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노동을 권하는 IT 업계

1.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싫어도 하는 일이다. 예전 중앙일보에 실린, 「이어령의 말의 정치학」에 나온 말이다. 이어령은 한나 아렌트의 노동 개념을 빌려와서 인간의 사회 활동은 “작업”과 “노동”과 “활동”이 있다고 말했다. 작업은 배움이나 독서와 같은, 자신을 위한 일들이고, “활동”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외부적 활동이며,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싫어도”하는, 그런 일들이라고.

노동은 싫은 일이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어먹고 살면 안된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 노동을 시키기 위해, 세상은 온갖 달콤한 말로 회유하고, 매서운 채찍으로 협박을 한다. 겨우 배고픔만 해결할 수 있어도 이 일을 하고 싶은가?라고 물었을 때 “Yes”란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린 틀림없이 싫은 노동을 하고 있다.

2. 얼마전 인터넷에 올라온 「삼성물산 46기 신입사원의 사직서」를 읽다가 혀를 끌끌 찼다. 노동을 하는 인간이 “사장님”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사 업무의 현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일과후에 자기 계발하면 될텐데, 왜 야근을 생각해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이런 질문조차 이 회사에서는 왜 의미가 없어지는지..

(사장들이 말하는 회사의 유토피아) 상사라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도대체, 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창의와 혁신이 넘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제도는 실력과 실적만을 평가하는 냉정한 평가 보상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사장들이 말하는 직장인의 이상적 모습) 사람들은 뒤쳐질까 나태해질까 두려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술은 무슨 술인가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도대체 이렇게 해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이 사표쓰게 된 진짜 이유) 신문화 웨이브라는 문화 혁신 운동을 펼친다면서, 청바지 운동화 금지인 ‘노타이 데이’를 ‘캐쥬얼 데이’로 포장하고, 인사팀 자신이 정한 인사 규정상의 업무 시간이 뻔히 있을진데,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원과의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대하여 특정 활동을 강요하는 그런, 신문화 데이같은 활동에 저는 좌절합니다.

…어디서 많이 봤다, 이런 사람. 학과에 행사가 있다 그러면 한번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 친구들이랑 놀다 말고 도망가는 사람. 타인을 위한 일에는 한번도 자신의 시간을 내보지 않은 사람. 개인주의로 포장된 이기주의. … 그렇지만 알고보면, 세상이 안전선이다-라고 하는 것을 따라가지 못해서 조바심이 난 사람. 판단을 자기 머리로 하지 못하게 남에게 맡겨버린 사람.

3. 반면에 다음 블로그에 올라온 「IT맨, 내가 사직서를 쓴 이유」는 절절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노동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 c/C++ 8년차가 되었다. 내 위에 중년을 바라보는 개발자들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새벽 퇴근과 날밤새기주말 출근을 당연히 받아 들이며 살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들은 이제 야근을 즐기고 있는 거 같다. 그냥 그런 문화에 젖어서오히려 야근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을 ‘부적응자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은 아주 소박하다. 그리고 별 것 아니다.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꿈꾸는 6시 퇴근, 주 3일 영어학원, 아내와 아들과 저녁식사, 주말에 운동, 가족과 나들이. 한국에서 IT 개발자로 있는 한 그건 꿈이다. 꿈.

8년만에 휴식으로 아침에 약수터 도서관 책보기, 저녁엔 농구, 가족과 식사 아들과 놀아주기 같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있다. 당연히 회사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난 이게 너무나 감사하다.

유토피아 같은 직장은 세상에 없다. 누군가가 “효율성”을 애기한다는 것은 “투자한 비용” vs “뽑아먹은 비용”을 말한다는 이야기다. 연봉제로 바뀐 이후 이런 일들이 더 심해졌다. 그게 사장들이 말하는 세상이다.

몇 년전 프랑스의 한국대기업 현지 법인이 사라졌다고 한다. 개발자들이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는 거 보고 프랑스 사람이 노동부에 신고를 해서 프랑스 노동부가 영업정지를 내려, 아예 법인을 해체하고 다른 나라로 옮겼다고 한다.

미국출장시 갑자기 출근하지 않고 호텔에서도 사라진 개발자가 메신저로 로그인을 사직서를 제출한 일도 있다. 어느 여 개발자는 1년 여의 하드코어한 노동에 못견뎌 호텔화장실에서 벽에 X를 칠하고 미쳐버렸다는 얘기도 돌았다.

이런 세상에서 “도대체 이렇게 해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그냥 엿먹어라. 먹어도 곱게 너 혼자 엿먹어라.


4. 사실 노동은 싫다. 그래도 노동하지 않으면 나도 먹고 살수 없고, 세상도 아예 돌아가지 않는다. 어차피 서로에게 필요해서 하는 거라면, 노동을 시키는 사람이나, 그것을 하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적당한 타협지점이 필요하다.

그게 윤리-이며, 예의-이다.

그게 안되니 죄다 변호사/의사-하고 싶어하고, 공무원/교사 시험에 목숨을 걸고, 대기업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안달힘을 쓰는 거다. 들어간 다음에도 죄다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싶어서 난리인거다. … 사실 IMF때 (또는 그것을 핑계삼아) 혹독하게 구조조정했다가, 그 이후 애사심(?)이나 우린 한 가족(?)같은 당근성 이데올로기가 안 먹혀들어가는 것을 느끼니, 봉사하는 리더쉽에 대한 내용이 유행한 적 있었다. …  물론 사장님 레벨의 사람들은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것 같지만.


5.그래서 나는, 이 사회가 “강제 노동을 권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돈 한푼 더주지 않으면서 하루 8시간 노동이 아닌 16시간노동을 강요하는 사회, 그래놓고도 24시간 일만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사회. 정말 강제노동을 권하는 사회(10년전이나 지금이나OECD 가입 국가중 가장 노동시간이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우리나라의 평균 노동시간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도 높다.). 그래놓고도 언제 짤리지 않을까, 회사에서 버림받지 않을까 몰라서 노심초사해야 하는 사회.

일한 만큼의 댓가를 주지 않으면, 줄 생각이 없으면
대체 강제 노동이랑 뭐가 다를까.

… 그런 사람들의 땀방울 위로 재벌이란 사람들은, 돈으로 대통령 만들 생각(삼성 X-파일 사건)이나 하고, 주먹질(김승현 한화회장 사건)이나 하며, 땅투기나 하고, 자식에게 편법으로 대물림(삼성 에버랜드 편법 증여 사건)이나 하려한다. 그 돈으로 사람들 몇명이라도 더 고용하면 좀 좋으련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면 좀 좋으련만, 하청업체라고 무시말고 ‘밑의 사람’이 아니라 ‘도움주는 사람’으로 대접하면 좀 좋으련만.

한 개발자는 냉소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이 좋은 점이라면 외국에서는 한국처럼 경력 쌓기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일할 기회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러니, 노예처럼 구르더라도 자기 분야에서 실력 닦으세요. 한국서 3년 구르면 고급기술자 됩니다. 외국에서 충분히 인정받죠. 영어나 틈틈이 공부해 두시고, 적당한 시기에 이민가세요. 선진국에서 프로그래머는 해볼 만한 직업입니다. 기업들이 문제에요. 인력을 장기적으로 쓸 생각 안하고 몸 망가지더라도 당장 혹사시켜 써먹고 뒷일은 신경 안 쓰는 한국기업 정말 나쁩니다. 다 나오세요. 기업들 정신차리게.’

– 아이뉴스24_IT 개발자, 제2의 전태일 될라-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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