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소니 태블릿을 보며 수리할 권리를 생각하다



그동안 침실용으로 쓰던 소니 태블릿 엑스페리아 Z3 태블릿에 문제가 생겼다. 배터리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냥 쓰기엔 아직 멀쩡한 제품이라 AS 방법을 알아봤지만, 소니 AS 센터에선 오래 전에 수리를 포기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배터리 부품만 따로 주문했다. 유튜브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런 거 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어린 시절 취미는, 남이 버린 물건을 주어와 고쳐 쓰는 거였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낡아서 버린 전자제품이나, 아직 쓸만한데 작은 고장 때문에 버려진 제품을 주워와 고쳤다. 남이 버린 물건이라 못 고쳐도 부담이 없던 탓이다. 운 좋으면 꽤 쓸만한 제품을 공짜로 얻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 고친 제품을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올려 용돈을 번 적도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남들이 못 쓴다고 버린 물건을 다시 살리는 건, 생각보다 꽤 뿌듯한 일이었으니까. 내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된 듯 착각을 하는 건 덤이고.


▲ 전자키트가 취미라서 공구는 집에 다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취미였지만, 요즘엔 뭔가를 주워 와 고쳐본 기억이 별로 없다. 직구한 태블릿 PC나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정도를 고친 기억이 전부다. 고장 난 소형 가전은 무료로 수거하기 때문에 따로 버리지 않기도 하고, 쓸만하면 중고 물물거래 사이트에 파는 문화가 정착된 탓이다.

물건을 스스로 고쳐 쓴다는 생각을 아예 버린 듯 보이기도 한다. 중국에서 만든 많은 값싼 제품들이 들어오면서, 고쳐쓰기보단 새로 사는 게 더 싸게 먹히는 시대가 됐으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많이 쓰는 스마트 기기는, 개인이 쉽게 고쳐 쓸 수 없는 제품이 돼버렸다. 수리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물건을 만든 기업에서 사설 수리를 하면 보증을 포기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 때문이다.

기업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자를 통제한다. 기기에 내장된 소프트웨어를 통해, 특정 사용 횟수나 기간이 지나면 더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제품을 개조하거나 소모품을 비 순정 제품으로 교체해도 마찬가지다. 고장 난 것도 아닌데, 자기네 회사 소모품을 쓰지 않았다고 동작을 하지 않는 제품도 있다.



애플은 몇 년 전까지 배터리 성능이 나빠져도 무조건 1대 1 교환 밖에 안된다고 우기기도 했다. 미국에선 디지털 밀레니얼 저작권법 때문에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기기를 사용자가 직접 수리하는 게 일단은 불법이다. 그 법에선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제품을 이용자가 손 대면 ‘해킹’이라고 본다. 덕분에 멀쩡한(?) 폐가전제품은 점점 늘어나고, 멀쩡한데 안 쓰는 제품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다행히 요즘엔 숨통이 좀 트이고 있다. 더는 제조사들의 횡포를 두고 볼 수 없는 상황까지 온 탓이다. 2021년 EU에선 소비자에게 수리할 권리를 주는 법안이 시행됐다. 이 법은 수리를 못하게 막는 건 소비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10년간 부품 재고를 확보하고, 수리 매뉴얼도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만들었다. 아직은 가전제품에만 해당되지만, 스마트폰과 컴퓨터에도 곧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영국에서도 곧 수리권 제도가 시행될 계획이다.

미국 20개 주에서도 관련 법안이 제출됐고, 14개 주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조만간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농업 기계를 수리할 권리를 포함해 여러 전자제품과 스마트 기기의 수리할 권리 보장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가 수리도 쉬워졌다. 인터넷을 통해 수리법을 배우거나 관련 부품 구하기가 편해진 탓이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다. 최소한 내가 구입한 물건이라면, 내가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수리할 수 있는, 또는 누군가에게 맡겨 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적당한 제품을 적당히 오래 쓸 방법도 있어야 한다. 그걸 지금까지 제조사는 계속 막아왔고, 계속 막으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 컴퓨터 부품이 들어갈 기기가 점점 늘어날 세상에서, 모든 수리는 제조사를 거쳐야만 할 수 있다면, 악몽이다.

… 당장 사업을 접은 LG 스마트폰은 이제 (최대) 4년이 지나면 수리도 할 수 없는 물건이 된다.

아직 우리에겐 수리할 권리를 확실히 보장하는 법이 없다. ‘수리받을’ 권리는 소비자 기본법에 의해 보장받고 있지만, ‘수리할’ 권리를 보장받지는 못했다. 때문에 ‘수리하기 쉬운 제품’도 보기 힘들고, 애플 제품을 제외하면 (예전 전파사 같은) 사설 수리소도 거의 없다. 제조사에서 부품이 없다고 하면, 사실 교체 말고는 답이 없다(작년엔 잘 쓰던 냉장고를 그래서 바꿨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쓰던 제품을 계속 쓰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이젠 이런 시대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전자제품과 스마트 기기를 잘 만들고 잘 쓰는 것을 지나, 잘 고치고 잘 버리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실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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