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페이스북에, 키크론 K7 살까 말까 고민중이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마트에서 보니 좋아보여서 하나 사려는 데, 써보신 분들 어떠냐고- 묻는 거였죠. 그런데 그 글 밑에 후배가 댓글을 달아줍니다. 나 이거 집에 있는 데 안쓰니까 빌려줄께요-하고요. 고맙습니다~하고 빌려왔는데-
그게 키크론 K7 이 아니라, K3 였어요(…).
아하하. 워낙 닮았으니 뭐 그럴수 있지(둘 다 로우파일 미니 키보드입니다. 겉보기엔 펑션키 유무만 달라요)-하고 생각하고, 집에 와서 세팅을 하는 데… 응? 이게 뭐지? 이게 뭐야?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키감이 완전히 다른 겁니다. 제가 써본 적이 없는 키감이었어요.
대체 이게 뭐야? 하고 키를 뜯어보니, 아하하하- 이게 바로 백축이란 물건이었네요.
사실 전 청축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데, 시끄러워서 무선 키보드에선 안쓰죠. 선호도는 주로 갈축. 그런데 막상 쓰는 제품은 모두 적축(…). 이상하게 그렇게 됐네요. 아니, 이상한 건 아니죠. 글을 쓰는 게 직업이다 보니 하루종일 키보드를 달고 삽니다. 그러다보니 손가락이 안좋아져서? 어느새 점점 키압이 낮은 제품을 저절로 선호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백축은, 그런 적축 보다도 훨씬 더 키압이 낮습니다. (타이핑할 때 힘이 덜 들어 갑니다.). 마치 구름 위를 타이핑하는 기분이랄까요. 손가락을 가볍게 대어도 바로 입력이 됩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서 혼났네요. 물론 평소처럼 입력해도 타이핑이 잘 되는 거만 빼면 비슷합니다만-
이게 키는 이미 입력됐는데 손가락이 더 들어가는 느낌이라, 할 수 있으면 가볍게 치려고 노력합니다. 전에는 정말 타자를 치는 기분이었다면, 이건 키를 건드리며 입력을 한다는 느낌. 아 진짜 관심 있는 분들은 나중에 한번 테스트를 해보세요. 정말 묘한 기분이 드실테니까요.
스위치 특성이 분명한 만큼, 단점도 확실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일단 타이핑하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고 ‘뭐라 쓰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가끔 그러고 있다 보면, 저절로 같은 글자가 ㄴㄴㄴㄴㄴㄴㄴㄴㄴ 하는 식으로 입력됩니다. 손가락을 올려놓는 무게로도 입력이 되거든요. 오타도 더 자주 납니다. 입력하다 옆의 키캡을 건드려도 같이 입력되버리거든요.
…옵티컬 백축은, 꽤 세심한 입력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키캡인 셈입니다.
적응하면 좋을 것 같은데, 확실히 손가락 피로감은 주는데, 이걸 계속 써야할지 말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쫀득한 키감이야 당연히 기대할 수 없는 거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키캡인 건 분명합니다. 기존 청축이나 일반 키보드를 치시던 분들에게는 못 권합니다. 미치실 거에요..
키크론 K3 키보드도, 사실 이런 미니 키보드가 별로 없어서 선택지가 많지 않은데요- 권하기는 좀 미묘합니다. 배터리 사용 시간도 짧고, 가장 이상한 건 오른쪽 보조키 배열이에요. 무슨 백라이트를 끄고 켜는 키를 오른쪽 맨 위라는 중요한 위치에 떡-하고 배치한 건지. 그래도 이건 익숙해지면 되는데, 페이지 업/다운 키가 위로 가고 홈/엔드 키가 밑에 배치된 건 이해 불가능.
아무튼 참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 키보드에 익숙해지면 악명 높은 애플 나비식 키보드도 자연스럽게 잘 쓸 것 같아요. 그때되면 중고 맥북이나 하나 구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