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기억의 일부분을 디지털 카메라에 맡기고 살아갑니다. 어차피 불완전한 사람의 기억을 그렇게라도 메꿔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된 습관입니다. 한겨레 문화센터의 스튜디오 사진 강좌를 듣게 된 것은, 그런 버릇을 가진 제가 유일하게 찍을줄 모르는 사진이 ‘조명을 이용한 스튜디오 실내 촬영’이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8월 22일, 첫수업 이론 강좌에서 가장 가슴에 다가왔던 것은, 사진은 ‘주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사진은 그냥 사진 한 장일 수도 있지만, 그 사진 한 장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 안에 이야기를 담고, 사진으로 서로의 관계를 풀어나갑니다.
그러니까, 늦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찍어주세요. 그 사람들이 ‘찍은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무슨 상관일까요. 우리 주변의 어떤 것도, 지금 그대로 내게 머물러 주지 않는답니다. 바로 지금, 눈 앞의 것부터 찍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아요.
가장 좋은 사진을 결정하는 것도 자신입니다. 그렇지만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좋은 사진을 발견했다면, 그 사진 안의 그림자를 살펴보세요. 사진에 들어있는 빛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출은 사진의 70%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위에서부터 아래 끝까지 스캔하듯이 보세요. 찍은 사진은 계속 리뷰해야 합니다. 왜 좋은지 왜 나쁜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만약 정말 좋은 사진을 찍었거나, 발견했다면, 계속 그 이미지를 눈에 집어넣으면서 고민해야 합니다. 왜 좋은지, 왜 좋은지, 왜 좋은지. 그리고 그 이유를 기록해 놓으세요. ‘왜’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면 성공입니다. 이 ‘왜?’를 모르면 알게될때까지 고민해야지요.
또한 찍는 것은 내 자신이지만, 내가 먼저 피사체에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내가 먼저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그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 5분만 생각해 보세요. 내가 “무엇”을 찍고 싶은 지를. “왜” 찍고 싶은 지를.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은 절대 나중에 주지 마세요. 🙂 사흘 안에 찍힌 이들과 꼭 공유하세요. 사진은 ‘나 혼자’ 찍는 것이 아니니까요. 사진은 열려있는 것, 함께 공유하는 것이니까요. 🙂
맨 처음의 사진은, 몇년전에 찍은 제 아버지 사진입니다. 급성 간염으로 서울에 올라와 입원하신 아버지는, 저 사진에 찍히시고 세달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룬 후 어느 날, 제가 찍은 이 사진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제 막내 동생을 보았습니다. … 처음으로, 닥치는 대로 사진 찍는 제 버릇을 고맙게 생각한 날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 더 배운 내용들
- 필름과 디지털 사진은 완전히 다르다.
-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고 해서 사진의 수준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 전체적인 시스템은 디지털로 넘어가고 있다.
- 피사체는 평면이 아닌 입체임을 기억하자.
- 사진은 손이나 입으로 찍는 것이 아니다.
- 자세는 자신에게 편한 자세면 무엇이든 괜찮다.
- 좋은 사진, 비슷하게 찍고 싶은 사진을 모아보자.
- 모은 사진을 보면서 비슷하게 찍어보자.
* 이 글은 한겨레 문화센터 “손홍주의 인물사진과 스튜디오 작업” 32기 첫시간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씌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