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 국가대표 서포터즈 「붉은 악마」가 「신붉은악마 선언」을 했습니다. 모든 후원금과 후원관계를 뿌리치고, 예전의 모습 그대로, 말 그대로 축구가 좋아 미치는 사람들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맞아요. 붉은악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서포터즈였을 뿐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붉은악마가 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2. 잘한 일입니다. 그동안 기업들, 월드컵과 붉은악마, 너무 잡아드셨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안된다고 뒤에서 걸었던 딴지, 눈에 안보일거라고 생각하셨던 것은 아니죠? 응원이 뭔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소리지르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가수들 데려다 노래 부르고, 스피커 빵빵 때려되면 응원되는 줄 아셨죠?
… 제대로 된 마음이 없다면, 응원 아닙니다. 그건 관제동원 행사나 다름 없는 겁니다.
3. 8년전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경기였나요.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광화문에 모였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딱 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응원하다 말고 “에이- 다 진거네” 하면서 자리를 뜨던 사람들과, 지더라도 상관없이 끝까지 남아서 응원하고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로. 뭔가 악이 받쳐서 소리지르다, 물에 젖어 퉁퉁 불은 쓰레기들까지 죄다 치우고 자리를 떠난 사람들이.
… 이긴 놈만 내 편이라면, 이길 때만 내 편 이라면, 그건 응원 아닙니다.
4. 모두 응원할 필요 없습니다. 모두 붉은 악마가 될 필요, 없습니다. 그냥 놀고 싶으면 놀고, 자고 싶으면 자세요. 아무도 강요하는 사람 없고, 16강 진출 같은 것, 알고보면, 전국민의 열망도 아닙니다. 2002년 지나봐서 다들 알잖아요? 아무리 축구 잘해도, 우리의 삶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 지만 그래도, 우리 팀이 좋다, 이기든 지든 나는, 국가대표 응원하고 싶다- 하는 분들만 응원하시면 됩니다. 응원은 잘되기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도 마치 응원 경기를, 내가 내 맘대로 하면 어떠냐, 이기니까 관심 가지고 아니면 관심없다-라는 자세로 대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국대 경기만 잘보면 그만이지 K리그는 왜 자꾸 관심 가지라고 그러냐, 검은 봉지는 왜 뒤집어쓰냐, 축구 매니아라는 니들 때문에 나 짜증난다, 하시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축구 경기가 투견장입니까? 국대가 이길지 말지에 돈 거셨어요? 아니면 전쟁입니까? 우리 민족의 용기와 지혜를 자랑하는 전시장이라도 됩니까? 국가대표는 뿌리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진답니까? … 그런 분들 이제, 붉은 악마 안하셔도 되니까, 그냥 알아서 소리 지르세요. 저~기 SK에서 마련한 콘서트 보시고 그냥 저냥 따라가세요.
나는 그들이 “좋아서” 응원하는 것이지, “이길 거니까” 응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5. 이번 붉은 악마의 결정을, 그래서, 정말 정말 정말로 환영합니다. 솔직히 그동안 너무 많이 휘둘려왔습니다. 이제 다 내려놓고, 그냥 가야할 길, 이제껏 걸어왔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내가 좋아서 내 힘으로 응원도구 마련하고 목 터지게 응원했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기쁘게 소리쳤던, 그게 진짜입니다.
이제 나는 대한민국- 안할랍니다. 그냥 붉은악마 할랍니다.
월드컵은 세계대전이 아니라 “국가대표 축구경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