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시 때부터 살까말까 고민했던 제품을, 결국 중고로 들이게 됐습니다. 실은 얼마 전에 지금 쓰는 맥북 에어(2011 mid, 11인치)가 충전이 전혀 안되는 상황까지 갔었거든요. 이제 너무 오래 썼다, 놓아주자- 그러고 있는데, 어떻게 하판 뜯고 청소하고 뭐 해주면서 살리긴 다시 살렸습니다.
살리면서도 아, 이거 이젠 좀 많이 느리다- 이런 신세 한탄을 했더니, 친구가 자기 쓰던 맥북 에어 M1 내놓을 건데 가져가겠냐고 합니다. 당근 앱을 써도 되긴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상대에게, 지루한 탐색 과정 없이 살 수 있다니 고맙다고 OK 했죠.
그리고 오늘 받아왔습니다. 애플 맥북 에어 M1(2020) 버전입니다. 8GB 램에 256GB 저장 공간을 가진, 속칭 '깡통' 버전입니다.
다들 램이 16GB가 아니면 PC도 아니야! 라고 외치는 시대이지만, 저한텐 8GB면 충분합니다. 글쟁이잖아요. 동영상 편집을 할 것도 아니고, 게임은 잘 안돌아가고, 프로그램을 짤 것도 아니라서... 8GB면 모자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용량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맥은 저장 공간 조금 늘리려면 쓸 데 없이 비싸서.
다행히 제품은 아주 깨끗합니다. 배터리도 90%. 외관에 상처도 없고요. 박스도 있습니다. 가격은 60만원 안되게 샀습니다. 이런 성능에 이런 완성도를 가진 제품을, 아무리 중고라고 해도 이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21세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진짜로요.
저로서는 거의 10년 만에 맥북으로 돌아온 셈인데요. 그동안 달라진 것이 참 많네요. 일단 잠금 화면이 움직입니다(...). 이번에 OS 업데이트 되면서 들어간 가능 같은데요. 보는 맛이 있습니다. 재밌게도, 제 아이폰 계정과 잘 연동 되어서, 와이파이 비번이니 뭐니, 따로 입력할 필요 없이, 지가 그냥 알아서 잡습니다.
거기에 트랙 패드 사용법은 아이패드랑 비슷해서, 조금 두려웠던 재적응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어 버렸습니다. 지난 10년간, 아이폰-맥북-아이패드 등 기기간 상호 연동성을 엄청 잘 다듬었네요.
지문 인식 기능도 생각보다 편합니다. 이거 어디에 쓸까- 싶었는데, 프로그램 설치나 뭐나 그럴 때 이걸로 입력하니 편합니다. 사실 이렇게 편하면 안됩니다. 제가 맥북 에어를 다시 산 이유 중 하나가, 뇌훈련(..)을 위해서였거든요. 일부러 새로운 걸 배우며 뇌에 스트레스를 줄 생각이었는데, 스트레스가 없어요(...).
다행히 스팀 클라이언트를 깔면서 문제가 좀 생겨서, 스트레스를 받긴 했습니다(?). 오랜만에 맥북 세팅하니, 시간도 잘 가네요. 스팀 라이브러리에서 맥용 게임만 따로 찾아봤는데, 은근히 설치 가능한 게임도 꽤 있어서 놀랐습니다. 완전히 실행된다는 보장은 없지만요(호환 모드로 돌아가서 아직 신뢰를 못합니다.).
그동안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완전히 적응된 상태라, 맥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곳에서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는 것도 까먹고 있었습니다. 스팀이나 엑스박스나 뭐나 죄다 앱스토어에서 검색하고 있었다는... 맥 앱스토어에는 넷플릭스도 없네요. 아하하하.
오래 전에 구입한 앱들을 보며 괜한 추억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앱 하나에 추억과 앱 하나에 ... 아이고 맙소사.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도 그렇지 추억이 앱에 박제가 되다니, 슬프군요. 이 앱을 썼던 추억 같은 것을 떠올리는 시대가 올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맘에 듭니다. M2 이후 버전에 적용된 새로운 폼팩터 제품을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긴 했지만, 구형 생김새가 더 맥북 에어 같은 느낌이긴 합니다. 좀 더 만져 보긴 해야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새로 제품을 사서 세팅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습니다.
중고 아니었냐? 하고 물으시면, 저한테는 새 제품(...)이나 다름 없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오래 오래, 함께 해 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