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런던으로 뛰어들었더니, 라스트 나잇 인 소호

60년대 런던으로 뛰어들었더니,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제겐 이상하게 영화를 추천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상한’ 영화가 아니라 ‘이상하게 ’입니다. 틀리지만 맞는 말로 영화를 포장한다고 해야 하나요. 이게 다 착한 저를 놀리려는 수작이란 걸 알지만, 친구가 없어서(...) 자주 그 추천에 의지합니다.

이번에 추천해준 영화는 타임슬립 물입니다. 과거나 미래로 뛰어 들어가는 영화죠. 제가 이런 영화 좋아해서 거의 다 봤는데요.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하나 들이밀면서, 타임슬립 미스터리 서스펜스 러브 드라마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하고 넷플릭스를 열었는데, 이런 섬네일이 반깁니다.

 

오, 게다가 조금 야하기까지 한 건가요? 기쁜 마음에 주저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시작 부분도 다정하네요. 의상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것을 꿈꾸는 신입생이 주인공인가 봅니다. 엄마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는 건, 뭔가를 위한 복선이라고 남겨두죠.

그리고 이어지는 조금 힘겨운, 학창 생활의 시작. 아아, 패션 학교에서 살아남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거 언제 타임 슬립 되나요? 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이거 타임슬립(Timeslip)물이 아니라 타임슬립(TimeSleep)물이잖아! 하고요.

뭐 어떻습니까. 따지자면 ‘미드나잇 인 파리’도 이런 영화인걸요. 타임슬립물에 과학적인 거 따지면 큰일 납니다. 영화 못 만들어요. 중요한 건 과거로 돌아가고, 그 과거에 푹 빠지게 만들어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성공했습니다. 하- 런던 소호가 이런 곳이었군요? (진짜 이런 곳이라고 합니다) 영국 1960년대 분위기 잘 모르는데, 뭔가 그럴 듯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재밌게도 조연 배우들은 진짜 1960년대 영국 스타들이라고.

 

놀란 건 배경. 세트장 잘 만들었네-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런던 소호에서 찍었다고 합니다(...). 영화 크레딧에 올라오는 텅 빈 런던 거리 사진도 세트장 사진이라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텅 빈 진짜 런던 소호 거리를 찍은 거였다고.

게다가 그냥 타임슬립물이 아닙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고 해야 하나요. 일인칭과 삼인칭 시점을 돌려 가며, 1960년대에 사는 샌디(안야 테일러조이 분)에게 주인공 엘로이즈 터너(토마신 맥켄지 분, 약칭 엘리)가 빙의한 느낌으로 흘러갑니다.

 

어디서 이런 분위기 느꼈는데-하고 생각해 보니, 코로나 이전 상하이에서 봤던 몰입형 연극 ‘슬립 노 모어’와 비슷합니다. 어떤 상황으로 내가 점프해서, 관객의 시점으로 한 사람을 지켜보는 거죠. 그 부분이 꽤 맹랑하면서도 달콤해서, 진짜 연극 같습니다.

샌디와 앨리 두 사람이 모습을 바꿔가며 춤을 추는 장면은 참 괜찮았습니다. 샌디의 감정을 과거에 방문한 엘리도 느끼니, 현실의 엘리가 샌디의 스타일을 닮아가며 자신감(?)을 되찾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죠.

 

아 재밌다-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샌디가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달콤한 타임슬립물로 생각하고 있다가 한 방 맞았네요. 세상엔 믿을 놈 하나 없다지만, 사실 믿을 수 없는 인간을 왜 믿었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엘리는 관찰자라서, 샌디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그리고 유령이 나타납니다. 별로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유령이 좀비 같아서요. 제게 좀비는 너무 친숙하죠. 망할 바이오 하자드 게임 팬이라서 그렇습니다. 아무튼 장르(?)가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써커 펀치’로 변하면서, 영화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슬픈 것은,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약간의 루즈함이 더해지고, 후반부에 공포 영화로 바뀌는 곳에서 이야기를 좀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아이디어가 나빴나요? 아뇨. 연기가 나빴나요? 아뇨.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였어요? 아니요.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 아쉽지만, 카타르시스를 터트릴 수 없었다고 해야 하나요. 대체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건지. 결국 엘리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현재까지 이어온 문제를 해결하고,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갑갑하거나 모호함도 아닌, 그래서 뭘 어쩌라고-하는 감정이 남습니다.

 

꽤 잘 만든 영화가 될 수 있었는데, 이야기를 맺는 방법에서 망쳤다고 해야 하나요. 다만, 그런 망침을 감안하고도 볼 만한 재미는 있습니다. 극을 이끄는 두 배우가 꽤 매력적이고, 영화의 때깔이 좋은 탓입니다. 두 번째 보면 다시 보이는 부분도 많고요.

보면서 푹 빠져 보긴 했는데, 끝이 망가져서 아쉬운 영화. 친구 말대로 ‘타임슬립 미스터리 서스펜스 러브’ 드라마이긴 한데, 그것만이 아니라서 아쉬운 영화. 이번 주말 넷플릭스에서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앞에 절반 정도만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영화 주인공 설정 그대로 이용하면,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과거에 빙의해(사이코메트리?) 현재 미해결 사건을 수사하는 초능력자 탐정 같은 시리즈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영화가 망해서 어렵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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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칼럼니스트.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IT 산업이 보여 주는 'Wow'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삶의 변화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 프로필 : https://zagni.net/about/ 브런치 : https://brunch.co.kr/@zagni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zagni_ 이메일 : happydiary@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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