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올림푸스 카메라

기능은 컨셉을 실현해야 한다. 디자인은 기능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디자인은 아름다워야 한다.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느냐의 문제이고, 그 때문에 형태와 기능 양쪽에 관여한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향한 관심이고, 기기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문제이다.

올림푸스 PEN의 클래식한 디자인은 그 제품을 갖고 싶게 만들고, 쓰고 싶게 만든다. 사진을 찍기 위해 PEN을 잡았을 때 바디는 손바닥에 밀착되고, 그립은 부드럽게 손에 닿으며,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버튼이 있는 곳에 놓인다. 이제 남은 것은 찍는 일 밖에 없다. PEN을 디자인한 이들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9년전, 한 잡지에 보냈던 올림푸스 PEN E P-3 모델 디자인 리뷰의 마지막 문단이다. 지금봐도 낯뜨겁긴 하지만, 당시 올림푸스 PEN E 시리즈는 저런 찬사를 받을만한 위치에 있었다. 똑딱이와 고급 DSLR로 양분된 카메라 시장에서, 누구나 쉽고, 작고, 가볍게, 고화질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을 열었으니까.

더불어 2011년은, 스마트폰 보급과 더불어 카메라 시장이 내리막 길에 접어들고, 올림푸스 몰락의 단초가 된 회계 조작이 밝혀진 시기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뇌물 문제가 터졌고, 결국 2016년에 벌금을 때려 맞았다. 2014년에는 전 한국 올림푸스 대표가 횡령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 많이 다사다난한 회사였다.

미러리스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올림푸스 카메라는 ‘카메라’ 대중화에 큰 발자국을 남긴 회사이기도 하다. 1959년에 발매된 올림푸스 PEN 시리즈는, 당시 싸도 2만엔 이상이던 카메라 시장에 6천엔 짜리 보급형 카메라를 선보이면서(당시 일본 직장인 평균 월급의 절반 가량), 사진을 찍는 문화를 보급했다.

1973년에 출시된 OM-1은, 저 클래식한 디자인만 봐도 금방 알겠지만,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작고 가볍게 만들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전지현이 등장한 광고로 큰 인기를 얻…

딱, 거기까지였을까. 정말 2011년을 기점으로 많은게 달라졌다. 카메라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2019년 새로 선임된 야스오 타케우치 사장은, 카메라 사업을 포함해 모든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계속 적자가 나는 사업을 좋아할 주주는 당연히 없었고.

거기에 들이닥친, 코로나 19.

결국, 올림푸스는 카메라 사업을 접었다. 일본산업 파트너 주식회사(JIP)에 사업을 양도하는 계약을 맺었다. 한국 시장 철수도, 일본에서 갑작스런 덤핑 판매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말로는 올림푸스 영상 제품의 판매 및 지원 서비스를 계속하겠다고 하지만, 글쎄. 소니에서 분사된 바이오 정도의 역량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과연 될까?

올림푸스는 카메라 시장 트렌드가 ‘동영상’으로 변해가고 있던 것에 적응하지 못했다. 소니나 파나소닉이 다들 동영상 찍기 좋은 미러리스 카메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판에, 올림푸스는(…). 그것도 DSLR과 똑딱이를 접고 집중하고 있었으면서도, 뭔가 보여주지 못했다. 이미 누적 적자만 1000억엔이다.

앞으로 더 실력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면 모를까, 올림푸스가 카메라 시장에 돌아올 일은 이제 없다. 그러니까 그저, 잘가라고, 안녕을 고할 수 밖에. 렌즈까지 만들지 않게 된 것은, 많은 사람이 아쉬워 할테지만. 잘가, 올림푸스 카메라. 넌 참 예쁜 카메라였다.

* 그나저나 지금 일본에서, OM-D E-M10 MarkII 더블킷이 갑자기 판매량 1위에 올라왔기에 보니, 신품이 5만엔대에 팔리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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