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아래아한글 소프트웨어을 접한 것은 89년쯤이었습니다. 당시 엠팔이랑, 네트웍 서울 등의 사설통신망에서 처음 PC통신이란 것을 시작했고, 그때 캐나다산 1200bps모뎀을 무려 12만원이란 거금-_-;을 주고 산 기억이 납니다. 그때 통신을 통해 알게된 한 형이 제게 한글 1.2 프로그램을 보내줬었습니다. (1.1이었을지도..-.- 무려 다섯시간이 넘게 걸려서 받았었다지요. 물론, 당시에는 한통화에 20원이라 전화비는 별로 안나왔지만. 쿨럭-)
애플에서 작은별(? 기억이 가물가물..)이란 이름의 워드를 써본 것이 전부였던 저에게 있어서, IBM 컴퓨터에서 한글을 자유롭게 쓰고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즐겁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IBM XT 컴퓨터에서 한글을 자유롭게 쓴다는 것은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었거든요. 특히 삼보 보석글-등등은(그래도 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이긴 했습니다-).
한글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90년대 초반에 나온 1.52 버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얼마 전에도 아직 1.52를 쓰시는 분을 뵈었는데, 감회가 새롭더군요. 글자 확대도 별로 안되고 지금 보면 에디터 보다도 못한 기능들이지만,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었고, 더불어 당시 주로 이용했던 도트 프린터에서 글자를 그래픽으로 이쁘게 찍어주었기에, 통신에서 갈무리한 글들을 대부분 아래한글을 이용, 찍어서 보관해 두곤 했습니다.
그때 한참 통신의 재미에 미쳐서, 이것저것 소설도 써보고 그랬는데… 그때도 함께 해준 프로그램이 한글1.5버전입니다. 비록 xt 였지만, 로터스와 Dbase3, 게임, 그리고 이야기와 한글, 어떤 면에선 지금보다도 훨씬 즐겁게 컴퓨터를 썼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접한 한글은 한글 2.0. 처음으로 프린터 포트를 이용한 하드웨어 락키..를 포함했는데, 이것때문에 안정성 문제로 말이 많았죠. 이때는 이미 486으로 넘어온 때라, 슬슬 컴퓨터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는데… 결국 한글은 하드웨어 락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2.1 버전과 3.0 버전을 선보이게 됩니다. 이 3.0 버전도 무지 오랫동안 사람들이 쓰던 워드였죠.
하긴, 이때부터 사람들의 한글 활용 실력이 많이 늘기 시작해서, 저도 한글만 가지고 책 한권 만든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한국의 워드프로세서 사용자들은 DTP처럼 쓴다고들 했었죠.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절대부동의 위치에 있던 한컴사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범하고 맙니다. 바로 윈도우용 워드 시장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거죠. 저도 아마 이때, 훈민정음… 4.0 버전이었나요? 그것을 정품으로 구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밖에 파피루스, 백상 워드, 금성 워드등.. 수많은 윈도용 워드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지만… 모두 MS에 먹혔죠.
그렇게 대부분 윈도워드 시장이 MS에 먹힌 다음에야, 한글 3.0의 윈도우 버전인 3.0b와 97년 지금도 한국 표준으로 불리는 한글 97이 나왔습니다. 아아, 이쯤에서 고백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이때까지 한번도 한글 정품을 사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복제판 사용자였죠..
한글을 우려 먹을만큼 사용하면서도, 정품을 산 적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좀 비싸기도 했죠…(예전에는 한글이 레이저 프린터 용과 일반 프린터 용을 따로 팔면서 다르게 값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_-; ) 그러다 충격의 사건, 한컴이 MS로 넘어가 버릴뻔 했던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저도 그렇지만, 제가 알고 있던 컴퓨터를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큰 충격이었습니다. 한컴이 망한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 컴퓨터 시장이 완전히 MS에게 먹히는 것 같은 느낌을 줬으니까요. 그리고 한컴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고, 한컴8.15 특별판이 나왔습니다.
이때야 처음으로 정품을 구입했죠. 8.15 특별판의 힘은 대단해서, MS에서도 만원짜리 1년 워드 이용권?을 팔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살다가, 12개월 할부로 한컴 + pdf를 구입했습니다. 이 물건이 워디안까지 번들된 (한글97+워디안+pdf) 물건이었고, 결국 2002까지 업그레이드 받고, 네띠앙 마이웹 서비스 신청자들에게 주는 3개(쿨럭-)의 워디안 번들판까지 받아, 지금은 한글만 다섯 개를 가진 정품 이용자가 됐습니다. … 하지만 후회하거나, 비싸게 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만큼 잘 이용하고 있으니까요.
몇 번 MS워드도 배울까, 했었지만 … 솔직히 한글만 써서 그런지 어렵더군요. 손에도 익지 않고. 게다가 한글에 비해서 넘 느리고(한국 사람들 느린 거 싫어합니다…– 게다가 편집하는 사람들은 거의 DTP 수준으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런 노하우를 잃어버리고 MS워드를 쓸 사람도 얼마 없겠죠.. )
전 평범한 이용자입니다. 굳이 우리 것만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구요. 애써 만든 프로그램에 욕하지 말자- 라고 말할 처지도 안됩니다. 그런데도 이런 쓸데없는 글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이유는…
자신이 보기에 나쁘다고 함부로 ‘개’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어리석음이 싫어서 입니다. 당신이 개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프로그램이, 어떤 사람에겐 12개월 할부로, 한달에 8천 원씩 부어서라도 살만큼 중요한 프로그램이며, 어떤 이에겐 자신의 컴퓨터와 마찬가지(컴퓨터로 워드만 쓰시는 분들 아직 많습니다.. -_-)인 소중한 프로그램입니다.
제겐 지난 시절, 제 마음 속에 있던 생각과 느낌들, 눈물들(저는 DB와 일기도 워드로 이용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담을 수 있는.. 그런 그릇이었습니다. 뭐, 그런 것들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당신이 더 나은 것을 원한다면, 지금의 무엇이 잘못되었으니.. 이건 이러는 것이 어떨까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안 제시..-_-;나 조금 더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렇게 말하기엔 어렵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 다음 내뱉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말이란, 쉽게 뱉을 수 있다고 해서 함부로 내뱉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싫든 좋든, 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이 제가 아는 말의 무서움입니다. 부디 조금 더 성숙해지면 좋겠습니다.
- 2002년 2월 14일 베타뉴스 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