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손은 생각보다 많은 걸 말해줍니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1927년 외할아버지때부터 문을 연 이발소를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1965년부터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이발사입니다. 한겨레 신문 36.5도 섹션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오늘 읽었습니다(관련기사 보기).

서울역 뒷 편의 만리재라면, 그리 먼 곳도 아닌데, 막상 이런 곳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가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이 까맣게 몰랐기에 지금까지 별 탈 없이 문을 열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기사에 실린 그의 사진을 봅니다. 오래돼 손 때가 묻은 이발도구들의 사진이 몇 장 보이고(아직까지 비누 거품으로 면도를 해줍니다-), 정말 낡아보이는 이발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그가 앉아있습니다. 머리는 염색하신듯 하지만, 그냥 평범한 아저씨네요. 복장도 딱 옛날 이발사 아저씨들 복장 그대로입니다. 흰색 가운에 까만 바지.

그러다 문득 뭔가 낯설어서 가만히 살펴봅니다. … 이런, 그의 손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하긴 쉰여덟살이시면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몇십년을 온전히 이발을 해왔다면, 그의 손이 온전할 리가 없겠지요. 굳이 발레리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면, 몸은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오른손을 들어서 손목 아랫쪽을 봐주세요. 틀림없이 오른손목의 바깥쪽에 지나친 마우스질로 인한 굳은 살이 박혀 있을 겁니다. 쿨럭-

우리는 사기를 당한 다음에,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라거나, ‘그렇게는 안보였는데’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과연 얼굴을 보고 사람을 알 수가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먼저 보는 만큼, 사람들은 얼굴을 먼저 신경쓰고 꾸밉니다. 그래서 얼굴은,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됩니다. … 그렇지만, 손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기타를 치는 사람은 손 끝에 굳은 살이 붙습니다. 머리를 만지는 직업은 손의 지문이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컴퓨터를 오래하는 사람은 어깨가 구부정해 지는 경우가 많고, 춤을 추는 사람의 발에는 굳은 살이 박힙니다. 군인의 손은 거칠어지고, 식당에서 일을 하면 습진이 생깁니다. 그리고 성악이나 트럼펫을 부는 사람은 배가-_- 나온다고도 하더군요(나이 먹고 생기는 뱃살이 아닙니다~).

그런 탓일까요.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과 악수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손짓을 보다보면, 어느새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니- 안다기 보다는 느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한 사람의 손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살아왔을 삶이, 내 마음에 와서 촘촘히 박히는 기분이 듭니다. 손은 얼굴이나 말보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잊고 있던 버릇이지만, 앞으로는 사람의 손을 보는 습관을 더 들여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말과 얼굴에 혹해있었는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 나는 이제, 사람의 손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11621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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