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속아주는 일이야.
굳바이 레닌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혼자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어.
조그마한 극장 한 귀퉁이에서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웃다가-
그만 가슴 한구석이 짠-해져 버렸거든.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 진심이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다칠까봐,
거짓인 것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
알고보면 최강의 거짓말쟁이는 어머니야.
평생동안 자식들을 속여왔으면서,
마지막까지도 자식을 속이면서 하늘로 떠나지.
나쁜 뜻으로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모성의 위대함” 같은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아.
다만, 억척스럽게 세상을 살아왔던 그녀가,
마지막까지도 잃지 않고 보여주는 그 당당함-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배려-에,
그만- 가슴이 멍- 해져버렸어.
그리고 그 아들-알렉스는,
어머니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
“자유 세계”와 “서방”, 그리고 “자본주의”-라고 불렸던 것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 속에서 잃어버리고 있었던
어떤 세상에 대한 가치,를 찾아가.
그가 “어머니의 꿈”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은- 자기 자신의 꿈.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들이 꿈꾸고 있는 것이기도 해.
…
그래, 영화는 꿈에 가득차 있어.
힘겨워 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보이지 않아.
다들 자신이 살아갈 수 있기를,
자신이 가치있는 인간이기를 끝끝내 소망할 뿐.
…
돌아오는 길에, “호텔 선인장”을 다 읽어버렸어.
너무나 쉽게 읽히는 소설. 역시 동화같은 이야기.
만났다,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헤어지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려하며,
필요할 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자’와 ‘오이’와 숫자 ‘2’의 이야기… 를 빙자한,
그들이 살고 있는 낡은 회색 아파트의 이야기.
…
나는 이제, 슬슬-
혼자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춤을 추러 다니고, 책을 보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어.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해 보지만
굳이 없어도 괜찮아- 라고 다시 대답하게 돼.
쓸쓸하지 않은 것이 아니야.
어느덧, 쓸쓸해도 괜찮아-
라고 대답할 수 있을만큼 살아와 버린 거야.
…
그래도 가끔은,
오늘같이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머리를 자른 날은-
아무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아무라도 붙잡고, 아무라도 붙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