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와 싸우는 IT 기술

전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IT는 크게 세 가지 용도로 쓰인다. 발병이나 진행 상황을 예측하는 일, 전염병 발생 시 빠른 정보 교환과 자료 정리를 돕는 일, 빠른 치료와 확산 방지를 돕는 일이다. 이번엔 여기에 하나를 더해야 할 듯하다. 타인과 접촉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상생활을 돕고 서로를 연결하는 기술은 결국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다. 다시 말해, IT는 삶을 돕는다.

유전자 분석에 쓰이는 IT

 

이번 코로나 19 사태에서 가장 많이 활약하는 IT 기술은 어떤 걸까? 로봇도 아니고 5G도 아니다. Real Time PCR(실시간 유전자 증폭 검사) 기기와 소프트웨어다. 2003년 유행한 사스 때도 쓰였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진단할 때도 쓰인다. 기존에 24시간이 걸리던 검사 시간을 6시간 이내로 단축한 기술이다.

 

▲ Eco 48 Real time PCR machine / 사진 제공 PCR max

 

RT-PCR 기술을 쓰려면 코로나 19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가 있어야 한다. 사스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유전자 분석에 차세대 시퀀싱(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장비를 쓰고 있다. NGS를 쓰면 빠르고 저렴하게 염기 서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코로나 19 유행이 시작되자마자,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었다.

정보가 올라오자 세계 과학자들이 즉시 분석에 들어갔다. 이를 토대로 세계 각국에서 검사 키트 개발, 백신 연구 등을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 한국은 1월 13일 검사법 개발에 착수, 1월 31일부터 RT-PCR 기반 새로운 검사 방법을 도입했다. 사스 때 염기 서열 분석에 한 달, 진단키트 개발에 몇 개월이 걸리던 것을 생각하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속도다.

 

페이크 뉴스와의 전쟁

 

IT가 모두를 안전하게 만들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코로나 19는, 사상 초유의 소셜 네트워크 판데믹도 불러일으켰다. 낯선 공포에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는 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소셜 네트워크 사용이 일상화된 이후, 우리는 조금 다른 형태의 폭력과 마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벌어진 ‘호파도라 괴담’ 사건이 있다. 사람을 해치는 ‘호파도라’란 존재가 나타났다는 인터넷 루머가 떠돌자, 이에 민감해진 마을 주민이, 우연히 나타난 외지인을 호파도라로 여겨 폭행해 죽인 사건이다. 이렇게 죽은 이가 스무 명이 넘는다고 한다. 페이스북에 의도적으로 퍼진 혐오 표현으로 인해 시작된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사건’도 있다.

 

 

여기까진 남의 문제,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휘말린 문제라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코로나 19 감염이 시작되자마자, 중국인, 크게는 아시아인에 대한 서구의 혐오 표현이 증가했다. 소셜 네트워크로 흘러간 정보를 통해, 혐오가 일어나거나 부추겨졌다. 실제 폭력 행위도 일어났다. 아시아권에서 오는 사람들을 집단으로 거부하는 지역도 생겼다.

이에 대한 대처는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무기력하거나, 무능하다. 페이크 뉴스 콘텐츠를 막거나 삭제하는 일 정도가 전부다. 최근에는 텔레그램이나 왓츠앱 같은 암호화된 메신저 대화방에서 많은 루머가 퍼지지만, 이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거짓 정보에 기반한 혐오가 SNS를 통해 퍼지면서 폭력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예측 기술과 로봇

 

전염병 유행을 예상하거나 막을 수는 없었을까? AI 스타트업 블루닷(Bluedot)은 세계 보건기구(WHO)보다 먼저 코로나 19 유행을 예측해 주목을 받았다. 국가 기관에 의존하는 국제기구와는 달리, 언론 보도나 항공 데이터, 동식물 질병 네트워크에서 수집한 정보를 조합해 집단 감염 위험 지대를 경고하는 시스템이다.

새롭지는 않다. 전염병, 지진, 날씨를 비롯해 새로운 패션 트렌드까지,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생각보다 많다.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 상대로만 정보를 판매하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예측이라기보다는, 이미 시작된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는 기술에 가깝다. 참고할 수는 있지만, 실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쓰기는 어렵다.

생각지도 못하게 로봇은 꽤 활약하고 있다. 실증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위험해진 상황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거나, 예비 환자를 단속하거나, 자가 격리된 사람들에게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 들어 미국 인터치 헬스에서 만든 비씨(Vici)라는 디지털 아바타 로봇은,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만나러 들어간다. 의사는 로봇에 부착된 태블릿 PC와 검사 장비를 이용해 환자를 원격 검진한다. 한국에선 명지병원에서 쓰고 있다.

 

▲ InTouch Health Vici / InTouch Health 제공

 

휴림 로봇에서는 스마트 방역 케어 로봇 ‘테미’를 선보였다. 자가 발열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음식이나 약물을 원격 배달할 수도 있다. 감염 의심 시 방역 담당자와 영상 통화도 할 수 있게 해 준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가 주도해 중국 스타트업이 만드는 로봇을 대거 투입하는 중이다. 가오신싱 그룹에서 만든 첸쉰이란 로봇은 공항을 돌아다니며, 한 번에 10명씩 체온을 측정하고, 체온이 높은 사람에겐 음성으로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밖에 약 제조 로봇, 식당 로봇, 소독 로봇 등 다양한 로봇들이 투입되어 의료진을 돕고 있다.

시민 기술과 언택트 문화

 

코로나 19로 인해 IT 기반 라이프 스타일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비대면 생활과 원격 협업이 중심이다. 중국 핑안굿닥터는 원격 의료 진료 서비스다. 서비스 등록 사용자만 3억 명이 넘는다. 우한에 자가 격리된 사람들은 이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우한 시내 병원은 베이징 등 다른 도시 병원과 5G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화상회의를 하기도 하고, CT 사진 판독 등을 다른 병원에서 해주고 있다.

온라인 이벤트는 빠르게 일상이 됐다. MWC 2020을 비롯해 각종 대형 이벤트가 취소되면서, 올해 신제품 발표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거나 연기됐다. 미디어 이벤트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한국에선 여러 학교 졸업/입학식도 온라인 생중계로 대체됐다. 스포츠 경기도 관중 없이 경기만 중계하기도 한다. 사회생활 역시 많은 부분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경험’을 중심에 놓고 마케팅하던 세계가, 순식간에 온라인 스트리밍 중심으로 바뀌어 버렸다. 서툴지만 원격 근무에 참여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대중화되고 지도 같은 정보를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하면서,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감염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움직인 경로를 보여주는 ‘코로나 맵’은 서비스는, 아마존 웹서비스(AWS)와 네이버 지도 API를 이용해 하룻밤 만에 만들어진 서비스다. 정직한 코로나 마스크 판매 사이트만 보여주는 ‘코로나 마스크’, 코로나 19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코로나 나우’나 ‘코로나 알리미’도 마찬가지다. 앱과 인터넷 서비스는 이미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 지금 만들어진 문화가 잠깐 머물다 끝날까 아니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매김할까? 로봇과 원격 근무, 비대면 문화는 주류로 떠오를 수 있을까? 판단하기 어렵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고 살 수는 있지만, 그런 세상이 과연 행복할까. 어쨌든 앞으로, 지금 같은 전염병 위기는 계속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마다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선, 그런 상황을 대비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 위험과 혼란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 2020년 3월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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