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01. Deep Blue Network

 

자, 한번 상상해 보자.

거대한 경기장이 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곳에 모여있다. 모든 것은 자유다. 당신은 다른 누구에게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정보를 얻을 수도, 그와 싸울 수도, 그리고 연합하여 팀을 꾸릴 수도 있다. 어느 구석진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잠을 잘 수도 있고, 원하는 정보를 조합하여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 곳에선 누군가가 경기장 밖에서 어떤 사람이 였는 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경기장 밖을 나간 곳에서 그가 마찌꼬바 노동자이든, 잘나가는 소설가이던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당신이 잘난 척 포장한다고 해도 그 잘난 것을 보여줄 수 없다면,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따라서 이 곳은 당신이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것만이 진실이 된다.

당신이 이미 경기장 밖에서 가지고 있던 것은 이 곳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단, 그것을 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이야기는 틀려지지만……). 만약 그런 곳에 당신이 있다면, 당신은 이제 어떤 일을 하기 시작할 것인가. 그렇다. 그것이 바로 네트워크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곳.

네트워크는 말 그대로, 그물망을 의미한다. 처음과 끝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그물처럼 얽히고 섥힌 하나의 거대한 미로, 그것이 네트워크다. 이 기획의 첫 번째를 네트워크로 시작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의 네트워크는 현실공간의 네트워크와는 약간 의미를 달리한다.

현실공간의 네트워크는 A와 B지점을 연결해 주는 선이 존재하고, 그 선이 또다시 촘촘히 얽혀 하나의 그물망을 형성하는 일종의 연결망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의 네트워크는, 연결망에 더하여 그 연결망을 통해 이뤄지는 수없이 많은 사람과 사람의 충돌, 그리고 그 충돌에서 발생하는 영향력등이 함께 포함된다. 예를 들어 전화는 전화가 있는 지점과 지점을 연결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묶어주긴 하지만, 일(一)대 다(多), 다(多)대 다(多)의 연결을 만들어 줄 순없다. TV 전송망의 네트워크는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방송을 여러곳에 분배하는 기능만을 맡는다.

하지만 인터넷의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주제로 토론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구 시대의 네트워크와 새로운 네트워크가 그 패러다임 자체를 달리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구 시대의 네트워크의 목적은 “빠른 정보의 정확한 전달”이었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정확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 정보는 굳이 저장될 필요도 없었고 수신자와 송신자가 명확히 갈리는 것이 좋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는 문서나 자기매체(카세트, 또는 비디오 테잎)의 형태로 복사해서 모아놓아야 했으며, 그 가운데 정보를 보내는 자는 권력을 가지고 정보를 받는 자는 권력에서 소외되어 갔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 탄생 자체가 “전달”이 아닌 “정보의 보존”과 “네트워크의 생존”이었다. 냉전시대 당시 소련의 공격에 의해 하나의 센타가 붕괴되어도 전체의 네트워크는 살아있도록 하는 미국의 연구(인터넷의 모체가 된 Arpanet가 바로 그것이다.)가 인터넷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이 된 것은 서로 다른 기종이어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TCP/IP(예를 들어 매킨토시의 디스켓은 IBM에서 읽을 수 없지만, 인터넷에 올려놓은 자료는 어떤 컴퓨터든 동일한 형태의 정보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와 전세계에 흩어진 컴퓨터들의 주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DNS(인터넷상의 주소 관리 체계), 그리고 원하는 정보에 즉각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HyperText다.

이런 인터넷에선 인터넷에 연결된 정보를 대부분 원하는 누구라도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다. 얼마전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도 누구나 검색할 수 있게 무료 서비스로 전환했고, 한미르(www.hanmir.co.kr)란 웹사이트에선 전화번호 검색과 더불어 그 전화번호를 가진 곳의 지도까지 보여준다(필자는 매일 아침 워싱턴 포스트의 신문 기사를 읽고, CNN의 뉴스를 본다. 물론 영어를 잘 못해서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_-;).

중요한 것은 이런 생활 형태의 변화가 아니다. 현대 과학의 발달은 인간이 탄생 이후 느끼던 시/공간적 감각을 계속하여 단축시켜왔다. 인터넷은 그것을 극단적이고 광범위하게 단축시켰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인터넷의 형태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에 인간을 노출시키고,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반응이 나타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 사회의 독점적인 권력을 해체하며, 누구라도 문예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간단하게 네트워크의 개념과 그것이 제기할 문제들에 대하여 추상적으로 짚어보았다. 물론 위에 나열한 이야기들은 가능성을 근거로 한 낙관론에 가깝다. 실제의 모습들은 그것보다 구체적이며, 또한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예를 들어 독점적인 현실의 권력이 해체된 네트워크에선 분명히 새로운 권력이 새로 형성될 것으로 나는 전망한다). 앞으로 쓸 글은 이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풀어놓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의 과정에서 필자는 어떤 선/악의 판단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단지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글을 쓸 것 이다.

* 월간 민족예술 1999년 10월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과거자료 복원? 을 위해 예전에 썼던 글이 차례차례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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