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네이션, 도파민 절임 극복을 위한 책은 아니지만

도파민네이션, 도파민 절임 극복을 위한 책은 아니지만

“기술 자체도 중독성 있다.
기술에 힘입어 불빛은 번쩍이고, 음악은 요란하며, 기회는 끝없이 주어지고, 더 큰 보상이 약속된다.
상대적으로 재미없는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에서 출발해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용인된 포르노물에 해당하는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내가 지나온 과정을 봐도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이 중독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에서

SNS의 타임라인은 SNS 이용자의 취향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제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은, 예쁜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올린 게시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SNS를 운영하는 회사들은 광고로 돈을 벌고, 광고를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면 더 오래 서비스를 쓰게 만들어야 하니, 제가 좋아하는/할 것 같은 콘텐츠를 계속 밀어 올리며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 싫은 것은 아닌데, 가끔은 너무 피곤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타임라인은 속성상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스크롤을 할 때마다 계속 콘텐츠를 뽑아서 보여줍니다. 적당히 끊고 나가야 하는데 잘 안 돼서, 계속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쓸 때 더 심하죠.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어떨까요? 역시 소셜 미디어 사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젠 ‘나’를 스스로 브랜딩 하고, 판매해야 하는 시대니까요. 그러다 보면 좋아요, 구독, 댓글, 팔로워에게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셜 미디어 평판이 곧 나에 대한 사회적 평가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정보 과잉으로 인한 피곤함이나, 비교로 인한 자존감 저하도 따라옵니다.

미국 정신과 의사 애나 렘키가 쓴 ‘도파민네이션’을 읽기로 결심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렇게 괴로우면서도 계속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게 되는 이유가 도파민 중독 때문이라고 하니까요. 애나 렘키는 이런 중독 증상을 치료하는 전문가고, 그러면 도파민에 의존하지 않을 어떤 방법을 제시해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읽고 나서 깨닫습니다.

... 좋은 책인데, 기대랑은 다르네?

그도 그럴 것이, 애나 렘키는 여러 가지에 중독된 사람을 치료하는 전문가고, 환자는 주로 약물이나 행위에 심각하게 중독된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책과 책 광고에선 계속 ‘소셜 미디어도 도파민!’ 어쩌고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됩니다. 소셜 미디어에 몰입되는 것은 중독이라 부르기도 우스운 수준이구나-하고요.

넓게 봤을 때 중독(Addiction)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그리고/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강박적으로 소비·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에서

애당초 우리가 ‘마약 떡볶이’처럼 단어를 남용해서 그렇지, 중독은 생각보다 위험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회인으로 생활할 수 없거나, 가정 관계가 파탄 나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죠. SNS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분명히 많지만, SNS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서 그래서 일찍 죽었다거나/ 회사에서 잘렸다거나/ 이혼하게 됐다는 사람은 거의 못 봤습니다.

기술은 항상 그런 오명을 뒤집어씁니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라디오만 듣는다, TV만 보고 있다, 컴퓨터 게임만 한다, 웹서핑만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요. 저 앞에는 항상 (하라는 일/공부는 안 하고) 라는 말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SNS가 진짜로 마약이나 술처럼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면 이미 규제됐을 겁니다.

(작가도 그런 말은 인한 것처럼) 도파민 중독이란 말도 틀립니다. 도파민을 나오게 만드는 물질이나 행위에 중독될 수는 있지만, 도파민에 중독될 수는 없거든요. 도파밍이란 말처럼, 재미있는 것을 끊임없이 찾는(=거꾸로 말해 이젠 웬만한 콘텐츠는 재미있게 못 느끼는) 상태를 장난스럽게 표현한 것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도파민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이기도 합니다. 위 사진 속 아이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이 뭘까요? 예, 바로 도파민입니다.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가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뭘까요? 예, 도파민입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뭔가를 기대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듭니다. 매일 아침 느끼는 두근거림, 뭔가를 쇼핑할 때 느끼는 즐거움, 예쁜 사람을 볼 때 느끼는 기분 좋음에 도파민은 관여합니다. 그게 좋다 보니 사람들이 자꾸 찾게 되고, 그걸 찾으니 그걸 만족시킬 상품을 제시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필요 이상으로 도파민을 만들 콘텐츠를 찾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거긴 하지만요.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우리는 순간적이고 영원한 기억을 뇌리에 새기기 때문에 쾌락과 고통의 교훈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그러한 기억이 해마hippocampus에 남아서 평생 가는 것이다.

-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에서 인용

그럼 어쩌면 좋을까요?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중독자가 아니라고 해도,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활동에 사로잡혀 있다면, 중독자와 같은 과정을 밟아 회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책 끝에, 작가가 쾌락과 고통의 저울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이란 의미로 적어놓은, ‘저울의 교훈’ 10가지는 꼼꼼히 읽어볼 만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아래 저울의 교훈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요.

저울의 교훈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4. 자기 구속은 욕구와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지적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5. 약물 치료는 항상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 있게 만든다.
9.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에서 인용

두근거림이 없는 삶이라면 살아 뭐 할까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어떤 댓글이 달렸을 지, 좋아요는 몇 개나 찍혔을 지 궁금해서 계속 들여다 보고 있나요? 스마트폰에서 인스타그램 앱을 지우거나(모바일 웹브라우저로도 접속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두세요. DM이나 누군가가 나를 언급하거나 그런 것들, 하루에 한 번 정도 확인해서 답장하거나 지워도 괜찮습니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 콘텐츠를 계속 봐주길 원하나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콘텐츠를 업데이트 하세요. 적당한 것이 없으면 오래 전에 올렸던 사진이라도 괜찮습니다.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게 되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올라오는 콘텐츠를 기다리는 팬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반복하게 되는 거야,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아는 거고요.

중세 수도원처럼 별다른 자극 없이 평온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여긴다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늘 새로운 즐거움을 찾습니다. 두근거리지 않으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더 좋았던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뭔가 새로운 것이 없나 헤매는 거리 사진가처럼, 힘들고 피곤하다면서도 좋은 풍경을 찍겠다고 새벽부터 짐을 싸는 사진가들처럼, 값싼 쾌락보다 깊고 풍부한 즐거움을 찾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도파민은 그럴 때 또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인생학교 - 정신

보다 나은 해결책이 필요하다면, 사실 이 책보다는 필립파 페리가 쓴 '인생학교 - 정신' 편을 권합니다. '도파민네이션'은 도파민 중독을 주로 다루지만, '인생학교-정신'편은 살면서 겪게 될 여러 마음씀, 마음 겪음에 대한 실용적인 대책을 다루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인생학교-정신'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쾌감을 느낄 때 나오는 도파민을 챙기라고요. 너무 뻔한 조언 같은데, 뒤에 따르는 조건 때문에 조금 망설이게 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와 수치심(난 왜 이렇게 못하지? 등등)을 느껴야 제대로 배운다고 하네요. 하하하.

뭐야 이거 몰라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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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칼럼니스트.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IT 산업이 보여 주는 'Wow'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삶의 변화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 프로필 : https://zagni.net/about/ 브런치 : https://brunch.co.kr/@zagni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zagni_ 이메일 : happydiary@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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