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미, 이건 진짜 중년들의 로코이긴 한데…(Marry Me, 2021)

어느 날 갑자기, 인기 여가수가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뜬금없이 선언하면 어떤 기분일까요? 현실이라면 이상하지만, 이야기 속이라면 별 것 아닙니다. 제 3차 세계 대전은 고사하고 외계인 침략도 모자라 이세계로 넘어가는 일도 밥 먹듯 일어나니까요. 뜬금없는 청혼? 훗- 귀엽죠.

메리 미(Merry Me, 2022), 제니퍼 로페즈와 오웬 윌슨이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유명 여가수와 유명 남가수가 결혼하기로 하고, 그 결혼을 테마로 월드 투어(?) 콘서트를 하다가, 마지막 진짜 청혼하기로 결정한 그 공연에서, 공연 시각 발표된 남자가 바람피는 동영상에 분노한 여자가, 친구가 준 ‘Merry Me’ 피켓을 들고 있던 남자와 그냥 결혼을 해버리죠.

… 네?

사진은 네이버 영화 정보 – 메리 미(2022)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 원래 하려던 거

▲ 영화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황당하지만, 뜬금없는 건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언제 로맨틱 코미디 커플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만나는 거 보셨나요. 진짜 문제는, 제가 이걸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그저 네이버 멤버십 포인트가 남았을 뿐이고, 오웬 윌슨이 ‘미드나잇 인 파리’가 떠오르는 모습으로 걷는 포스터가 있었을 뿐이고, 전 그 영화랑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싶어서 봤을 뿐이니까요.

덕분에 이거 뭐야? 어? 진짜 올라가? 법적인 진짜 결혼? 이야기 전개 어떻게 하려고? 하는 심정으로 봤네요. 어쩌다 봤는데, 어쩌다 볼만하긴 합니다. 명작은 아니지만 팝콘 로코라고 해야하나요. 달콤쌉싸름한 영화를 기대했다는 데 밀크쉐이크를 먹고 나온 기분. 유일한 흠은 제니퍼 로페즈 누님. 매력적인 배우이자 가수인 건 분명한데, 나이 든 게 확실히 보여서 슬펐네요.

▲ 이런 느낌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냥 사십대 한물 간 가수로 설정하면 어땠을까, 한물 간 삶을 뒤집기 위한 한방역전 프로젝트가 결혼 작전이라면 설정이 살지 않을까- 싶지만, 알고 보니 이게 원작이 있는 이야기라네요. 무려 그래픽 노블… 우리로 따지자면 웹툰 원작 영화. 하아. 바꾸기 어려웠겠네요. 노래도 잘하고 로코 연기도 잘하는 젊은 배우는 이제 찾기 힘들고.

타겟도 분명히 보입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옛날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어요. 설정은 무리수인데 이야기 전개는 정말, 옛날 로코 스타일.

… 기승전개가 딱 예상된다는 말이죠.

예상되긴 하는데, 씁쓸한 부분은 많이 덜어 냈어요. 대신 양념처럼 중년 이혼남의 일상이 들어갑니다. 딸과는 약간 서먹한 관계라던가, 뭐 그런거요. 양념입니다, 양념. 다만 오웬 윌슨이란 배우를 아는 분이라면 조금 짠-하실 수도 있겠네요. 전에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고 참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영화 속 캣 발데즈(제니퍼 로페즈 분)의 마음을 정말 절실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현실의 오웬 윌슨이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싶긴 하지만요. 뭐, 원래 영화가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때론 현실의 남루함을 잊기 위한, 진통제. 살아가는 날이 힘들고 지루하고 의미 없어 보일 때, 잠깐 잊고 힘내자-하고 보는 그런 약.

… 뭐, 제가 그래서 봤던 영화고, 그래서 딱 좋았습니다.

좀 평범하게 달콤하긴 했는데, 제니퍼 로페즈(69년생)와 오웬 윌슨(68년생)의 얼굴을 보고 나이를 생각하니 좀 덜 싱거워 집니다. 누님 형님, 행복하게 사셔야 해요. 부족한 이야기는 음악이 채웁니다. 한 두 곡 들어가는 게 아닌데다 풀 버전으로 틀어줘서(?) 뮤지컬 영화인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곡도 괜찮습니다. 주제가인 ‘Merry Me’보다 ‘On My Way’가 더 좋습니다. 들어보세요.

제 평점은 시계 0 번. 영화 볼 때 언제 끝나냐-하고 손목 시계를 몇 번 봤는지가 기준입니다. 영화 자체는 달달하고 싱겁지만, 볼 때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시계 한 번 안 보고 잘 봤습니다. 팝콘 로코, 레트로한 로코가 보고 싶을 때 추천합니다.

* 이건 좀 딴 얘기이긴 한데, 영화 속 간접 광고도 재미있게 관찰했습니다. 아직까지(!) 피처폰을 쓰는 남자 주인공에게 이메일로 일정 관리 하라고 아이폰을 사주고, 아이들은 구글 크롬북을 이용해서 음성 검색을 하더라고요.

* 물론 이 영화의 기술 주인공은 인스타그램입니다. 주인공 주변 사람들이 죄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중독자들(…). 여주에겐 아예 SNS에 올릴 자료를 만들기 위해 활동 시간 내내 동영상 찍는 스태프가 옆에 붙어 있습니다.

* 쓰다보니 왜인지 여주가 힘들었던 이유가 SNS 덕분이었을지도. SNS 콘텐츠를 올리려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24시간 자신을 상품으로 파는 느낌이 이런 걸까요. 현대에는 ‘트루먼 쇼’가 필요 없습니다. 사람을 어디에 가둘 필요 없이, 카메라가 사람을 따라다니니까요.

* 게다가 여주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타입. 그런 사람이 SNS를 만나면… 음, 확실히 정신건강이 위험합니다.
이 영화 속 최고 기적은, 알고보면 결혼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고른 남자가 찰리 길버트(오웬 윌슨 분)였다는 거. 이런 좋은 구식 남자 현실에서도 별로 없거든요.

* 옛날 영화에서 흔히 나오던 여주인공의 게이 남자 친구 자리에, 이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의 여자 사람 친구 파커(사라 실버맨 분, 1970년생)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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