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에 대한 입장 정리

이오공감에 오른 글에 들어가봤더니 난리가 났다. (관련글_마른미역님의 「쏟아지는 루머들」) 혹시나 해서 네이버를 비롯한 다른 곳을 살펴보니, 서로간의 다툼이 장난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야 사람들이 ‘그거 인터넷 하는 애들이나 하는 이야기지-‘하고 넘겨버릴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사회적 의제 설정’이 어느 정도(고정된 구조는 없다.)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니(특히 여론-이란 이름으로) 함부로 무시할수만은 없게되었다. 조중동 빼면…(이들은 입맛에 맞지 않으면 진실에도 눈을 감는다.)


배타적인 종교 – 기독교, 라는 이미지

일단 이런, “개독교에 대한 반감“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분위기(특히 젊은층에)가 형성된 배경에는, 기독교의 “불관용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듯 예전의 무분별한 선교에 대한 반감차원이 아니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음, 다른 종교나 사상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현대 한국 주류 기독교의 특징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믿는다. 다른 말에 자신들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는다. 이슬람의 종교 장소에서 찬송가를 부른다던가, 불교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란 이유만으로 ‘불교병원 간판 내리기 작심 기도‘를 하는 상황은 그렇지 않다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상이란 이유로 단군상을 파괴한다던가, 십수년간 저질러졌던 대학가의 장승 잘라내기 사건들은 말도 할 것 없고. … 그렇지 않다면 종교가 아니다-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정도되면 종교라기 보다는, 도착증에 더 가깝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대단히 억울하다. 기독교 교인들이 몇 명인데, 그 안에도 얼마나 많은 다른 생각들이 있는데, 일부 소수가 저지른 일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냐고. 맞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 한기총이나 뉴라이트, 사학법 개정 소송을 내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반감을 샘물교회에도 그대로 투영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 기독교나 저 기독교나 모두 같은 기독교에 불과하다. 관용적(?)일지도 모르는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배타적인 기독교인들만 타인의 삶에 끼어들어 가르치려고 든다. … 배타적인, 상식에서 어긋나는 행동만이 사람들에게 드러난다. 기독교란 이미지는 그렇게 박혀있으며, 아마, 당분간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실은 상당히 보수적인 카톨릭이 몇몇 사람들의 행동과 특정 원칙의 견지로 ‘진보적’이라는 이미지를 얻은 것처럼).

…한 친구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 기독교는 유독(전 세계에서도 극히 드물다) 근본주의 교파가 장악하고 있는 상태여서 그런 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자리잡은 과정을 살피는 것은 대단히 긴 작업이 되므로 패쓰. 아무튼 이번에 드러난 사람들의 반감은, 기존에 기독교에서 가져왔던 배타성에 대한 반감에 다름 아니다.

“니네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며? 모두 하나님이 시킨 거라며?
그래서 지금까지 국가도 무시해왔고, 국가의 경고도 무시하고 간거라며?
남의 종교나 사상도 싹 무시하고 하나님만이 옳다며?

… 그런데 왜 이제와서 국가 잘못이래?
… 왜 하나님 안 찾고 국가탓이라고 하는데?
… 언제는 파병 찬성하다가 왜 니네 꼴리는 대로 철군하래? 

… 대체 니네가 뭔데?”

…이게 사람들 생각이라면 생각이다.
이 사람들이 딱히 더 애국자여서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이런 것이다

루머는 루머가 아니다.

그렇지만,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해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위에 링크한 마른미역님의 글도 그런 뜻이었을게다. 이번 사건에 관계된 팩트만을 살펴본다면 마른미역님의 이야기가 맞다. 하지만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선교 활동의 역사에 관련된 팩트를 살펴본다면, 마른미역님이 틀렸다. 서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단체(한민족 복지재단, IACP 아시아협력기구, 샘물교회)에서, 서로의 도움 하에 이뤄진 일을 따로 떨어뜨려 보는 것이 오히려 왜곡이다.

