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살아가자

1. 사진이란 것은 참 이상하지. 그 네모난 틀 안에 사람들은 꿈을 담고, 추억을 담고, 사랑을 담고, 슬픔을 담아. 물론 대부분 눈 앞에 보이는 그대로를 담는 것이라고 믿지만, 실은 거짓말. 사진에는 그 때의 현실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거든. 사진은 본질적으로 꿈이야. 그 때의 꿈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꾸고 있거나, 꾸는 것을 잊어버린 시간의.

사람들은 그 안에 저마다 담고 싶은 것만을 담지. 즐거운 웃음 소리를, 웃어주던 그 아이의 표정을, 스치던 바람의 간질거림을, 햇살을 받아 부서지던 아침의 낯선 거리를, 이제는 가고 없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과,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 … 그리고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말야.


2. 미안해요, 라고 다들 말을 하곤 했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나를 떠나면서, 다들, 미안하다고 말했지.

… 왜 미안한 것일까. 당신은 나를 사랑했고, 나는 당신을 사랑했고, 이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 뿐인데. 사람의 마음은 원래 변하는 것인데. 당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내게 미안할 이유 는 없는건데.

내가 당신을 사랑했으니 내 마음이 아픈 것은 당연한 건데(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도 미안한 척 하지 말고 헤어지란 것은 아니다… 어이, 당신, 착실하게 살자고, 착실하게. -_-;). … 물론, 그것때문에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야. 내 자신을 미워하기까지 했는걸.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진, 내가 너무 못나서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많이 자신을 미워했었는데. 하지만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 따위는 없어. … 그리고 나도, 당신이 없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아…


3. MSN에서 한 친구가 말을 걸어왔어.
대화명을 보니, “슬플 때는 눈을 감아버리자“야. 이제 보니, 결국 실연을 당한거야. 바람둥이를 만난 탓으로(실은… 그 자신이 바람의 상대였다가, 결국 다시 바람을 핀 넘에게 배신을 … -_-+).

그 아이는 알면서도, 다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욕심에 슬퍼하고 있었어. … 뭐라고 말을 해 줄수 있을까. 그 아이는 내게 충고를 원하는 것이 아닌 걸. 그저, 말을 들어줄 상대가 필요한 것일뿐. 그런데, 그렇게 몇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니, … 어느새 그 애와 나는 이별을 소재로 농담을 하고 있었어 -_-;;(실제로, 실연당해서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못먹고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인간들의 반응은, 지금이 딱 보기 좋다 -_-; 이 상태만 유지해라..였다지. -_-;; 우띠~ -_-++).

그런 거야. 알고 보면, 지나고 나면, 다 농담 같은 것. 사람이란 어리석어서, 아닌 줄 알면서도 아파하고, 아닌 줄 알면서도 괴로워 하는 걸.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데,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그 사람은 떠났다는 걸, 사랑이 변할수도 있다는 걸… 그건 상처입고 아파봐야만 배울 수 있는, 인생의 꼬리표 같은 것. 사람의 칼에 베인 상처. 반창고를 붙여도 낫지 않는.


4. 지금 내게는, 누군가가 다가오고, 누군가는 멀어지고 있는 중이야.

시간이 된 거지. 헤어짐을 머리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고 해도, 차마 떨치지 못하고 있었던 가슴의 미련을, 인정하고, 묻어버리고, 너그럽게 잊어버려야할 시간이. 이제는 스타 벅스에서 졸린 눈을 부비며 나를 기다리던 사람도, 배고프단 말에 한걸음에 달려가 빵-_-;을 쥐어주던 내 모습도, 새벽의 서늘함에 눈을 떴을때 내 곁에서 보이던 그 긴 속눈썹도… 두 번 다시 없는 거라고, 깨달아야 할 시간이.


5. 오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위해 슬라이드 필림 영사기를 돌렸어. 찰칵, 찰칵, 경쾌하게 하나씩 하얀색 스크린에 비치는 사진들. 그 안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시간들이 담겨 있었어.

하지만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사람의 흔적이란 참 집요하지. 그 시간을 즐기며, 담배 한 대 피워 물면서, 한참을 낄낄대며 보고 있었는데, 문득, 그 애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메웠어. 낯선 장소, 낯선 시간에서… 다시 그 얼굴을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백 몇십일전 헤어진 그 애도 내게, 너무나 갑작스럽게, 미안하다, 라고 말을 했었어. 그리고 나는 얼떨결에, 고마웠다고 대답했었지.

