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에 대한 경박한 강박관념

 

검색을 하다 참세상에서 주최한 ‘촛불의 길을 묻는다’라는 좌담회의 녹취록을 읽었다. 미류, 완군, 노정태, 한윤형, 김현진 씨등이 참석한 좌담회였는데… 뭐랄까, 녹취록을 읽고 있는데 뭔가 굉장히 불편했다. 노정태님이나 한윤형님은 가끔 들려 글을 읽기도 하는 블로거임에도 불구하고, 대담 전체에 흐르고 있는 문제의식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럴까-하고 생각해 보니, 대답은 두가지다. 하나는 운동권-대중의 구도로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전체적으로 운동권의 무기력함을 성토하는 자리같은 느낌이었으니, 이런 구도로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하지만 참석자 다섯 가운데 넷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 아고라나 다른 블로거들, 또는 보통 촛불집회 참석자들과 ‘우리’라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을까?

얘들은 아직 이래서 안돼. 얘들은 아직 이런 것에 갇혀 있어. 이런저런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런저런 것은 여전한 한계야-라는 말은, 상대를 어떤 개별적인 주체라기 보단,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생각하기에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이런 말 듣기 싫으면 최소한 ‘어떤 사람들은’이란 식으로라도 얘기해야만 했다.

두번째는 나타난 현상을 자신들의 프레임에 꿰맞춰서 해석한다는 것. 지난 주 오마이뉴스 포럼에 참석했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현장의 다양한 흐름들을 자신들의 프레임에 꿰어 생각한다는 것은, 편하게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지루하다. 사람들이 옷 입은 거 해석하고, 움직이는 거 해석하고, 구호 외치는 거 해석하고- 그런데 그러면서 ‘이래야 하는데 사람들은 저런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묻어 나온다는 것.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게 옳은데 제들은 저러네’라는 느낌이랄까.

결국 첫 번째와 두 번째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어떤 운동을 한다거나 더 많이 공부했다는 사람들의, 계몽에 대한 경박한 강박관념이었다. 이게 이래야 하는데, 이게 옳은 건데- 당신들이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렇지만 토론회에 이미 나온 말처럼,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소통하고 기획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득은 웹상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고라에 글 한번 올리고 호응 없어서 그만 뒀다는 게 말이 되나 -_-;;;

누군가의 말대로,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자(leader)’가 아니라 ‘전위(avantgarde)다. 필요하다면 기획을 제출하고,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가면서, 동의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체화 시키는 일이다. 그 과정을 일일이 다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우습지만…-_-;; 이미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아고라에서, 블로그에서, 그렇게 제안하며 동의를 얻고, 실천하는 방법을 이미 써먹고 있다. 명박산성 앞에서 비폭력을 외쳤던 일군의 사람들이 그냥 조직된 것이 아니다. 조중동 불매운동에 동참해 숙제하듯 전화하는 사람들이 그냥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제발, 계몽에 대한 경박한 강박관념은 좀 거둬 달라. 나도 당신들을 ‘운동권’이라고 따로 규정 지으며 부르기 싫다(그렇게 원한다면 기꺼이 그럴 의향은 있지만). 우리와 함께 놀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나게 놀 지를 생각해 달라. 지금 놀게 생겼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이미 우리에겐 놀이와 투쟁 사이에 구별이 없다. 아니 애당초 정치와 경제와 문화가 갈라지는 것이 아니란 것은 그 쪽(?)이 먼저 알고 있을테니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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