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제품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두 가지를 찾고 있다. 하나는 어디서나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도구다. 아무렇게나 갖고 다니다가 펼치면 바로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최고의 글쓰기 머신을 꿈꾸는 글쟁이는 한 둘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USIM 카드를 한 번에 두 장 쓸 수 있게 해주는 듀얼 유심 아이폰이다. 아이패드와 궁합이 맞아서 아이폰을 많이 쓰는데, 다른 나라에 갈 때마다 듀얼 유심을 쓸 수 없어서 불편했기 때문이다(아이패드 프로에 내장된 애플 유심을 이용해 많은 나라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지만, 비싸다.).
지난 9월 12일 열린 애플 이벤트에서 이런 내 꿈이 이뤄졌다. 아이폰 XS 시리즈는 e유심을 이용한 듀얼 유심 기능을 지원한다. 하지만 아직 e유심을 제대로 지원하는 나라가 많지 않기에, 유심 카드 두 장을 끼울 수 있는 아이폰이 필요하다 싶었는데, 중국에서만 그런 아이폰을 팔겠다고 또 말한다. 팀 쿡의 끝내주는 중국 사랑이 초래한 결과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요즘 중국 여행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이유다. 세상에,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중국 여행을 고민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음, 여기서는 홍콩도 중국이지만(다만, 홍콩판은 아이폰 XS 맥스만 물리 듀얼 유심을 지원한다.).
팀 쿡의 시대 애플의 혁신은 이윤의 혁신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고민은 거기서 벽에 부딪힌다. 원하는 기능을 가진 아이폰이 나왔는데, 애플이 아이폰 XS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가격을 확 올려버렸다. 이벤트가 끝나고 나니 다들 가격만 얘기할 정도로 충격적으로 올렸다. 10주년 기념 아이폰 X에서 끝날 줄 알았던 999달러라는 가격이, 아예 기준가가 돼버렸다. 새로운 아이폰 XS는 999달러부터 시작한다. 보급형(?) 아이폰 XR 조차 749달러라는, 아이폰 8 출시가보다 더 비싼 가격을 가졌다.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그래도 팔린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부품 원가를 낮추지 못했다. 작년 아이폰 X때 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트루 뎁스 카메라 모듈 같은 부품의 공급 지연으로 안정적 생산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이번에도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애당초 LG 디스플레이에서 아이폰 XS MAX의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기로 했지만 문제가 생겼고, 결국 현재까진 삼성 디스플레이 단독으로 부품을 납품하면서 디스플레이 가격을 제대로 낮추지 못했다. 결국 아이폰 X를 단종시키고 XR이란 변종 모델을 만들어내야 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하나는, 그렇게 팔아도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너무 비싸다는 얘기를 들었던 아이폰 X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이다. 지난 2018년 2/4분기(애플 3/4분기) 아이폰 판매는 1% 늘었지만, 이익은 20%가 늘었다. 전체 판매량의 1/3을 차지하는 X이 수익률에선 절반을 차지한다. X 덕분에 애플은 시가 총액 1조 달러가 넘는 기업이 될 수 있었다. 팀 쿡 시대 애플은 이윤을 혁신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애플은 349달러~1099달러였던 아이폰 판매 가격대를 449달러~1449달러로 바꿔놨다. 중간 판매가는 636달러에서 765 달러로 올랐다. 몇 년간 700 달러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했던 아이폰 평균 판매가 역시 아이폰 X 출시 이후 올라갔고, 이젠 더 올라갈 예정이다.
애플은 다른 스마트폰 회사가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가격 정책을 택함으로써, 아이폰을 최고 스마트폰 자리에 올려놨다. 누구도 택하기 쉽지 않은 전략이다. 아이폰이니까 이렇게 비싼 가격을 매겨도, 예전보다 많이 팔리진 않겠지만 충분히 이익이 늘어날 만큼은 팔린다. 얄밉게도 애플은 고가 아이폰이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찾았다. 판매량이 줄어도 이익이 쑥쑥 늘어날 것이 눈에 보인다. 이번 행사 이후 가장 큰 환호성을 지른 이는 아마도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아이폰 XS 가격만 볼 수 없는 이유
단순히 비싼 아이폰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애플은 아이폰도 양극화시켰다. 10주년 기념 아이폰 X은 1년 만에 단종시키면서 아이폰 7과 플러스, 아이폰 8과 플러스라는 모델은 중저가 모델로 살려뒀다. 아이폰 XS 가격이 너무 비싸다 생각하는 사람이나 새 인터페이스가 맘에 들지 않으면 이쪽으로 바꾸라는 말이다. 구모델인 아이폰4가 신형 판매량을 잡아먹자, 구형 아이폰을 죽이겠다고 아이폰5c를 냈던 애플답지 않은 결정이다.