정말 짜증나는 대답이었어.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사라져달라는 사람 앞에서, 고마웠다고, 그렇게 말하는 바보…가 바로 나였어. 그리고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지. 그런데 그 애가, 지금, 내 눈 앞에 가득 펼쳐져 있는 거야.

스크린에 가까이 다가가, 그 애의 얼굴을 들여다 봤어. 커피샵에 앉아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이, 내 키만큼이나 크게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었어.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소비해야만 했어.


6. 나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또 어떤 관계를 맺고, 풀고, 끊어야 할 지 몰라. 당연하지만, 그건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일이잖아? 누군가는 내게서 멀어지고 누군가는 또 다가오겠지. 어차피 사람이란 서로에게 걸쳐서 살아가는 동물. 관계맺으며 살아가는 동물.

누군가는 스쳐가고, 누군가는 좀 더 오래 내 곁에 머물면서, 당신은 나에게 들어오고, 나는 당신에게 들어가는 거야.

… 솔직히,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자신은 없어. 그리고 기왕이면, 그 사람이 내게 오래 곁에 있어주길 바래. …

하 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면, 그리고 헤어진 그 사람을 어쩌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그때의 나보다, 조금 더 커진 마음으로, 조금 더 커진 지혜로, 당신 앞에 서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마웠다고, 내 곁에 머물러줘서, 참 고마웠다고 말하는 일.

칭얼대는 말을 부여잡고, 가지 말라는 마음 애써 감추며 내뱉는 그런 말이 아니라, 니가 어디 나없이 잘먹고 잘사나 두고보자라는 생각 억지로 감추며 내뱉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참 고마웠다고 그 이에게 인사하는 것.

당신이 있어서, 그때, 참 많이 기뻤다고.


7. 지금도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내일은, 모레는, 또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지도 몰라.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내가 외면하고 있을 지도 몰라. 인생이란 워낙에 장난을 잘치는 놈이니까, 어디서 어떻게 인연을 어긋나게 할 지도 몰라. 정말 멋진 사람을 만났는데 내 생활이 어려워 외면하게 될지도 모르고, 정말 좋은 사람을 눈 앞에 두고 다른 사람을 찾아 헤맬지도 몰라. 누구나 눈 앞에 있는 100%의 아이는 스쳐지나가기 마련이야.

하지만 … 나쁘지는 않잖아.

하루하루, 그렇게 두근거림은 이어질테니까(최소한 엔돌핀은 많이 나올거라고 믿어… -_-;;). 비록 백수라고 해도, 당신을 사랑할 시간은 있어(오히려 많아.. -_-;;). 당신에게 열어줄 마음은 있어(돈이 없다고 구박하지마…-_-;;). 당신에게 하고픈 말이 있고, 하루종일 둘이서 낄낄대고픈 일들이 있어.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당신에게 전화해서, 꼭 하고픈 말이, 참, 많이 있단 말야. 그러니까, 나중에 어쩔수 없이 미안하다고 말한다고 해도, 당신 잘못이 아니니까, 지금은, 살아가자.

하루하루, 피곤한 몸을 뉘이면서라도, 누군가를 열두번은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어난다고 해도, 몇달치 월급을 못받고, 누군가에게 한없이 무시당한다고 해도, 몇 달을 연습해도 베이직 하나 못밟는다고 해도, 집에선 결혼이나 하라고 닥달을 해도, 살아가자.

옷은 진흙탕이 묻어 지저분하고 떡볶이 묻은 자국이 선명하다고 해도, 새 옷을 입고 나온 날 소나기가 쏟아진다고 해도,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 때문에 일도 못하고 있는데 놀고 있다고 꾸지람을 당해도, 감지도 못한 머리에 지우지도 못한 화장, 올이 나간 스타킹을 신고 있다고 해도, 살아가자.

옛날 놈팽이는 자꾸 생각나고, 친구들은 옆에서 염장을 지르고, 누구는 연봉이 얼마고 누구는 어떻게 돈 많은 사람 만나서 잘 결혼 했는지 수군댄다고 해도, 점심 사먹으려는데 2000원밖에 없어서 담배 사서 필지 라면 사먹을지 고민된다고 해도, 하고픈 일은 참 많은데 풀리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정말 술 한잔 마시며 울고 싶다고 해도, 살아가자.

살아가자.
당신과 같이 놀아줄 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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