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봉하면 얼른 봐야지 했던 영화가 있습니다. 메간(M3GAN)입니다. 제 취향이었거든요. AI 소녀 로봇이 나와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사람도 잡습니다. 예, 저 이거 SF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올 초부터 제가 받는 메일마다 메간을 추천했던 탓도 있습니다. 주로 정보통신 계통 소식들만 받는데, 뜬금없이 여기서 다들 메간 메간 하기에(한때 차트에서 아바타2마저 꺾었다고!), 대체 이게 무슨 로봇 이야기라서 그런가 궁금해졌습니다.
근데 막상 보려고 하니 영화를 하는 곳이 별로 없네요? 그래서 급히 좀 떨어진 극장까지 찾아가서 봤습니다. 결론은 … SF 액션 영화 맞고요. 로봇도 예쁘고요.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요. 감동도 있고 그랬는데요. 왜 호러 영화였던 겁니까(...).
챗GPT로 로봇을 만들면 메간이 나올까?
영화 장르도 몰랐냐고 하시면 원래 항상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산책하면서 가끔 영화관에 들리는 거라, 거의 즉흥적으로, 또는 그때 물어본 친구 추천으로 볼 영화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화 정보 같은 거 안 찾아본다는 말이죠.
게다가 영화가 딱 SF 영화처럼 시작합니다. 가슴 아픈 교통사고가 먼저 보여지긴 하지만, 멋진 하이테크 장난감 회사에서 최첨단 로봇을 만들고 있는 걸 재미있게 보여주죠. 로봇 표정이 완전 썩소인 것이 포인트.
마침 챗GPT에 대한 원고를 써서 보냈던 터라, 영화 주인공 메간(M3GAN, Model 3 Generative ANdroid)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습니다. 대본 작성할 때 당시 AI 연구 흐름을 반영하긴 한 것 같은데요.
여기서 메간은, 챗GPT와 마찬가지로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공부해서 대답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을 검색해서 정답을 알려줍니다. 챗GPT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면, 진짜 챗GPT로 로봇 만들면 저렇겠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메간과 챗GPT의 차이
물론 영화는 영화니, 메간은 챗GPT와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선 작습니다. 반응도 빠르고요. 챗GPT는 슈퍼컴퓨터급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하기 때문에, 저렇게 작은 로봇에 탑재될 수도 없고, 저렇게 빠르게 반응하지도 않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 당분간 어렵다고 봅니다. 챗GPT가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이해해서 답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확률 게임, 이럴 땐 이런 단어가 나올 확률이 높다고 때려 맞춰서 만들어지는 문장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 같은 문장을 만들지만, 느립니다. 이것도 많이 빨라졌다고 하지만요.
메간은 항상 정답을 얘기하는 편이지만, 챗GPT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데이터에서 그럴듯한 문장을 짜 맞춘다고 얘기했잖아요? 정답이 없어도 어떻게든 짜 맞춰서 문장을 만들어 버립니다. 덕분에 꽤 자주 이상한 답을 정답처럼 아주 당당하게 내놓습니다. 한국어는 특히 더 그렇죠.
마지막으로 메간은 시청각을 포함해 여러 형태로 정보를 얻고, 얻은 정보를 통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영화와 현실이 확 갈리는 건데요. 추론이 가능한 AI는 … 영화에나 있거든요.
메간이 살기 위해 선택한 방법
스토리는 중반까지, 나름 적당히 의심스럽고 적당히 안타깝다 가슴 울리는(정말입니다)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음, 적당히 스릴 넘치는 장면도 있고요.
중간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정말, 기계가 사람에게 쓰일 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인간적인 어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했을 정도로… 전 전혀 생각 못 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는 사람이 보면 신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지은 죄와 상관없이) 잘 풀리는가 싶었는데, 거기서 뒤집히네요? 춤추고 적당한 살인 동기(?)를 지어내며 온갖 컴퓨터를 해킹하는, 귀여운 소녀 로봇 스토리가 됩니다. 메간이 배워 버린 거죠. 위험한 인간은 해코지하며 살아도 된다는 걸.
메간이 추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배운 건 결국 인터넷일 겁니다. 넷 상에 떠도는 온갖 악의가 모여 메간의 추론 기반이 되고, 몇 번 해보고 나니 여기선 그래도 된다-라고 판단하게 했을 거라 생각하면, 쓴웃음이 납니다.
… 메간에겐 그게, 합리적인 행동이었을 테니까요.
메간2를 기다립니다
어이없긴 하지만, 처음부터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아마… 메간이 지켜야 하는 ‘케이디(바이올렛 맥그로우 분)’의 보호자인 이모 ‘젬마(앨리슨 윌리엄스 분)’가, 제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보면서 속으로 ‘으악! 집에 광경화 3D 프린터까지 있어?’ 뭐 이렇게 중얼거리며 봤으니까요. 집에 있는 다양한 가정용 로봇이나 스마트홈 제품을 보면서 ‘나도 저런 거 하나 살까’하는 생각도 하고, 전시된 장난감을 케이디가 못 만지게 하는 걸 보면서 ‘맞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거꾸로 그래서 SF 호러이면서도, 젬마와 케이디가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케이디의 성장은 (개인적으론) 끝내줬습니다. 와, 우리 집엔 가족이 한 명 더 있어! 라고 말하며 보여주는 그 화끈함이라니!
다만 마지막엔 좀 찝찝함이 남습니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긴 했지만, 메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이건 분명 사전에 제대로 테스트를 안 한 사람의 잘못이긴 한데요. 여기서 추론은 메간 혼자 한 거니, 뭘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메간2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이미 만들 것은 결정됐고(저예산으로 대박이 났거든요), 대본을 구상 중이라고 하는데요. 보통 이런 경우 더 잔인해지거나 더 액션만 강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터미네이터2처럼, 더 재밌는 영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풀어야 할 질문을 간직하고 있는.
* 생각보다 호러 아닙니다. 등급도 15세 관람가. 고어한 장면이 없어서 전 편하게 봤습니다.
* 메간이 옷을 정말 잘 입습니다. 근데 힘도 정말 쎄서 당황했다는. 저 정도 힘이면 장난감 말고 산업용으로 팔았어야…
* AI나 로봇에 킬 스위치는 정말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