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UMPC

이제 컴퓨터는 흔해졌습니다. 누구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스마트폰 안에 담긴 유심칩도 아주 작은 컴퓨터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20세기 소년들이 생각하는 컴퓨터라면, 역시 모니터와 키보드, 본체가 어우러진 어떤 것-일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전에 핸드헬드PC에 나름 푹 빠져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HP 200 LX를 비롯해 모디아, 리브레또 같은 PC를 항상 가지고 다녔죠. 결국 모자란 성능에 PDA로 넘어갔지만, 지금도 가끔 키보드가 달린 소형 컴퓨터를 보면 미치고는(?) 합니다.

아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HPC를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을 계속 꿀 수는 없는 법. 더 좋은 컴퓨터는 이후에도 쏟아져 나왔고, 특히 PDA…에 빠져, 저는 작은 PC에 대한 로망을 잊어 버리게 됩니다. 더 강력한 휴대폰을 찾고 있던 시기죠. 그때 제 꿈을 일깨워준 기기가 하나 나왔습니다. ↑ 아시는 분은 모두 아실, 원칩 MSX 입니다.

이제 와 마이크로 PC라고 하기엔 좀 많이 큰 편이지만(책 한 권 크기), 그때는 과거 컴퓨터가 이렇게 실물로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개무량했죠. 뭐랄까. 2007년, 지금 생각하면, 지랄 맞지만(?)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윈도가 돌아가는 5인치 노트북 전화기, 샤프 윌컴 D4 같은 제품도 있었죠(2008)… 아아, MS의 오리가미 프로젝트와, 삼성 센스Q1(2006) 같은 제품도 기억 나네요. 살까말까 미친 듯 고민했는데, 당시 여자 친구가 미친 듯 뜯어 말렸던. 휴대폰 등장과 더불어 모바일 컴퓨팅에 대한 욕망은 충분히 무르익어 있었어요. 아이폰 같은 제품을 못 만들었을 뿐.

 

 

이후 이런 흐름은, 스틱 형태 PC로 이어지게 됩니다. 구글 크롬 캐스트가 가장 유명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혼자선 뭘 못하는 아이였으니 제쳐두고- 나름 유명하다면, ↑ 역시 FXI 사의 코튼 캔디가 되겠죠. 2011년에 발표된 이 안드로이드/리눅스 PC는, 컴퓨터 본체가 이렇게까지 작아질 수 있구나-를 알려준 제품입니다.

… 아무래도 스마트폰이 발전한 덕을 많이 봤죠. 프로세서가 무려 삼성 엑시노스 4210이었으니까요.

 

 

여기서 파생된 흐름은, 2가지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스마트 PC…를 지향하는 스틱PC나 TV 박스 형태 제품으로 발전한 쪽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이젠 굉장히 다양하게 쓰이는 라즈베리 파이 PC 입니다(2012). 영국 라즈베리 파이 재단이 기초 컴퓨터 교육을 위해 만든 컴퓨터죠. 말도 못하게 싼 가격이 매력적입니다. 술 한 잔 안 마시면 살 수 있으니까요.

… 그리고 우리는, 라즈베리 파이로 뭐든 만드는 굇수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됩니다.

 

 

반대로 사도(?)를 걸었던 제품도 있습니다. 한때 많은 기대를 모았던 리눅스 스마트폰, 우분투 엣지입니다(2013). 평소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용하다가 모니터에 꽂으면 바도 컴퓨터가 되는, 삼성 덱스 개념을 가지고 있던 기기였죠.

… 아쉽지만, 크라우드 펀딩 실패로 사라졌(…).

사실 이때쯤 이런 여러가지 기기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스마트폰 크기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폰 화면이 작으니 더 큰 화면에서 모바일 컴퓨팅을 즐기길 원했고, 그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죠.

 

 

이런 욕망은 결국 더 커진 패블릿(…햐, 이 단어 오랜만에 씁니다, 갤럭시노트 2011)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아이패드 2010), 울트라북(인텔 2011, 맥북 에어 2008)으로 흡수되어 사라… 진줄 알았더니, 2015년 중국 GPD에서 마이크로 PC급 제품을 게임용으로 내놓으면서(GPD XD), 결국 미니 노트북 형태로 부활하게 됩니다.

위 사진에 있는 제품은 GPD 마이크로 PC로, 6인치 화면과 키보드를 장착한 미니 노트북 컴퓨터입니다. 포켓 컴퓨터라고도 불러요. 노안이 온 제 눈으론 이제 저 크기 화면으로 타이핑하기는 꽤나 어렵습니다만(안경 벗으면 됩니다. 훗훗). 아 근데 쓰고 보니 무슨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역시 미니 노트북을 만드는 원넷북에서 만든 원GX1(OneGX1)도 최근 출시됐습니다. 7인치 화면에 FHD 해상도, 623g 무게를 가진 제품입니다. 특이하게 게임 패드를 본체 양 옆에 붙여서, 게임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CPU가 무려 i5.(i5-10210y). LTE 대응 모델도 있음. 언젠가부터 이런 제품이 흔해졌죠…

 

현재 펀딩을 받고 있는 츄위의 라르크박스-라는 미니 PC도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4k 미니 PC라고 주장하는 데요. 크기가 무려 야구공 하나 크기입니다. 물론 요즘엔 이런 작은 제품이 한 둘은 아니지만요. 유별나게 작기는 합니다. 성능도 작아서 좀 그렇긴 하지만.

 

작년에 나온 비슷한 제품으로, 아이라이프 MP8도 있습니다(iLife mp8). 셀러론 CPU를 채택한 제품으로 크기는 5x5x4cm. 아직 출시는 되지 않았는데, 이 제품이 위에 있는 라르크 박스 모태가 되지는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물론 이 제품이 더 작긴 작습니다. 성능은 더 좋고요(응?).

요즘엔 스마트폰과 노트북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마이크로 PC는 니치 마켓에 속합니다. 펜리스 형태 컴퓨터로 산업용, 스마트 TV 박스 등으로 사용되거나, 사무용 PC로 사용되는 일이 많습니다. 마이크로 노트북 역시 비슷합니다. 산업용, 게임용으로 주로 쓰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건, 원고 쓰려고 예전 PC 관련 글을 좀 읽다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그렇습니다. 뭐랄까.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뭐든 하려고 했지만 뭐도 할 수 없었던, 그때가 벌써 옛날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요즘 스마트폰이, 그런 상황에 놓인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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