stanley, “The Need for Speed Hits Athletic Wear”

 

기술 혁신은 천천히 다가온다

4차 산업 혁명이란 말이 유행한 이후, 여기저기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겁을 주는 매체와 사람이 많아졌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해선 말을 아끼겠지만(개인적으론 기술 혁신기라고 부른다.), 4차 산업 혁명은 그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점진적으로, 조용하게 세상을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엔 B2B 시장이나 B2G 시장에 먼저 등장해, 제품 개발과 생산 공정, 공공 업무부터 천천히 바꿔놓을 것이다. 개개인에게 혁신으로 인한 변화가 인지되는 것은, 여러 생산 과정에 적용되어 기술이 향상된 다음, 충분히 가격이 낮아진 후다.

일부러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낮춰볼 필요도 없다. 기술 혁신기는 이미 시작됐다. 생산 공정이 바뀌는 일부터 시작해 언젠가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뀐다. 개인적으론 아디다스의 중국 공장 폐쇄는 중국 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피드 팩토리는 글로벌 아웃소싱이 가지고 있는 공급 유연성 상실과 같은 여러 가지 단점들을 보완하려는 조치다. 동시에 아디다스란 기업이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맞춤형 제품 생산, 외부 협력을 통한 새로운 디자인 개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신만의 운동화를 만드는 등 미래 변화를 대비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 그래서 섣부른 협박성 멘트를 경계한다.

오히려 우리를 위축 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장 무엇인가를 할 수는 없는데,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준다. 말은 많은데 하는 것은 없는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하지만 기술 혁신은 그렇지 않다.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주시하고, 그 가운데 우리에게 쓸만한 것들을 찾아 적용하는, 때론 새로운 비즈니스 변화를 모색해 보는 차분한 통찰이 필요한 시기다.

* 남들이 뭘 잘하는지 찾아 보는 이유는 우리를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트렌드에 뒤쳐지면 죽을지도 몰라서가 아니라.

* 2017년 9월 기고한 글입니다. 제가 게을러 이제야 백업합니다. 글에 있던 시기는 올리는 때에 맞춰 수정했습니다(작년→2016년).

* 중국이 어떤 나라인데, 스피드 팩토리에서 만드는 신발값이 더 싸면 당장 이걸 국내에다 짓지 다른 나라에 뺏기고 있을까? + 중국을 아직까지 저렴한 하청 공장으로만 보고 있단 말이야? 란 의구심에서 조사를 시작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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