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올해 처음 적고 싶었던 이야기

2021년, 올해 처음 적고 싶었던 이야기

DigitalClock4 라는 윈도용 앱이 있습니다. 바탕화면에 반투명한 시계를 큼지막하게 띄워주는 앱입니다. 웹 서핑을 하다 보면 시간을 까먹는 일이 많아, 항상 띄워놓고 씁니다.

시계 밑에 좋아하는 글을 적을 수도 있는데요. 요즘엔 이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도 쓰레기를 쓰자’. 지난 한 해, 제 삶을 지켜준 주문입니다. 영화 ‘미쓰 홍당무’를 찍은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집 ‘잘돼가? 무엇이든’에 적혀 있었죠.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매일 다짐해야겠다.
쓰레기를 쓰겠어!’

- 이경미, 잘돼가? 무엇이든, p141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도 2020년 한 해 많이 혼란스럽게 살았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바뀌어 버린 계획과 취소된 일정들 속에, 막연하게 올라오는 불안감을 다독이며, 사는 법을 새로 배우며 살아가야 했거든요.

당연하던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가까웠던 사람들이 멀어져 갔습니다. 혹시라도 걸리면 일하는 곳에 피해가 갈까 봐, 매일 조심하며 삽니다. 뉴스를 들으며 속으로 화를 내던 때도 많습니다. 미쳐버릴 듯 답답하니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요.

... 그때 이 말을 만났습니다. 쓰레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으니, 어떻게든 써지긴 한다는 말을.

한번 해봤습니다. 잘 쓰겠다는 마음을 비우고, 그냥 글쓰기 프로그램을 열고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으니, 정말 써지긴 써집니다. 세계 명작은 아니지만, 어쨌든 글 하나를 썼습니다.

이 말이 정말 마법이더군요. 그따위로 쓸 바엔 아무것도 안 쓰는 게 나아-라는 말과 그래도 어떻게든 쓰는 게 좋아-의 사이에서, 그래도 어떻게든-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사실 많은 일은 그냥 하는 겁니다. 월급 받으니까 하는 일이 아니라, 이게 내 일이니까 그냥 하는 거죠. 해야 할 일이면 그냥 하면 되는데, 우리도 사람이라 하루에도 여러 번 기분이 변합니다. 세상이 험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하던 일을 다 때려치우고 싶습니다. 누가 대신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말을 되뇝니다. 몸이 피곤할 때, 마음이 많이 흔들릴 때, 그냥 쓰레기를 쓰자고. 이게 내 일이니까, 쓰자고. 칭찬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냥 쓰자고. 물론 일 잘하는 사람은 미리 계획을 하고,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며, 끝난 다음에도 다시 되새기면서 개선점을 찾을 겁니다. 그게 안 되면 하지 말아야 할까요?

... 아니잖아요. 그럼 그냥 하는 겁니다. 안 하기보다는 하는 게 나으니까. 그냥 이게 내 일이니까.

▲ 이 분도 그냥 하는 겁니다.

세계는 지금 안전성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사회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변화 폭이 생각보다 커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다들 궁금해합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던 일을 더 잘하라고. 어떤 시대가 찾아와도, 사람은 살아가야 하니까요.

밥벌이의 지겨움도,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고 상인은 물건을 팔고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개발자는 개발을 하고, 글쟁이는 엉덩이로 글을 쓰겠죠. 결국 그냥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볍게, 그게 좋습니다. 쓰레기를 쓰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듯이. 그러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같이 이 엄혹한 세상을 버텨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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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칼럼니스트.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IT 산업이 보여 주는 'Wow'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삶의 변화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 프로필 : https://zagni.net/about/ 브런치 : https://brunch.co.kr/@zagni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zagni_ 이메일 : happydiary@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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