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런 때가 오고 마는 군요. 예전에는 하드 디스크를 날렸을 때나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는데, 이젠 드디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날려 버렸습니다. 아, 예전에 이메일 함을 한번 그렇게 날린 적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아무튼 지난 한 주, 일도 좀 없어진 김에 쌓인 데이터를 정리하다가, 홧김에(…) 날렸습니다.
정리 아닙니다. 진짜 빗자루로 쓸어내듯, 날려 버렸어요.
어느 만큼 날렸냐고요? 꽤 됩니다. 일단 백업해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날렸습니다. 예전에 CD에서 리핑했던 음악도 날렸고요. 일하면서 쟁여 둔 영화 파일도 다 날렸습니다. 게임은 게임 패스 끝나면서 지워야 했고요. 미친 거 아니냐고요? 예, 저도 불안불안하긴 했습니다. 근데, 이거 아무래도 안되겠더라고요.
핵심 기준은 이거였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 안보고 안쓴 건 날리자’. 그때 사진 백업 받은 게 눈에 딱 들어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몇 년간 한번도 안 열어봤네요. 피카사- 같은 좋은 관리 프로그램도 이젠 없고, 구글 포토에 다 백업하는 바람에, 사진 쓸 때도 구글 포토에서 대충 편집한 다음 내려 받아서 씁니다.
심지어 사진 찍고, 구글 포토로 올린 다음, 거기서 내려 받아서 쓰니… PC에 있는 파일을 열어볼 일이 없죠. 그래도 백업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포기 했습니다. 안써요. 돌려볼 방법이 없으니. 반면 구글 포토는 그냥, 검색하면 필요한 사진이 착-하고 나옵니다. 개인 사진 데이터베이스로 쓰는 거라 마찬가지라, 이거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음악 파일은 어떨까요? 자주 듣는 음악 파일은 이미 스마트폰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거 빼면 요즘 주로 유튜브 뮤직을 이용합니다. 안 듣는 MP3는, 대충 몇 년은 안 들었던 것 같아요. 하기야 십년도 전에 백업뜬 것들이니… 오디오 테스트용 파일만 남기고 삭제. 사실 백업은 예전에 구글 뮤직 백업하면서 받아 놓은 파일이 있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정말 좋아하는 음악은 아직 CD로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영화/드라마 파일은 예전에 이쪽 일을 해서, 좀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름 인생(?)이 담긴 거라 본 거만 지우려고 했는데, 제가 그쪽 일 관둔 지 이제 꽤 된 게 생각납니다. 파일도 다 오래된 거고요. 잠깐 고민하다, 골라봤자 또 안 볼걸 깨닫고, 폴더 채로 날렸습니다. 요즘 영화는 극장-넷플릭스-유튜브 영화로 보고 있어서, 의미가 없더라고요. 추억은 참 좋은 거지만, 마음은 자꾸 새 콘텐츠를 찾는 달까요.
게임은 게임패스 해지하면서 정리했습니다. 정확히는 이용 기간이 끝났네요. 예, 이번 데이터 스위핑 계기가, 실은 게임 패스에서 왔습니다. 게임패스 이용기간 끝나니 정말 게임을 못하는 데, 알아서 삭제는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하나 하나 지워줬습니다. 그거 지워주다 하나 하나, 다른 것도 정리하기 시작한 거죠.
데이터만 날린 것도 아닙니다. 구독하고 있던 것도 목록으로 정리하고, 필요하지 않은 걸 쳐냈습니다. 원래 구글 캘린더에 정기구독 끝나는 일정 적어 놓고 관리하는 데, 이번에 아예 리스트로 뽑았네요. 이젠 집 밖에서 작업을 잘 안해서, 에버노트가 가장 먼저 정기 구독 해지 대상이 됐고요. 애플 TV 같은 거도 끝.
의외로 보던 건 계속 보게 됩니다. 이건 이상하게 끊기가 어렵네요. 시사인, 뉴욕타임즈, 와이어드- 같은 매체입니다. MIT 테크 리뷰는 구독 상태가 불안정해서(몇 번이나 구독했는데 구독자 아니라고 나오는 상황이 생겨서) 재구독 포기. 여기에 다른 비용까지 다 합쳐보니, 숨만 쉬어도 나가는 비용이 꽤 많네요. 하아. 망할 지역 의료 보험(…).
아무튼 이런 식으로, 당장 쓸 것 아니면 싹 다 정리했습니다. 우리 이제,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길잖아요? 운 좋으면 아닐수도 있지만, 보통 그럴 겁니다. 시간을 아껴쓴다는 개념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언젠가-‘라는 생각으로, 아둥바둥 더 뭔가를 끌어안고 가고 싶은 생각이 안들더라고요.
… 그리고 해보면 알게 됩니다. 싹 날려도 나중에 다시 생각나는 건 정말 별로 없다는 걸.
2020년에 하드 디스크 하나를 통채로 날려 먹고 살릴려고 노력하다 결국 포기했는데, 거기에 뭐가 있는 지 하나도 생각 안나더라고요. 결국 구글포토처럼 자료를 필요에 따라 다시 불러내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면, 아무리 자료가 있어봤자 필요 없는 겁니다. 몇 년 넘게 안 봤다면, 그건 확실하죠.
다만 꼭 필요한 것, 나중에 조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자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중 삼중으로 백업을 해두시길 권합니다. 전 문서 파일들만 삼중(클라우드-PC-외장하드)으로 백업해 놓습니다. 이건 자동 백업이라 사실 신경을 안쓰긴 하는데… PC가 갑자기 작동을 멈췄을 때, 살 길은 클라우드에 백업한 문서 밖에 없었던 적이 몇 번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무튼, 너무 많은 데이터가 쌓였다고 생각하신다면, 고르지 말고 그냥 날려보세요. 속이, 시원해 지실 겁니다. 음, 그러다 중요 자료 날리셔도 전 절대로 책임지진 않을 겁니다만- 그런 건 당연히, 현명하게, 미리미리 따로 보관을 하셨겠죠?
- 이미지는 대부분 미드저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