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어느날, 조동진 노래를 들으며 썼던 글

일요일 아침 / 눈부신 거리 위로 / 희고 검은 비둘기들 내려와 / 그 작은 평화

일요일 아침 / 길 건너 달려오는 / 나부끼는 그대 옷깃 다가와 / 그 바람 향기

시간은 / 내가 따를 수 없는 / 바쁜 걸음으로 / 저만치 가버리고 / 오래 전부터 비어 있던 이 곳 / 버려진 우리의 꿈

그래 나는 여기 / 여기 남아 있기로 했다 / 그래 나는 다시 / 다시 꿈을 갖기로 했다

– 조동진, 일요일 오후

 

1. 나른한 오후, 햇살이 따뜻하다. 베란다에 마련해 놓은 책장에 기대, 권윤주의 ‘고양이에게’를 읽고 있다. 고양이 사진들이 참 예쁘다. 문득 그가 적어놓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집에서 상전 대접을 받는 고양이건 / 길에서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고양이건 / 그들이 자신의 위엄을 버리는 일 따윈 없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멋지다, 고양이 형제들.

 

2. 사람이 사람으로 설 수 있는 첫 걸음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부터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당신의 명령을 거부한다고. 당신의 말이 아니라 내 말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 사람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고. 고통이 있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통제와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하는 순간.

그 향기가 짙어지는 순간은, 어느 날 ‘그렇지만, 나는-‘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그렇지만 나는, 당신이 좋다던가. 그렇지만 나는, 너와 함께 가겠다던가. 그렇지만 나는, 그 일을 하겠다던가-하는. 어떤 이해관계나 계산적인 따짐을 넘어, 사람이 사람을 사람의 마음으로 대하는 순간.

하지만 사람의 품격은, 누군가가 희미하게, “…나는, 그냥 남겠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드러난다. 나는 도망치지 않겠다. 나는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아파하지 않겠다. … 나는, 그냥 이 자리에 남겠다, 라고.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긍정하는 그 순간. 단순한 열정을 넘어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는 순간.

 

3. …그냥 스노우캣의 글을 읽다가 조동진의 노래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어깨 위에 새라도 한 마리 앉혀놓고 물어볼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다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나? .. 라고.

 

2007년 5월 어느 날, 조동진의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다가 썼던 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만들고 불러줬던 그가 오늘, 세상을 떴다. 그곳에서 평온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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