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북리뷰]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타디움 대형스크린의 비디오 메세지에서 부시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투도중 사망한 틸만과 다른 사람들을 추모했습니다. “팻 틸먼이 축구 경기하는 것을 사랑했던 것처럼 그는 미국을 더욱 더 사랑했습니다. 용기있고 겸손하고 애정깊은 남편이자 아들 그리고 헌신적인 형제이자 맹렬한 자유의 수호자였습니다. 팻 틸먼은 언제나 우리나라에서 기억되고 기려질 것입니다”

모든 NFL선수들이 경기복에 틸먼의 40번을 달았습니다. 카디날은 그것을 시즌내내 달고 뛸 것입니다. 40번이 새겨진 기념 핀은 일요일 경기에 온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그가 한 일들을 전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자기자신과 그들주위의 세상에서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도록 마음을 불어넣음으로써 그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가우드는 말했습니다.“

-J의 메아리, 2004년 9월 23일, 매스미디어뉴스
http://massmedianews.com/item.html?cat=H&code=H0300150


팻 틸먼이라는 미 프로풋볼 스타가 있었다. 그는 9.11 테러가 발생하자 고액의 연봉을 마다하고 미 육군 특수부대에 자원입대했다. 미 국방부는 그의 애국심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그가 2004년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지자, 대(對)테러전을 수행하던 중 적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장례식은 전국에 생중계됐고, 미 국민은 그를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의 소속팀이었던 애리조나 카디널스는 그의 등번호 ‘40번’을 영원히 그대로 남겨두겠다고 발표했다. 신축 구장의 광장과 애리조나 후버댐 부근에 새로 건설되는 다리엔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팻 틸먼은 왜 미국의 영웅이 되었는가

사실 팻 틸먼은 영웅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호감 가는 용모와 스포츠 스타라는 조건, 좋은 학점. 36억이나 되는 고액의 연봉을 거부하고 자원입대한 애국심. 거기에 전투 중의 영광스러운 죽음까지. 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그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이들은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영웅 만들기’와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이 책들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죽은 이들이 어떻게 현시대로 ‘호출’되는 가를 볼 수가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정당성(또는 그것을 가장한 권력이나 부(富))을 대변해주기 위하여 불려지고 이용당한다. 유럽을 제패할 뻔 했던 나폴레옹도,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잔다르크도, 위대한 여왕 엘리자베쓰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도, 또는 이름도 기억 못할만큼 수없이 많은 혁명의 영웅과 가톨릭 순교자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했던 누군가로 기억에 남지 않고, 마치 영화의 명장면처럼 하나의 사건과 장소, 명 대사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그리고 재구성된 이미지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영웅이 되었다가 악당이 되었다가, 또는 우리 편이 되었다가 적의 편이 된다.

현대의 모든 영웅은 우상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호출되는가.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영웅(Hero)들과 유명인(celebrity)들을 봤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유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몇몇 이들은 그들이 만들어지는 구조까지 조목조목 꿰뚫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그들에게 열광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스스로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고) 구세주를 기다렸던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영웅을 그리워하고, 요청하고, 소비한다.

책에서는 그것을 ‘지배 계급의 의도’와 더불어, 민족국가의 등장과 함께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위로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라는 뉘앙스로 설명한다. 즉 영웅은 어떤 ‘시대적 요청’에 의해 선택되고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초등교육에서 위인들의 일화를 가르치는 것도, 국가 재난에서 더욱 영웅의 의미가 부각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영웅으로 만들어지는 ‘누군가’의 의미는 퇴색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그들이 ‘시대적 요청’을 구현하고 있는 존재라는 역설적 의미도 성립되지 않을까? 마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지금 시대에 ‘박정희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시대가 박정희와 같은 리더쉽을 요구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현대의 영웅은 우상이다. 대중들이 원한다고 믿는 것은 ‘영웅’ 그 자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이미지 속의 가짜 영웅이다. 과거의 한 시대를 살아갔던 위대한 사람들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배울 점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과거를 곱씹어보지 않고 현재가 진보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고, 한 시대가 그런 지도자를 만들었을 것이다, 라는 것은 지나치게 세계를 단순화시킨 결론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세계가 발전하는 것을 충분히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현 시대가 호출하는 영웅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영웅이 아니다. 그가 살아갔던 시간과 공간, 삶의 구체적인 많은 것들을 잘라내고 단순화시켜서 ‘하나의 말을 하는 이미지’만이 남은, 반공 포스터와 하나 다르지 않은 ‘영웅의 이미지’다. 그것은 이미지로 포장된 이데올로기이고 선전선동의 문구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말하지 않고 “하나의 감동적인 대사”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시대로 돌아가야할 영웅

이제 영웅은 그들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의 이름과 이미지가 아니라, 그가 살아갔던 시대의 고민과 이야기 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들이 내렸던 판단과 행동, 만들어갔던 문화들이다. 그것은 결코 한 명의 이름으로 환원될 수 없는 훨씬 두꺼운 것이다. 그 안에서 그들은 자기자신으로 존재하고 살아가다 사라졌으며, 굳이 지금 이 자리에 “정당성을 호소하는” 존재로 다시 불려올 필요가 없다. 죽은 자들의 이미지가 현실의 불합리합을 가려버리는 존재가 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얼굴 뒤에 숨어 웃고 있는 사람들의 배를 불려줄 필요가 없다. 살아서 많은 일을 했으나 죽었기에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존재들은, 이제 그들이 있어야할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죽은 자가 있어야 할 곳은 오직 저승뿐이다.

앞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밝힌 진실은, 대테러전 상징으로 추앙을 받는 팻 틸먼이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진보적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를 좋아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오면 촘스키를 직접 만날 예정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6년 3월, 가족의 끈질긴 진상규명 요구 끝에 미 국방부는 그의 죽음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시작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는 적이 아니라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 사망했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을 딴 ‘팻 틸먼 재단’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의 뜻을 따르자고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비판하는 재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영웅 만들기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영웅만들기’ 프로젝트팀 지음 / 휴머니스트
나의 점수 : ★★★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프랑스 역사에 나타난 영웅의 탄생과 몰락
크리스티앙 아말비 지음, 성백용 옮김 / 아카넷
나의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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