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을 읽어보시면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호칭이나 반말/존댓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입니다. 솔직히 말로 만들어지는 위계질서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많이 끔찍해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살아가기위해 노력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호칭이나 반말/존댓말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보자마자 반말 까는 사람이나 ‘하대’하려고 드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살포시- 무시하며 살아왔습니다. 실은 제가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라, 다음부터는 다들 알아서 -_-;; 친한 척 하지 않더라구요.
서로의 관계에서 호칭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호칭은 ‘부르는 사람’이 ‘불리는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호칭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은, 전에 들어간 회사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입니다. 두 명이 근무하는 조그만 사무실이었고, 저보다 1주일인가 보름을 먼저 들어온 여성이 한 명 있었습니다. 저에겐 처음부터 끝까지 ‘자그니 씨-‘, ‘자그니 씨-‘하면서 불렀는데,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한 두달 지나면서 부터 굉장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이 사람이 나를 그냥 ‘-씨’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대’하기 위하여 굳이 ‘-씨’를 고집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간단히 말해서 이 사람이 나를 의도적으로 깍아내리고 싶어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같은 시기에 들어온 직장 동료라지만 학번도 8개 정도 차이가 나고, 경력도 6년차와 신참이라는 차이가 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꼬박꼬박 ‘-씨’ 붙여가며 말대꾸를 해대는데, 없던 정마저 떨어질 지경이더군요. -_-; 몇 번 돌려서 윗 분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그냥 제가 사무실을 관두는 선에서 정리를 했습니다(저는 관계에 서툰 편이라, 이런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실은, 제가 올해 새로 들어온 대학원에서도 호칭에 관계된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제가 입학한 과는 신설학과여서, 연령대가 20대중반부터 30대후반까지 다양합니다. 당연히 나이차도 많이 나지요. 그러다 보니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학한 친구들과 저처럼 나이먹고 입학한 사람들 사이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일단 20대 중반의 친구들이 자그니를 부르는 호칭은 ‘형/오빠’와 ‘자그니 씨’로 정리가 됐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뒤의 호칭이 제 마음 안에서는 좀 문제가 됐습니다. 앞서 사무실의 문제로 나름 몇달간 호되게 맘고생을 했었거든요(…예, 싫은 소리 잘 못하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한번 집에 가는 길에 얘기를 해봤습니다.
- 나이 많은 사람에게 ‘씨’라고 부르는 것은 하대의 의미가 있다. 다른 호칭 없겠냐?
음- 모르겠다. - 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해라.
그런 싫다. - 그럼 형이라고 해라.
그것도 싫다. - 그럼 차라리 자그니~하고 이름을 불러라.
어색하다. - 자그니님..도 그럴 것 같고… 아웅.. 모르겠다.
그래서 결론은? 물론 안났습니다. 대신 같은 과의 다른 누님들과 이야기해 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그래..ㅡ_ㅡ;; 그것이 편하다면 그냥 씨-로 불러라.”
였습니다. 뭐, 굳이 하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거나 다른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 그냥 적당한 호칭이 없어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니 나쁠 것도 없겠다-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그 친구가 제게 -씨라고 호칭할때, 기분 나쁜 적이 없었으니까요.하지만 어느 정도에서, 더 친해지거나 말거나 할 것도 없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은 합니다. 호칭은 관계를 드러내며, 누군가는 ‘친근함’을, 누군가는 ‘거리두기’를 선택한 것이니까요.
사실 이런 부분들-커뮤니케이션 스킬-은 현실에서 많은 고민 거리를 던져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에만 의존하지, 제대로 된 충고를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과거부터 내려오는 예의의 규칙들이 조금씩 깨져가고 있는 요즘, 뭔가 새로운 규칙을 잡아가기 위한 고민들이 필요하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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