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펑크족, 디지털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

▲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매트릭스는 사이버 펑크 영화의 대표작이다.

어두운 방 안,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어지럽게 움직이는 숫자들. 그리고 묘한 분위기의 클럽, 금속 질감의 옷을 입은 사람들, 형광색의 네트워크에서 떠다니는 주인공. 영화 매트릭스와 주인공이자 해커로 등장하는 네오는 전형적인 사이버펑크의 분위기와 사이버펑크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이버펑크(CyberPunk)족은 사실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대부분은 아마, 맨질맨질한 비닐옷이나 은빛 기계, 엄정화의 백헤드폰, 다양한 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파괴하는 해커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사는 소년들이 생각날 듯 하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이버 펑크족의 이미지는 이 정도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모든 것은 사이버펑크족의 껍질만을 이야기할 뿐 본질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이버펑크족이 대단한 존재들은 아니다. 사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 사이버펑크족일지도 모른다.

▲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우리가 생각하는 사이버 펑크의 이미지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모두 구현되었다.

사이버펑크족의 존재 기반인 사이버펑크 문화는, 기존체제에 대한 반항을 부르짖던 펑크 문화와 대중화된 컴퓨터 기술이 결합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문화다. 원래는 80년대에서 나타난 SF 소설의 한 갈래로,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추구하며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이버펑크는 단순히 공상과학소설을 지칭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정한 소설이나 영화들을 지칭하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사회의 한 흐름이나 문화를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그리고 그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이버펑크족이라 부른다.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대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발적으로 태어난 세대이며, 어쩌면 권력과 억압에서 해방된 자유의지를 가진 첫 번째의 세대가 될 지도 모른다. 그들의 공통점은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것과, 기성 세대의 고정관념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게임방과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이들 사이버펑크족은, 컴퓨터와 발달된 정보통신체계를 어릴 때부터 일상적인 삶의 환경으로 사용한 인류 최초의 세대다. 그들이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은 생활의 일부였으며, 네트워크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이다.

그들은 손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것에 더 익숙하며, 머릿속에 암기하는 것보다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그들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교류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규칙과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다시 말해, 사이버펑크 족에게 있어서 사이버스페이스는 진짜 현실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재미와 즐거움의 가치를 우선시하며, 네트워크의 자유와 정보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든 현실 사회의 규제를 거부한다. 그리고 기존의 관료적 권력과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펑크의 정신을 가지고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개인을 꿈꾼다. 이들에게 있어 영웅은 최근 방한했던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리차드 스톨만이나 Linux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등의 해커형 프로그래머이며, MS의 빌게이츠는 악의 화신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순적인 존재다. 사이버펑크족의 가장 깊은 관심을 받는 문제중 하나가 바로 ‘나는 누구인가?’의 정체성 문제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폐쇄성의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더불어, 첨단기술을 사용하여 현실 생활에서 겪는 인간소외와 정체성의 상실, 의사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서도 과학기술의 무비판적 사용으로 말미암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모순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열려져 있다. 그것은 사이버펑크의 정신적 근원이, 사람은 모든 변화에 능동적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새로운 차원의 미래를 열어가는 주체는 바로 인간이라고 믿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정보통신부의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네티즌은 통신질서 확립법이라 부르는)”반대 집회에 야오이물(동성애를 다룬 만화)을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의 청소년 회원들이 다수 참가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이들에게, 현실의 법이 자신들의 공간을 규제하려 든다는 사실 자체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청소년들마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거리로 나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현실, 언제 한번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던 일이었을까?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그 배경에는 사이버스페이스란 가상의 공간이 또 하나의 현실로서 자리잡고 있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들만의 규칙, 언어를 배워야 하고, 당신이 현실에서 가지고 있던 권위, 그 밖에 모든 것들을 깡그리 무시당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할 때 진정 자유로와짐을 알 수가 있다면, 당신 역시 사이버펑크족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컴퓨터의 전원을 키고, 마우스를 붙잡고, 네트워크에 연결하라.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그곳에 맡기면 된다. 자, 준비가 되었는가?

…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당신을, 환.영.한.다.

– SK 사보 2000년 10월자에 실었던 원고입니다. 현재는 생각이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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