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잊혀진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첫 눈 오는 날, 누군가에게 전화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 공중전화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던 풍경. ‘지금 눈 온다, 어디 있니, 만나자, 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 전화카드를 든 채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기다리던 시절.
1990년대 중반 풍경입니다. 1997년 말 PCS 서비스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휴대폰은 돈 많은 사람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기에,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는 무선 호출기(삐삐)로, 쪽지로, PC통신 채팅창으로 서로를 만날 수 밖에 없었거든요.
지금은 생각만 해도 살풋 웃음이 나는 시절의 이야기. 팬심만이 가득했던 1997년은 아니었답니다. 그때 우리가 함께했던 디지털 기기들의 이야기를, 지금, 들려 드릴께요.
1. 무선 호출기 삐삐
2011년과 2012년에 많은 화제를 몰고 왔던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에서는 유독 유선 전화기를 들고 있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옵니다. 때론 수줍게(?) 자신의 삐삐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는 모습도 보이죠. 당연한 것이 이때는 삐삐의 시절.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 사는 몇몇 어른들 뿐이었거든요.
당시 삐삐는 지금 휴대폰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셔도 됩니다. 종류도 다양해서, 처음에는 숫자만 찍히던 것이 나중엔 음성 사서함을 기본으로 탑재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말로 이야기하면 글자로 찍어주는 삐삐까지 등장했습니다.
덕분에 전국적으로 히트했던 것이 바로 ‘공중전화’입니다. 삐삐는 기본적으로 ‘이 번호로 전화해!’라는 느낌으로 번호를 찍는 물건이라, 바깥에서도 삐삐에 들어온 음성 메세지를 확인하거나 전화를 하기 위해선 공중 전화가 꼭 필요했거든요. 게다가 대부분 숫자만 찍히는 삐삐의 특징상, 숫자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약어들이 엄청나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004 가 찍힌 호출이 올 때는 괜히 설레는 일까지…(물론 몽땅 다, 빨리 확인해 보라는 친구들의 장난이었습니다.ㅜ_ㅜ) 0124(영원히 사랑해)나 7942(친구 사이) 4444(4랑하는 4람이 4랑하는 4람에게) 등은 지금도 생각나는 삐삐 약어들입니다. 아참, 덕분에 덩달아 전화카드나 패션명함의 인기도 높았답니다.
어떤 삐삐를 가지고 다니는가도 중요해서, 고장도 안났는데 1년에 한번씩은 삐삐를 새 것으로 바꾸는 버릇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생일날… 이런 날엔 음성 사서함에 노래를 녹음해주거나,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들도 참 많았어요. 그러다 음성 사서함에 보관해야 할 메세지가 넘치면 어느 것을 지워야 할 지 몰라서 울먹이던 적도 있었죠…
2. PC통신과 새롬 데이타맨 프로
01410, 01411 등 PC통신망 전용 접속 번호와 삐삐삐지직삐~~~ 하는 접속음을 기억하신다면… 그대도 분명한 30대 이상. PC통신 역시 이 시대에 자라난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영화 ‘접속’의 영향도 있었지만, 실제론 1994년부터 나우누리 등의 새로운 PC통신 서비스가 태어나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매달 11,000원씩을 내면서 사용했는데, 비싼 요금 때문에 연인들은 하나의 아이디를 공유하는 일도 잦았답니다. 이때 PC통신의 속도는 보통 56K. 1024k=1M고, 지금 초고속 인터넷망은 기본적으로 최소 10M, 잘나가는 것은 1G(1024M)를 지원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얼마나 느렸는지 아실 수 있을 거에요.
게다가 당시는 전화선을 이용했기에, 전화요금으로 3분에 50원씩을 내야만 했습니다. 앞서 말한 전용선은 정액제를 하거나 30%정도 요금 할인을 해주기도 했지만 말이죠. 또, PC통신 이용 중에는 전화를 할 수가 없어서, 친구들에게 “니네 집은 전화해도 맨날 통화중이다”란 불평을 항상 들어야만 했었습니다.
이후, 통화중 대기 서비스를 이용해 PC통신 이용중에 전화가 오면 자동으로 끊어지게 되면서 이런 불만은 많이 사라졌지만요. <응답하라 1997>에서도 PC로 야한 사진들을 보던 은지원이 접속이 끊기자, 누가 전화를 쓰냐며 소리지르는 장면이 바로 이것이죠.ㅎㅎ
가장 활성화된 서비스는 역시 채팅과 게시판, 동호회였습니다. 번개라고 해서 ‘지금 어디에 뭐 먹으러 가는데 같이 먹고 싶은 분들은 모이세요~’라고 게시판에 글 올려서 사람들이 모이는 형식의 즉석 만남(?)도 잦았고, 동호회는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만들어질 수 있었기에 한번 만들어진 동호회의 파워는 꽤 대단했었답니다.