… 사실 떠돌고 있는 루머는 루머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선교활동에 관련된 사실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과장된 부분, 2006년 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와 관련된 일들이 섞여 이야기 되는 바람에 혼선은 있다. 하지만, 외교부에서 우려와 경고를 준 것도, 그것을 교인들이 무시한 것도 맞다.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태도를 취한 것도 맞고, 외국과의 분쟁을 조장할 행동을 한 것도 맞다. 그러면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이제껏 주장했던 것도 맞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로 말하자면, 참가자들을 정부가 강제로 참가 못하게 한 것도 맞고, 귀국을 위해 유사시 전세기나 군수송기까지 준비하려 했던 것도 맞다. 참가 못한 사람들이 소송을 걸려고 했던 것도 맞다. 샘물교회와 뒤섞이긴 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선교활동의 역사로 본다면 사실이 아닌 팩트는 별로 없다.

… 물론 그들과 이들은 다른 사람이라고, 그들은 다른 마음으로 떠난 거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사실을 정당화하진 못한다. 애시당초 하나님의 말씀만이 더 중요했던(또는 그렇다고 착각했던) 사람들이다- … 순수 봉사활동이었다-야 당연히 언론 플레이일테니 언급할 가치를 못느낀다(그럼 가족들이 잡혀 있는데 선교하러 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걸로 트집잡는 것은 나쁘다.).

지금 (보통 사람이 보는, 한기총과 개혁세력이 구분되지 않는 의미에서) 기독교계는 정신분열증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있다. 타인을 배척했던 그들이 이제와 타인의 도움을, 동정을 구한다. 타인의 종교를 부정하는 그들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사랑하고 이슬람 문화를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정부에 출국 신고를 하고 간 것을 “허가받고 나갔다“라고 말한다. 10여일의 활동을 가지고 장기적인 봉사활동과 같은 것인양 말하기도 하고(봉사는 선교의 전략적 접근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에 간 청년들 역시 대부분 현직 간호사나, 간호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 선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면서도 “막무가내 식 전도, 일방주의식 선교, 기독교 우월주의는 반대하지만 예수처럼 평화를 위한 섬김과 헌신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 그보다 조금 더 당황한 것은, 네이버 >신문>기독교 에 등록돼 있는 기독교계 언론 가운데 1/3~1/2 가량(읽다가 나중에 눈치채는 바람에 숫자를 정확하게 못샜다)이 아예 이 사건을 언급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돌아와 주기를-

의외로 그냥 죽어버려라-는 사람들, 악플인 것을 감수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국가에 피해를 끼치느니 그냥 죽어라-라고 말하는 사람들, 정신 나갔다. … 심지어는 기독교 분들 가운데 ‘순교를 각오해야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서 섬찟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생명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해선 안된다. 생명(生命)이란 말은 그저 숨쉬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 ‘살라’는 명령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타인이 밉다고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다른 누군가가 내 자신에게 죽어버려-라고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존중받지 못할 목숨이란 없다. 지극히 윤리적인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죽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나치의 유대인 학살(600만명 사망)”을 인정했던 독일인들의 생각이나, “제주도민 따위는 다 죽여버리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우겠다는(3만명 사망)”는 이승만의 생각이나 하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내게로, 내 가족에게로, 내 친구에게로 돌아온다. 그것이 한번 용인되기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가 언제 어디선가 나에게 죽어버리라는 명령을 해도 괜찮다-는 결과를 낳는다.

나에게 피해를 줬다고 너는 나가 죽으라던가, 국가에 피해를 줬다고 그냥 죽으라는 말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함께 살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필요할 때만 찾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 그들 역시 싫든 좋든, ‘우리’다. 우리는 그리 쉽게 너와 나로 갈라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굴뚝같이 들때는 많지만-)

기독교(일부)가 왜 우리에게 개독교로 기억되었는가. 그것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협박, 원치 않는 개종의 강요, 자신의 믿음과 다른 것들에 대한 폭력을 동원한 배타성- 자신만이 선이고 다른 것들은 악이라는, 그런 것들 때문 아니었는가?

…그런데 왜 우리가, 그들과 똑같아 지려고 하고 있는가.
…그들과 똑같이 말의 폭력을 휘두르려 하고 있는가.

– 잘못을 했다고 죽어도 좋은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국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라도 보여야 한다. … 이 국민과 저 국민들 가운데 누구를 지켜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이 남긴 하겠지만.

그래서 바란다. 살아 돌아와 주기를. 부디, 살아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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