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지구는 ‘포켓몬고’ 열풍에 몸살을 앓았다. 게임을 내려받은 사람만 7억 5천만 명 이상. 어딜 가나 보조 배터리와 연결된 스마트폰을 들고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증강 현실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덤이다. 아쉽게도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도 즐기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그래서일까? 증강현실-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포켓몬고’를 떠올린다. 증강현실이 2017년 하반기에 뜰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포켓몬고 아직도 하는 사람이 있어? 증강 현실 그거 지나가는 유행이었던 것 아냐?’ 누구를 탓하랴. 작년에 ‘내가 제2의 포켓몬고다!’라고 외쳤던 것들이 지금 싹 사라진 것을 보면, 할 말이 없긴 하다.
하지만 증강 현실 열풍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구글 탱고, MS 홀로 렌즈, 인텔의 프로젝트 알로이, 데모 화면만 공개된 매직 리프에 이어 애플이 증강현실 시장 참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상은 2년 전에 나온 아이폰 6S 이상 제품으로, 지구 위에 깔린 최소 8억 대가 넘는 아이폰에서 증강현실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애플은 왜 증강현실을 이야기할까?
시작은 2017년, 애플이 주최하는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 WWDC 2017이다. 이곳에서 애플은, 신형 아이패드 프로 같은 다양한 하드웨어와 함께 AR키트라 부르는 모바일 기기용 증강현실 개발 꾸러미를 함께 발표했다. AR키트라고? 그럼 아이폰에서 포켓몬고 같은 게임을 쉽게 개발할 수 있게 된다는 건가?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반만 맞았다.
애플이 내놓은 증강현실 플랫폼은 포켓몬고 그 이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포켓몬고가 보여준 증강현실이 반쪽짜리였다. 그냥 카메라로 보이는 화면에 포켓 몬스터 그래픽을 입힌 AR. 우리가 디카로 찍은 사진에 포토샵으로 그림 그리는 것과 하나 다르지 않은 저퀄리티 AR. 진짜 증강 현실 화면은 다르다. 화면에 그려진 그림이, 화면 속 현실과 어울려 반응한다.
이게 애플이 증강 현실을 강조하는 이유다. AR를 통해, 컴퓨터는 모니터 화면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사용하는 진짜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 가을 공개될 iOS 11에 담긴 애플 지도는, 마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내비게이션을 위해 실제 현실 화면 속에 놓인 화살표를 보여준다. 그 기능을 응용한 ‘플라이 오버(Flyover)’ 모드를 이용하면, 새가 되어 나는 느낌으로 도시를 둘러볼 수도 있다.
애플이 꾸릴 증강 현실 생태계
물론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백번을 양보해도 그냥 재미있는 부가 기능이 하나 더 덧붙여진 정도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꼭 이걸 써야 할 이유가 없다면, 아무리 신기해도 가능성은 거기까지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지 간식이 아니니까. 스마트폰이 휴대폰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뺏으며 손바닥 안의 컴퓨터가 되었던 것처럼, 증강 현실도 현실 공간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일의 도구’가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애플은 새로운 기술을 내놓는 회사가 아니라 알려진 기술을 가장 쓸만하게 다듬어내는 회사다. 애플이 증강 현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상당히 오래됐고, 뒤늦게 출시된 애플 ARkit은 단순한 증강 현실 제작 프로그램이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도구와 그걸 배포할 수 있는 유통망, 사용을 기다리는 수 억 명의 고객이 함께하는 플랫폼이다. 처음 아이폰 3Gs가 나왔을 때처럼, 하나의 생태계를 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생태계에서는 스마트폰 초기 시장처럼 굉장히 다양한 AR 앱이 만들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고 생각해 보자. 신발 한 켤레를 출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 정도고, 그중 절반이 디자인 작업에 드는 시간이다. 그런 디자인을 가상현실로 만들면 어떨까? 3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신발을 시제품으로 만들 필요 없이, 증강현실로 같이 보며 얘기한다면 검토 시간이 굉장히 줄어들게 된다.
증강 현실은 어디에 사용될까?
이케아 같은 회사에선 소비자가 이케아 가구를 사기 전, 좀 더 실감 나게 고객의 집에 놓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회의하면서 참가자들이 함께 회의실 탁자 한가운데에서 보이는 그래프를 확인하고, 실시간으로 수정하거나 대응책을 논의할 수도 있다. 마치 축구 경기장에 있는 것처럼, 마루 테이블 위에 놓인 실제 선수들이 뛰고 있는 작은 축구 경기장을 함께 보면서 응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래된 아이디어는 즉시 구현되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주위를 둘러보면 커피숍을 찾을 수 있거나, 특가 판매하는 가게의 가격을 보여주는 앱도 공개됐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친구를 찾아주는 앱도, 스마트폰을 들고 하늘을 보면 날씨를 알려주는 앱도, 물건 사진을 찍으면 그 물건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앱도, 모두 증강 현실이 붐을 일으키던 2010년부터 존재하던 아이디어다.
간식 같은 존재라고는 하지만 게임도 중요한 요소다. 얼마 전 현실 공간에서 슈퍼 마리오를 즐길 방법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 앱을 비롯해 , 릿지라인 랩에선 진짜 강아지처럼 반응하는 가상 강아지 데모 영상을 선보였고, 증강 현실에서 좀비나 외계인이 등장하는 게임은 당연한 것처럼 등장했다. ‘머지’라는 이름의 증강현실 장난감을 이용하면 해부학 공부를 하거나 비행기 전투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업 훈련을 비롯해 건축 현장이나 안전 점검 등에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AR를 이용해 간단한 실습을 하는 의대생도 있고, 비행기 같은 기기를 수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쪽에서도 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만들어지지 않은 건물을 현장에서 증강 현실로 미리 보는 것도 가능하다.
반드시 트렌드가 될 증강 현실의 미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예전부터 증강 현실을 준비해왔던 MS나 구글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구글은 공간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를 탑재한 독립형 가상현실 헤드셋을 공개했고, 이미 철수했다 생각했던 구글 글라스도 업데이트를 하면서 작업 현장에서 사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MS는 기존 홀로렌즈보다 저렴한 299달러의 저가형 홀로렌즈를 선보였다. 어떤 회사도 애플 혼자 이 시장을 독식하게 놔두진 않을 것이다.
증강현실은 앞으로 안경 형태의 기기로 확장될 것도 분명하다. 시작은 스마트폰이겠지만, 아무래도 AR를 쓸 때마다 스마트폰을 든다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MS와 구글을 비롯해 미지의 회사 매직 리프, 페이스북, 애플까지 증강 현실용 안경을 만들 준비를 이미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차적인 목표는 완전히 컴퓨터 기술이 녹아든 세상, ‘디지털 오버레이 월드’겠지만, 애플의 수장 팀 쿡은 이미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반드시 보급할 것이라고, 그리고 대규모로 보급됐을 때, 더 이 기술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당신의 일에 증강 현실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 2017년 9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글에 나타난 시간 표시는 모두 올해에 맞게 고쳤습니다.
* 물론 기고한 후에도 AR 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다만, 여러 실전 테스트를 거치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대해 다시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이것도 벌써 써둔지 4개월..
* WWDC 2018 정리 글을 올리기 전에 등록해야 할 것 같아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