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려운 시절이 닥쳐올 거예요

슬픔은 가슴보다 크고
흘러가는 것은
연필심보다 가는 납빛 십자가

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아침부터 해가 지는 분지,
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촘촘히, 촘촘히 내리는 비,
그 사이로 나타나는 한 분 어머니

어머니, 어려운 시절이 닥쳐올 거예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울고 있어요

– 이성복, 분지일기(남해금산 中)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마지막 두 귀절의 막막함에 한참동안 어쩔줄 몰라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어도, 어떤 시대에 살 것인가를 선택할 수는 없다. 진흙탕이면 진흙탕, 꽃밭이면 꽃밭, 아수라장이면 아수라장… 그 안에서 그냥 그냥 살아가야만 할 뿐.

어젯밤 숭례문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몇 번이나 이 시를 다시 떠올렸다. 94년 성수대교의 붕괴가, 95년 삼풍 백화점의 붕괴가 그때 잠깐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듯, 2008년 숭례문의 전소도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05년 개방 결정을 내렸을 때부터 쌓이고 쌓여왔던 작은 잘못된 선택들.

한 명의 삶이란 것은, 세상에 비춰보면 하찮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느낄 수 밖에 없는 절대적 무기력함. 철도가 땅에 쳐박히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배가 침몰하고, 다리가 끊어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지하철 공사장이 터져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 잘못은 대가리가 해놓고 아랫사람들만 죄다 거리로 내몰렸을 때의, 그 무기력함.

… 꼭 10년이 지났다. 역사는 구차한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상, 이승만 다음으로, 조지 부시보다도 못한, 최악의 대통령을 맞게 될 지도 모르겠다. 방금 한나라당은 “숭례문 전소는 노문현 정권탓“이라고 비방하고 나섰다. 벌써부터 진절머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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