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feel like there have been a lot of women that have been through something with him, but they are afraid to talk.
from 'She said(film)'
올해 블로그를 만든 지 20년이 됐습니다. 20년간 블로그를 쓰다 보니, 이런저런 일도 많이 겪었죠. 글 내용에 간섭하려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글 내려달라, 수정해 달라-는 부지기수고, 욕하거나 소송하겠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사람도 여럿입니다.
그래서 어땠냐고요? 그야 때에 따라 다르죠. 정당한 요구면 수정합니다. 아니면 거절합니다. 소송을 하겠다면 그러라고 합니다. 욕을 하면 무시합니다. 연락 온 걸 다시 글로 쓸 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종의 딜을 겁니다. 저도 허투루 살아온 건 아니니까요. 니가 기분 상했다고 니 뜻대로 해줄 바보는 아닙니다.
한번 난감했던 적은 있습니다. 회장님이 알게 되면 노하실 거다-하는 연락이 있었는데, 그땐 글을 내렸습니다. 저 역시 들은 얘기지 물증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담당자는 승리한 듯한 말투를 하더군요. 괜찮습니다. 그분,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니까요.
저처럼 시시한 블로거에게도 시시한 적(?)들이 달라붙는데, 영화계 거물을 상대로 하는 뉴욕 타임스 기자들은 어땠을까요? 사실 그게 궁금한 건 아니었는데, 영화 ‘그녀가 말했다’를 보는 초반, 그때 기억이 살아나서 씁쓸해졌습니다. 아, 맞아요. 이건 영화 얘기죠. 주간지 시사인에 올라온 리뷰를 보고 VOD 뜨길 기다리다, 보게 된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보기 좀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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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 와서 지나간 일을 들추어내냐고? ‘그 일’은 절대 지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 피해자는 아직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하지 못했다면 ‘그’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탐사보도 저널리즘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사인 ‘왜 이제 와서 지나간 일을 들추어 내냐고?’
영화는 지난 2017년 일어난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Metoo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만든 사건이죠. 이때 불을 지른 게 뉴욕 타임스의 기사고, 두 기자가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녀가 말했다’입니다.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확산되고, 이를 취재하던 기자 조디 캔터(조 카잔 분)에게 다른 탐사 기자 메건 투히(캐리 멀리건 분)가 합류하면서 여러 증인을 만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지루할 것 같고, 사실 저도 그럴 거라 기대했습니다만(?), 영화는 생각보다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 스토리가 흘러갑니다. 취재할 때마다 막히는 거대한 벽, 피해자가 입을 열지 못하도록 구축된 시스템, 계약서에 사인했기에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 말을 할 수 없는 그녀들.
이렇게 단단하게 잘못 구축된 세계를, 두 기자는 정말 열심히 뚫고 나갑니다. 어떤 대단한 꼼수를 쓰는 것도 아니고, 시시하고 우직하게 뚫어요. 전화하고, 만나서 얘기하고, 설득하고, 다시 증인을 찾고, 전화하고, 만나서 얘기하고… 그래서 결국 그들이, 말하게 되는 이야기.
… 어떤 극적인 사건이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만.
한국처럼 그냥 대충 익명으로 처리하고, 관계자가 말했다고 그러지 않고, 계속 설득하려고 애씁니다. 뉴욕 타임스란 매체가 가진 권위도 신기했어요. 한국에선 일반적인 존중을 얻고 있는 매체가 드물 텐데요.
하비 와인스틴에게 반론권을 보장하는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물론 우리도 취재할 때 상대방에게 연락합니다만, 연락 안 오면 그냥 연락 없었다- 이러면서 끝내죠. 음, 돈 받고 기사를 묻어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하하.
예, 보면 볼수록 우리 현실과 달라서 꽤 쓴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이런 두 기자를 취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뒤에 있는 사람들. 계속 취재하라고 하고, 하비 와인스틴에게서 보호하며, 대신 글도 다듬어주는… 역시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취재가 가능한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기자는 혼자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당연한 것 같지만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심한 협박이 들어와도 주변 사람에게 말도 잘 못합니다. 말했더니 너무 걱정해서, 다음부터는 그냥 혼자 속으로 삼키거나 대응책을 찾는 것이 전부거든요. 나중에야 그럴 땐 이렇게 처리하면 된다-는 지식이 쌓여서, 적당히 처리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만.
그래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마지막에 콘텐츠 관리 시스템에서 ‘발행’ 버튼을 누르는 장면입니다. 다 같이 모여서, 마지막으로 글을 검토하고, 기사를 발행하죠. 영화적인 표현일 거라 생각하지만, 정말 그랬을지도 몰라서, 더 좋았습니다.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 전에 드라마 송곳에 나왔던 대사입니다. 무척 좋아하는 말입니다. 알고 보면 세상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멀쩡히 존재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처럼 구는 사람이 많은 세상. 기껏 만든 시스템조차 멋대로 악용하는 이도 한둘이 아닌 세상.
하나 마나 한 조언들이 현실인 세상은, 잘 바뀌지 않죠. 그런데 진짜, 그때마다 어디서 송곳이 튀어나옵니다.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고, 관련 서류를 넘겨주고, 용기 내 자기 이름을 쓰라고 하죠. 그냥 이게 실화라는 게, 대단하더라고요.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보고 싶지만… 음, 가능성이 있을까요? 세상이 갑갑하게 느껴지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 좋은 기자가 있을 거야- 믿고 싶은 분에게도. 좋은 기사 작성의 모범 사례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 인생 영화라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