아, 예전 아이폰 8 출시가보다 50달러 비싼 아이폰 XR을 선보이는 꼼수도 잊지 않았다. 카메라를 줄이고 다양한 컬러 베리에이션을 가지고 태어난 모양(=절대 아이폰 XS 시리즈로 안 보이게 하는)이 아이폰5C 전략과 유사하지만, 단종 이후 가격이 떨어질 아이폰 X 구형(통신사 재고분)을 견제하기 위해 내부 부품은 아이폰 XS 시리즈와 같은 것을 썼다.
나쁘지 않은 결정이긴 하다. 최근 기종별 아이폰 판매량을 보면 그렇다. 2017년 3월에는 당시 최신인 아이폰 7과 플러스가 70%에 가까운 판매량을 가지고 다른 아이폰 SE와 아이폰 6s, 6s 플러스가 30% 조금 넘는 판매량을 보였던 반면, 2018년 3월에는 6s, 6s 플러스, se를 합쳐서 20%, 아이폰 7과 플러스가 약 20%, 8과 8 플러스가 40%를 조금 넘고 아이폰 X이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아이폰을 사는 사람이 아주 다양해졌다는 의미다. 굳이 이미 쓰고 있는 폰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부터, 새로운 폰이라면 일단 사고 보는 사람까지.
판매량 부족은 구형 아이폰으로 메꾸고, 이익은 신형 아이폰에서 남긴다. 비싼 아이폰 XS가 먼저 눈에 밟히지만 실제론 싼 아이폰부터 비싼 아이폰까지 다양한 가격대를 갖췄다. 예전과 다른 점은, 가장 싼 아이폰 7조차 그냥 써도 될 만큼 성능 문제가 없다. 단종된 SE와 6S도 인도 같은 신흥 시장에선 계속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팀 쿡은 지금 충성도 높은 사용자들로 이뤄진 아이폰 제국을 완성할 기반을 완성했다. 솔직히 작년 말에 아이폰 구형 부품을 계속 쌓아두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이 부품으로 아이폰 SE 2가 나올 거라 생각했지 아이폰 7/8의 지속 생산을 위한 일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래서 아이폰 XS를 살까 말까?
현재 가격 정책이 지나치다는 것을 애플이 모를 리 없다. 원래 계획은 아이폰 7과 8일 엔트리에 넣고, 아이폰 X를 가격 인하하며, 아이폰 XS와 XS 맥스를 원래 아이폰 가격대에 출시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폰 XS 생산 과정은 그런 면에서 부담을 줬고, 아이폰 X 판매량은 새로운 가격 정책으로 가도 된다는 신호를 줬다. 많은 이들은 '그래도 팔린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성숙기 시장에서 제품 고급화 및 가격 상승은, 프리미엄 가전처럼 흔히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가며 새로 나온 아이폰을 사야 하는 가는 다른 문제다. 애플은 아이폰을 명품처럼 브랜드 가치가 있는 스마트폰으로 자리매김시켰지만, 그렇다고 ‘절대가치’가 사라지진 않는다. 객관적으로 봐서 지금 잘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놔두고 듀얼 유심 아이폰이란 이유로 그만한 돈(=책을 천 권 넘게 팔아야 받을 수 있는 인세)을 지불할 가치가 있을까?
시장이 생각대로 반응한다는 보장도 없다. 아이폰 XS 판매량이 잘 나올지 아이폰 XR 판매량이 잘 나올지도 모른다. 만약 고가폰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범위가 아이폰 X 에서 어느 정도 끝나 있었다면? 아이폰 7과 8 판매량이 생각 이상으로 잘 나와서 전체 이익률은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면? 내년 애플은 가격 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이미 원가 절감을 위한 설계에 들어간 것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어찌 보면 애플 입장에선, 지금 꽤 큰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가심비와 가성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애플이 만든, 속셈이 뻔히 눈에 보이는 시장에서, 모르는 척 속아줘야 할까,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해야 할까? 내년까지 기다려보는 것이 나을 듯한데, 원하는 듀얼 유심 폰이 나온 것이 눈에 밟힌다. 듀얼 유심 폰을 원하지만 100% 한국 판매 제품과 모델명이 다를 테니, 구입한다고 해도 AS 문제가 심하게 걸린다. 이번에 나온 아이폰 XS MAX는 AS 비용이 심하게 비싸져서, 디스플레이 교체비가 45만 원 정도 되니까.
... 하아, 오늘도 밤이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