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글입니다. 제가 2003년에 이런 글도 썼었네요. -_-; KBS 사보, 2003년 8월에 실렸습니다. 글 원문은 http://www.kbs.co.kr/jnal/0308/pdf/plus4.pdf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온라인 게임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씌여진, 짧은 글입니다. 자료 보관 차원에서 올려봅니다.
얼마 전미국의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브스>에‘한국의 기묘한 인터넷 세계(Korea’s Weird Wired World, 인터넷을 뜻하는 WWW(World Wide Web)의 패러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한국은 단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초고속 인터넷 보급을 이뤘으며, 그로 인해 현실 사회의 모든 것이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마 그들이 보기에 우리의 온라인 문화는 매우 낯설고 신기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 기사는 맞으면서도 틀렸다. 왜냐고?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온라인은‘현실을 닮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이미 현실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현실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온라인 게임이다.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은 이미 대중화의 단계를 지났다. 시장 규모 약 3조 4000억 원의 크기로 성장했으며 30, 40대의 절반 이상이 한 번쯤 온라인 게임을 해봤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온라인 게임 문화다. 한국을 방문하는, 전 세계의 내로라 하는 게임 제작자들을 모두 놀라게 만든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PC방으로 대표되는 커뮤니티 중심의 온라인 게임 문화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당연히 ‘혼자’한다고 생각하는 게임을, 한국에선 당연히 ‘함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이제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다. 온라인 게임은 젊은이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게임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것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이제 게임 속에서 친구를 사귀고, 동아리를 만들고, 자신들 나름의 룰을 구축하면서 살아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울고 웃기도 하고, 할 일 없이 시간도 때우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애완 동물도 키우고, 때론 사랑도 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온라인 게임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이 겉으로는‘단절’된 듯하지만, 실은 그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리니지처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온라인 RPG(Role Playing Game)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온라인 고스톱이나 테트리스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온라인 게임에서 커뮤니티를 지원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온라인 게임을 풀어나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이후 만들어진 게임
방 문화와 PC통신 시절부터 이어진 동호회 문화의 영향을 통해 그런 규칙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일대일 대결보다도 팀대팀 대결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서로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도하고, 때로는 잘난 척도 하고, 고수가 되어 부러움도 받고, 오프라인에서 만나 술 한 잔하며 밤새 게임 얘기도 나누게 된 것이다.
본디 게임이란‘사람과 사람의 친목을 위한 놀이’라는 말 뜻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학교나 지역 등 ‘주어진 조건’이 아닌 ‘코드가 비슷한’사람들끼리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격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온라인 게임은‘폐인’의 대명사, 잘못된 사이버 문화의 대표격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가상 사회가 이뤄지는 만큼 아이템 현금 거래나 온라인 사기 사건, 매너 없는 게임 태도, 게임을 그만두게 되면 사라지는 인간 관계와 지나친 게임 몰입 등 어두운 면도 피해갈 수는 없으리라. 본질적으로 온라인 게임은 ‘또래 문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나쁜 친구를 사귀었을 때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자신에게 조금만 엄격해질 수 있다면, 그리고 처음 실력이 없을 때의 어려움만 의연하게 버텨낸다면, 한 번쯤 관심이 가는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보는 것은 어떨까. 의외로 할 만한 게임은 아주 많이 널렸으며,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 그리고 함께 즐긴다는 게임의 본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_이요훈(인터넷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