채팅을 통한 낯선 이와의 만남에 재미 들리면 밤을 새기도 일쑤였고요. 당시 인기 있었던 소설인 ‘퇴마록’과 ‘엽기적인 그녀’도 모두 PC통신에서 연재했던 소설들이었습니다. MUD라고 해서 90년대 후반 등장한 텍스트 형식의 온라인 게임도 큰 인기를 모았었구요. 지금 보면 어떻게 이런 게임을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이런 PC통신 활동을 해주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90년대 중반에 발표된 윈도우95와 새롬 데이타맨 프로였습니다. 윈도95는 컴퓨터 사용을 아주 편하게 만들어줬고, 98년에 발표된 새롬 데이타맨 프로는 다른 대체 프로그램이 없었기에(응?)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던 통신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도 오프라인과 많이 달랐어요. 갈무리나 ANSI 같은 단어를 듣고 추억에 젖는다면, 당신도 그때 PC통신 폐인이었음을 인정합니다. 땅땅.
3. 오락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90년대 후반 PC방이 등장한 이후에도 오락실은 남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386세대의 당구장과 비슷한 급이었다고나 할까요. 뭐 오락실 자체야 80년대부터 있었지만, 90년대부터 인기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오락실이 상당히 늘어났었어요. 킹 오브 파이터, 버추어 파이터, 철권 같은 지금도 끊어지지 않고 시리즈가 나오는 인기 게임들이 모두 이 무렵 등장했답니다.
DDR이나 펌프 같은 춤추는 게임기가 등장한 것도 9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사실 <응답하라 1997>에서처럼 집에서 DDR을 하는 경우는 많진 않았답니다. 물론 디아블로1, 스타 크래프트1 같은 인기 게임들이 등장해 PC방의 인기도 점점 높아져가고 있었지만- 은근히 술 한잔 마시고 하는 펌프 게임이 참 재미있었다니까요….(으응?) 이 이야기는 남자가 아니면 별 관심이 없으실 테니 이쯤에서 패쓰-
4. 씨티폰과 PCS
지금은 사라진 전설의 기기, 씨티폰이란 것이 이때는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은 아무나 갖지 못할 기기. 휴대폰과 이용 요금도 비쌌지만, 처음 휴대폰을 개통할 때 설비비란 명목으로 무려 65만원을 추가로 내야만 했거든요(96년에 폐지. 당시 짜장면 값이 3,000원 정도였던 시절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한 백만원 정도?).
그래서 나왔던 것이 바로 씨티폰입니다. 폰은 폰인데, 받지는 못하고 걸수만 있는 휴대폰이었어요. 문제는 걸 수 있는 지역이 공중전화 박스 근처밖에 없었다는 것. 기지국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 기지국이 대부분 공중전화 박스-_-여서….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도시에 살면서 두메산골에 살고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휴대폰이었습니다.
그러다 1997년 말에 등장한 것이 바로 PCS(개인 휴대 통신). <응답하라 1997>에 나오는 ‘걸면 걸리는 걸리버’등의 전화가 바로 이 PCS 입니다. 마케팅을 위해 공짜에 가깝게 뿌린 폰들도 많았고, 기존 휴대폰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웠기에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덕분에 씨티폰도, 삐삐도 모두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음성사서함 대신 문자 메세지가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통화료보다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나 저제나 학생들에게 휴대폰 통화료는 부담이거든요.
… 뭐 저에게야, 기본요금 있는 시계이긴 했었습니다만 OTL.
자- 지금까지 90년대말 우리 곁에 머물렀던 디지털 기기들을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떠세요? 이 중에 몇가지나 알고 계신가요? 모두 알고 있다면, 분명히 30대이실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30대라는 것이 슬픈 단어가 아니에요. 영화 ‘은교’에도 나오듯이,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지난 시간은, 젊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남겨줬으니까요.
그때를 추억하는 것은 잠시 달콤함을 맛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시 현재를 그때처럼 기억에 남을 순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테니까요.
* 2012년 CJ E&M 블로그에 기고했던 글을, 조금 수정해 올려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